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국의 세상만사 인생사]

나를 아는 분들은 대개 요셉 형님의 죽음이 내게 엄청난 충격이 될 것이며, 그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들 생각했다. 사실 나 자신도 그랬다. 나도 요셉 형이 없는 세상을 생각하지 못했고 (아니,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요셉 형이 없는 세상을 준비하지 못했고) 만약 요셉 형이 죽는다면 그 충격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격식에 얽매여 체면치레에 급급한 교우들을 지렁이 보듯 하는 형이 나는 너무 좋았고, 아닌 건 아니라고 어떤 자리에서건 쓰디쓰게 내뱉을 줄 아는 형에게 동지애를 느꼈으며 내게 자꾸 뭔가를 해 주고 사주고 먹여주려 하는 모습에서 친형 이상의 애틋함을 느끼던 터라서 더욱 그랬다. 말하자면 요셉 형은 매우 답답한 이 교회에서 나와 제대로 말이 통하는, 그리고 마음이 너무 좋은 형이었기 때문에 정말이지 잃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그는 유명을 달리했고 나는 지금 글을 쓰고 있다. 요셉 형은 지금 하얀 가루가 되어 경남 고성의 어느 바닷가에 누워 있고 나는 조금 전 까지 지인들과 더불어 술 마시며 낄낄댔다. 돌아가셨다는 기별을 받았을 때 받았던 충격과 시신을 싣는 구급용 카트를 잡고 요셉 형을 운반하던 때의 슬픔은 장지인 고성에서 하관 예식을 할 때 쯤 이미 그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죽음이 주는 무서운 외로움은 결국 죽은 자의 몫일 뿐, 산 자들은 결코 어떤 형식으로도 그 죽음에 동참할 수 없다는 것을 또 한 번 깨달으며 나는 나의 천박함을 깊이 긍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 주변에 부탁한 형수님의 일자리가 어서 빨리 구해졌으면 좋겠다. 그것만이 형님을 보내 놓고도 결국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고 있는 이 동생의 죄를 조금이나마 옅게 만들 수 있는 길이기에 그렇다.)

그렇더라도 그건 참 너무했다. 나는 형님을 모신 성당 영안실의 조문객 접대실에서, 만약 형이 살아 있었다면 분명히 엄청나게 화를 냈을 것이 뻔한 얘기를 듣고 분노를 참아야 했다. 형님의 됨됨이가 그랬으니 친구들도 참 많이 왔고 레지오나 ME에서도 참 많이들 왔다. 둘째 날은 음식을 나르는 모습이 커다란 식당의 분주한 모습을 연상케 하는 것이었고 나는 그런 모습이 좋았다. 그리고 그 손님들 중 대부분은 나와도 잘 아는 분들이어서 빈소를 찾아 준 것이 너무 고맙다고 얘기하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중에 부부 동반으로 오신 어떤 형님과 형수님이 계셨는데 시간이 너무 늦었다고 가자는 형수님과 조금 더 마시겠다고 하는 형님 사이에 약간의 말다툼이 있었고 화가 난 형수님이 밖으로 나가 버리는 것이 보였다. 당연히 나는 형님에게 다가가 얘기를 했다.
“아이 형님. 형수님 밖에서 기다리시는데 이제 그만 일어나시죠.”
“야. 토마스. 오랜만에 아는 사람들 만나서 한 잔 하려는데 뭘 그래.”
“그래도 형수님이...”
“야. 지금 너 나 내쫓는 거야?”
“참 형님도. 내가 형님을 어떻게 내 쫓아요. 내가 술집 기도예요?”
“야. 너무 그러지 마. 나도 우리 본당에서는 존경받는 사람이야.”

정말 그 말은 듣지 말았어야 했다. 물론 나는 평상시에 그 형님이 얼마나 본당 생활을 열심히 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다. 이사 가기 전의 본당에서는 꾸리아 간부도 했었고 지금의 본당에서는 성체 분배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허나 그것이 남들에게 존경받아야 하는 일인지는 잘 모른다. 아니 백번 양보해서 그것이 다른 신도들에게 존경받아 마땅한 것이라 하더라도 자신이 마땅히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일인지는 정말 모르겠다. 그러면 백발이 성성한 채로 조용히 성당 마당의 풀을 뽑는 형제님들과 이름을 내세우지 않은 채로 주일마다 주방에서 봉사를 하는 자매님들은 무시 받아도 된다는 얘긴지 참 헷갈렸다. 적어도 요셉 형의 상청에서는 그러지 말아야 했다.

요셉 형 살아생전 이런 대화를 나눈 일이 있다.
“야! 토마스. 이거 완전히 성당이 성당이 아니야. XX.”
“아 왜 또 광분하고 그래 형은...”
“봐라. 사목회장 한 번 하겠다고 로비를 한다니까. 더러버 죽겠어.”
“거 그냥 하게 놔둬. 뭘 그런 거 가지고...”
“야 이놈아야. 그럴 거면 국회로 가지 왜 성당에서 지랄 떠는기가? 엉? 그래서 사목회장 시키 봐라. 참, 안 봐도 내 다 안다카이. 목에다 철갑 기부스를 하고 꺼떡댄다 아이가. 애고 더러버...”
“그럼 형이 사목회장 그거 해. 그러면 되잖아.”
“치버라. 니 그딴 말 한 번만 더 하면 쥐기삔데이.”

그것은 공연한 말이 아니었다. 요셉 형은 언제나 없는 자의 편에 서 있었고 그 날도 그 사목회장 되겠다고 자기를 찾아온 양반하고 대판 싸우고 와서 씩씩대는 것이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내 눈에는 요셉형의 빈소에서 ‘존경’ 운운하는 것이야말로 망자에 대한 모독으로 비쳐졌다.

허나 어쩌랴.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이들이 성당에서 보다 높은 직책을 맡고자 하고 있고, 직책 맡은 이와 그렇지 않은 이가 구별되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직책이 곧 신앙의 표상인 것처럼 다들 생각하고 있고, 그래서 결국 예수님이 그토록 사랑하셨던 ‘언저리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사라져가고 있으니 말이다.

암튼 요셉 형이 서서히 더욱더 그리워질 듯하다.

 

/변영국 2008-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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