[도로시 데이 영성 따라 배우기-13] 우리는 모두 성인으로 부름 받았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30년 먼저 살기 시작한 여성, 도로시 데이
도로시 데이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유토피아가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가난한 이들은 늘 우리 곁에 있을 것이다. 공산주의 경제가 성공한다 해도 가난한 이들은 여전히 있을 것이다. 무정부주의적 방식의 정책이 설령 성공한다 해도 가난한 이들은 우리와 함께 있을 것이다. 우리의 구원 역사와 함께 추락의 역사는 늘 일어날 것이다.”

여기에서 가난함이란 취약함이다. 물질적 영적으로 누군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불안전의 상태이다. 그러므로 취약함 안에 머무는 이들은, 그 벗지 못할 십자가 안에서 하느님께 온전히 열려 있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취약함 안에서 하느님의 무상적 은총과 절대적 사랑을 상기하고, 그 안에 머문다.

그 하느님은 육화를 통하여 취약한 인간조건 안으로 오신 분이고, 우리는 취약함 안에서 그분과 일치한다. 그분과 일치한다는 것은 그분처럼 사는 것이다. 그분처럼 산다는 것은 아래로 내려가는 삶이고, 두려움 없이 모든 이를 사랑하는 것이고, 그분처럼 사랑 때문에 사랑 안에서 죽는 것이다. 그 사람이 곧 성인(聖人)이다.

우리는 모두 성인으로 부름 받았다

도로시 데이와 가톨릭일꾼운동은 우리 모두가 성인이 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고 믿는다. 그래서 역사 속에 등장한 성인들과 일치하여 살고자 열망한다. 예전엔 사막에서 하느님을 만났고, 수도원에서 수행을 하였지만, 실상 수덕생활의 장소는 어디에나 있다. 오죽하면 도로시 데이가 젊은이들에게 감옥에 갈만한 일을 하라고 당부하였겠는가? 그만한 피정 장소가 따로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도로시 데이는 리지외의 소화 데레사 성녀의 ‘작은 길’을 따라 가도록 권한다. 우리 일상의 자잘한 사건 속에서 우리는 하느님을 경험하고, 모든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몸소 수행하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취약함과 소심함을 경험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가톨릭일꾼운동에서 마련한 프로그램은 우리들로 하여금 성인으로 가는 길을 준비시키고 경험하고 배우게 한다. 원탁토론을 통하여 경청하는 법을 배우고, 우리의 지성을 단련하며, 하느님의 뜻을 공동으로 식별할 수 있다. 환대의 집을 통하여 하느님의 자비를 몸으로 실행하고 낯선 이들을 가족으로 맞이하는 법을 배운다. 여기서 나의 취약함을 발견하고, 내 취약함 안에 함께 계시는 그리스도를 경험한다.

농경공동체를 통하여 건강하고 창조적인 노동의 가치를 깨닫고 자연친화적이고 우주적인 아름다움을 경험하고 하느님과 모든 생명에게 감사하는 법을 배운다. 이처럼 공부하고, 베풀고, 찬양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정립된 이야기를 표현하고, 세상에 나아가 그러한 영성에 바탕을 둔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뜻에 반하는 모든 불의와 부당함에 대하여 저항하고, 낡은 껍질 속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건설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가톨릭일꾼운동의 과제는 좀더 궁극적인 것이다. 그리고 철저하게 개인에게 주목하는 것이다. 그 개인의 영적 성장에 최종적 관심이 있으며, 결과에 사로잡히지 않고 과정에 주목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영적 여정에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누구든지 원탁에서 이야기에 참여할 수 있으며, 환대의 집에서 누구나 언제든지 시간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자기가 가진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으며, 이들의 생각이 담긴 신문을 친구나 이웃에게라도 전달해 줄 수 있고, 농장에서 원하는 만큼 일을 하며 쉴 수 있다.

가톨릭일꾼운동은 세세한 규칙이나 정해진 계획 속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갈망과 영성을 서로 나누고 격려하고 공유할 뿐이다. 이들이 나누는 대화는 일상과 교회와 사회와 우주에 걸쳐 얼마든지 주제를 확장해 간다. 하느님은 이 모든 것 안에서 우리와 함께 호흡하신다고 믿기 때문이다.

