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국의 세상만사 인생사]

마치 때가 끼듯 끼어 있는 저녁나절 구름들의 튼실한 엉덩이에, 불그레한 해 기운이 걸려 있다. 흉하다. 아름답지 않다. 저 붉은 빛은 조금 전까지 극단으로 치달아 감당하기 힘든 폭염으로 나를 태울 듯이 달려들던 햇빛이 죽어가며 내지르는 단말마의 비명이며, 목 졸린 자 특유의 불거진 핏줄이며, 내일 다시 나타나 너를 또 괴롭히겠노라는 저주에 다름 아닌 바, 하나도 아름답지 않다. 구름을 붉게 물들였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 노을을 아름답다 얘기하는 이들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하나도 사랑스럽지 않다.

나는 무엇을 했는가.
김운태 요셉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과연 나는 그에게 무엇을 했나? 어줍잖은 농담 몇 마디에 밝게 웃어 주던 요셉 형의 그 웃음보다 과연 무엇을 그에게 더 해 줬던가?
나에게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라는 그 끝없는 기쁨을 준 요셉 형에게 과연 나는 어떤 기쁨을 주었나. 하나도 준 것이 없다. 하나도 준 것이 없기에 그는 지금 숨을 헐떡거리면서 죽어가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너는 형에게 할 만큼 했어’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의 멱살이라도 잡을 것 같다.

우리 어머님 돌아가실 때, 부여 노인 병원의 외로운 중환자실에서, 자식 놈이 곁을 지키지도 않은 외로운 죽음을 맞은 그 분의 시신이 갈산동 성당 영안실에 당도했을 때, 그저 홑이불에 덮여 있던 그 분의 시신을 정성스럽게 받아 안은 두 명의 잊을 수 없는 형님들 중 하나가 바로 우리 운태 형이었다. 운태 형은 어머님의 시신 앞에서 나보다 더 울었다. 운태 형은 돈 없는 우리 부부가 장례비용을 마련하고자 은행에서 현금 서비스를 받으러 갈 때 마다 쫓아와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애기했다.
“니 그것 가지고 되나. 돈 좀 줄까? 야 이 놈아야. 안 갚아도 된단 말이다.”
그런 운태 형이 식도암 수술을 받고 만 일 년 만에 죽는단다. 그리고 나는 그 형에게 아무 것도 해 주지 못했다.

너무 낡은 차를 몰고 운태 형에게 문병을 가다가 차가 퍼진 날, 그래서 약속보다 조금 늦게 병원에 도착해서 “에이 고물 같은 차 또 퍼졌어. 죽을 뻔 했네.” 어쩌구 하면서 늦게 온 것을 변명하다가 나는 더 큰 고역을 당해야 했다. 운태 형이 자기 차를 줄 테니까 제발 내 차를 버리라고 하소연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자기는 이제 죽을 거니까 차가 필요 없지만 나는 차를 쓸 일도 많은데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이라며 제발 제발, 하면서 통사정을 하는 운태 형에게 나는 처음으로 화를 냈었다.
“형이 왜 죽어. 그리고 왜 차가 필요 없어. 형수는 차 안 갖고 다녀? 제발 되는 얘기를 해 좀.”

운태형은 피식 웃으며 “그런가?” 했다.

아 하느님은 너무 큰 거인을 데려가시려고 한다.

이 나라 역대 대통령을 다 합한 것 보다 수십 배는 더 중요한 인간을 데려가시려고 한다. 도대체 하늘나라에서 뭔 할 일이 그렇게 많다고 그러시는지 모르겠다. 운태 형 같은 좋은 인간들만 모아다가 만드는 천국이라면 그까짓 거 나도 만들 수 있겠다. 이건 반칙이다. 하늘나라에 사는 분들은 나처럼 불쌍하거나 약하거나 치사하거나 욕심꾸러기도 아닐 텐데 뭐가 더 필요한 걸까?

아...
또 문자가 온다. 이제 심장이 멎어간단다...
빨리 일산 병원에 가고 싶다. 이놈의 마누라는 왜 이렇게 안 오는지... 허나 마누라를 기다려야 한다. 용인에서 오는 시외버스 한 구석에 앉아 분명히 남이 다 들을 수 있게 소리를 내어 엉엉 울며 급히 오고 있을 테니까.
여보...
어쩌지?
운태형이 죽으면 나 어떻게 하지?......

 

/변영국 2008-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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