평신도, 세상을 위한 구원의 성사

▲도로시 데이에게 신앙과 사회적 비전에 대한 영감을 주었던 피터 모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부들은 교회가 세상을 위한 구원의 성사가 되어야 함을 선포하는 가운데 평신도를 ‘발견’하였다. 그들은 복음이 선포되어야 할 세상 한가운데 살고 있는 하느님 백성들이다. 공의회는 그들 역시 그리스도의 왕직, 예언직, 사제직을 수행하는 거룩한 백성임을 확인해 주었으며, 교회가 이 세상에서 존재 의미를 갖기 위하여 충분히 스스로 ‘쇄신’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모든 이론(교의)을 넘어서 자신의 삶과 실천(직분)을 통해 그리스도께 대한 신실성을 증명해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 여정에서 도로시 데이는 이미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선포하였던 것을 미리 몸으로 살기 시작하였으며, 공의회의 교부들에게 보이지 않게 자극을 주고, 현대세계 안에서 어떻게 주님이 사랑하셨던 인간들을 우리도 사랑할 수 있는 지 모범을 보여주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관심은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 갇혀 있던 하느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세상으로 건너가 자유롭게 복음을 증거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동안 교회는 세상을 모르거나 모르고 싶어 했다. 그러나 도로시 데이는 세상에서 교회로 건너온 사람이었다. 그는 교종 요한 바오로 2세가 “인간은 교회가 따라 걸어야 할 길”이라고 선포하기 이전에 이미 인간에게 주목하였으며, 특별히 고난 받는 노동자들과 가난한 이들을 위해 헌신해 왔던 여성이다.

그는 오랫동안 사회주의 사상과 사회주의자였던 동료들 속에서 ‘인간에 대한 연민’을 발견하였고, 사회변혁의 프로그램을 찾아왔다. 그러나 피터 모린이라는 예언자적 평신도를 통하여 하느님께 주목하게 됨으로써,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인간에게 실현하는 근본적인 길을 발견하였다. 교종과 교부들의 사회적 가르침을 통하여 사회재건에 비전을 얻을 수 있었으며, 통상적 가톨릭교회의 보수적인 입장과 다르게 자율적으로 평신도 중심의 직분실천을 통하여 오히려 복음서와 가톨릭 사회교리에 더 충실할 수 있었다.

▲가톨릭일꾼운동 로고

교회의 어둠 마저 사랑한 여성, 도로시 데이

도로시 데이는 교회의 빛만을 사랑하지 않았다. 그녀는 교회의 어둠마저 더 큰 사랑으로 끌어안음으로써 자신의 십자가를 부활의 신비 안에 접속시키고자 하였다. 죄 많은 창녀이지만, 그 안에 순결성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소중한 영혼을 교회 안에서 찾아내었고, 그렇게 살고자 갈망했다.

예수께서 영광스러운 변모 이후에 다시 산을 내려가 마을로 들어가셨듯이, 갈릴래아의 흙바람 속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베풀고 또한 그 시대의 지배자들에게 모함을 받으셨듯이, 도로시 데이는 온실에 머물지 않고 세상의 바람을 모두 맞으며 하느님의 이름을 기꺼이 부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일상적인 애덕실천과 그리스도교 평화주의는 인간에 대한 사랑의 확장 과정이다. 그녀가 평생에 걸친 직분실천의 영감을 받았던 마태오 복음서 25장 40절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라는 구절은 바로 그녀의 신념대로 우리 그리스도교인들에게 모든 삶의 ‘잣대는 사랑’임을 확인해 주고 있다.

세상 속에서 세상과 다르게..

우리 시대에 교회 안에서 가장 고민스러운 것은 신앙과 실천의 괴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들었지만 행함이 없다면, 굳이 야고보 사도의 입을 빌리지 않더라도 그 복음은 세상에 의미를 던져 주지 못할 것이며, 우리 자신과 세상에 어떠한 구원도 가져다주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실천만이 강조됨으로써 우리 신앙을 사회윤리나 도덕으로 제한해서도 안 될 것이다.

도로시 데이는 자신의 삶을 통하여 성인됨으로 가는 거룩함의 길이 자신의 사회적 실천과 얼마나 깊은 차원에서 잘 맞물릴 수 있는지 보여 주었다. 즉 영성과 사회적 실천의 통합이야말로 그리스도를 따르려는 신앙인들이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전통은 줄곧 “세상 속에서 세상과 다르게” 살 것을 가르쳐 왔으며, 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서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런 점에서 도로시 데이의 삶은 우리 시대에 필요한 평신도 모형을 제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평신도들은 자신의 삶의 조건 때문에 더욱 분명하게 세상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하느님 백성으로서 지니는 성성(聖性) 때문에 세상과 다른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이다. 그분의 생명력에 기대어 진리를 추구하는 길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한다. 그 길에 동행할 때 어느 길목에선가 우리는 도로시 데이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도로시 데이를 따라가는 여정을 여기서 마칩니다. 그 길은 이제 여러분이 걸아가야 할 길입니다.(한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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