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집행자>에서 사형을 집행하는 주인공으로 연기한 조재현 씨.

희대의 연쇄살인범 유 **, 강 **, 그리고 아동 성범죄자 조 ** 등이 저지른, 상상을 초월한 반인륜적인 범죄행각을 보면 먼저 가슴이 서늘해진다. 그리고 분노가 치민다. ‘어찌 인간의 탈을 쓰고 이럴 수가......’ 더 나아가 두려움이 몰려온다. 주변 사람까지 의심스럽다. ‘저 사람...... 뭐 하는 사람이지? 딱히 뭐 하는 일도 없어 보이고...... 조심해야겠어......’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더 하지 않겠는가. "모르는 사람이 길을 알려달라고 해도 절대 알려주면 안 돼! 그냥 모른다고 해, 알았지?" 미풍양속을 자랑하던 우리나라는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이제 길 모르는 사람에게 길 알려주는 친절을 베풀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왜? ‘길 모르는 사람’을 위장한 사람들에게 당한 아이들이 많기 때문에.

이러한 반사회적이고 극악무도한 범죄자에게 법을 잘 모르는 일반사람들조차 사형을 포함한 중형을 선고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타나는 양상은 다소 다르다. 이른바 사형존치론자와 사형폐지론자로 나누어지게 된다. 사형존치론자들에게는 이런 사람들하고 절대 어울려 살 수 없다, 감옥에 가둬 우리가 낸 세금으로 살게 하고 싶지 않다, 이런 사람은 죽어도 당연하다, 이렇게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르면 어떻게 되는지 법이 보여줘야 한다, 범죄자의 인권보다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이 겪는 고통과 절망을 가볍게 생각하면 안된다, 한 가정이 파괴된 것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등과 같은 생각이 지배적릴 것이다. 반면 사형폐지론자들은 범죄자에게도 인권이 있다며, 죄를 벌하되 사형 대신 감형없는 무기징역형으로 대체하자는 사형폐지발의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지난 12년 동안 사형집행을 하지 않은 사실상 사형폐지국이다. 사형제도의 찬반 논의가 활발하고 지난 17대와 18대 국회에 사형폐지특별법이 발의된 상태인 가운데 사형을 소재로 한 영화 <집행자>가 상영 중이다.

이 영화의 감독 최진호씨는 지난 11월 4일 중앙시네마에서 열린 특별시사회에서 이 영화를 두고 “사형제도의 찬반을 다루는 영화는 아니다. 그러나 비켜갈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다. 엄밀히 말하면, <집행자>는 어떤 흉악한 범죄 사건이 터질 때마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사형의 당위성을 말해준다거나 반대로 그럼에도 생명은 존엄하므로 그 흉악범을 용서해야한다는 줄거리를 담고 있지 않다. 그러나 기존에 사형을 소재로 한 영화가 주로 사형수와 피해자의 마음의 변화를 읽어 내려갔다고 한다면, 이 영화는 사형을 집행하는 교도관의 시선에 맞추어 사형제도가 갖는 야만성을 충분히 폭로하고 있다.

영화에서 장영두는 12 명의 여성을 강간, 사체를 유기한 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교도소 독방에 수감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12 년이 넘도록 집행되지 않은 사형제도가 들썩이고 결국 흉흉한 민심을 잠재우려는 듯 법무부 장관은 3 명의 사형수에 대해 사형집행을 명령한다. 교도관 배교사를 제외한 나머지 교도관들은 절대 사형집행을 못한다고 하여 결국 제비를 뽑아 집행자를 정한다. 제비에 뽑힌 교도관들은 사형집행 경험이 없다.

이들은 10여 년 동안 사용하지 않은 집행장을 정리하고 집행 예행연습을 한다. 반면 과거에 사형집행을 해 본 김교위는 12 년 만에 부활한 사형집행을 앞두고 함께 일했던 옛 동료를 찾아간다. 그러나 옛 동료는 사람을 죽였다는 자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부탁한다. 사형집행 전날 밤, 집행자들은 모두 긴장하고 있다.

아침 7시 30분. 사형이 차례차례 집행된다. 첫째 번과 둘째 번은 순조롭게 진행된다. 12 년 동안 집행되지 않았음을 말해주기라도 하듯, 아니면 사형제도를 부인하기라도 하듯, 셋째 번 사형수 집행에 차질이 생긴다. 단추가 작동되지 않아 마룻바닥이 열리지 않는다. 사형수로 죽음의 자리에 앉은 장영두나 그것을 집행하는 교도관이나 모두 거의 제 정신이 아니다. 배교사는 마룻바닥을 쳐대기 시작하고 급기야 ‘철커덕’하며 장영두는 밑으로 떨어진다. 의사가 숨이 끊어졌는지를 확인하지만, 장영두는 아직 살아있고 배교사는 다시 미친 듯이 밧줄에 매달려 있는 장영두 발을 붙잡고 밑으로 끌어당긴다......

영화는 다음 장면을 연상할 수 있을 정도로 다소 교과서적이고 드라마적인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런 빤한 줄거리를 담고 있다 하더라도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사형집행 자체가 주는 공포이다. 사형수는 사형을 바로 눈 앞에 두고 살려 달라 절규하고, 집행자들은 죽이는 게 아니라 법을 집행하는 거라고 애써 자위하지만 집행을 둘러싼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사형은 사형수뿐만 아니라 집행자에게도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가져다주고 있다.  

▲11월 4일에 열린 특별시사회에 정진석 추기경과 염수정주교, 조규만 주교 등이 참석해 시사회에 참석한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정추기경은 영화감상 후 <집행자>가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생명까지 보존해야 한다는 것을 잘 표현했으며, 삶의 존귀함을 반성할 수 있는 디테일을 준 영화라고 평했다. 그는 또 이 영화가 사형폐지운동에 기폭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교구 교정사목위원장 이영우 신부는 말한다.


“만약 사형제도가 부활하여 사형이 집행되면 성직자들도 함께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교도소에서 자기 죄를 반성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그것을 봐야하는 것은 비극입니다. 이전에 사형집행을 했던 교도관의 얘기를 들었는데 그는 정년까지도 사형수의 수번, 얼굴까지 기억에 남는다고 했습니다.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사형수, 교도관 성직자 모두가 자연스럽지 못한 죽음에 참여하는 것이지요. 한 인간의 죽음에 같이 죽어가는 겁니다.”

흉악범죄자에 대한 분노나 두려움은 당연하고, 범죄 없는 평온한 사회에서 살기 바라는 것은 또한 지극히 당연하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평화로운 삶을 위해서, 흉악범을 없애기 위해 어떤 사람이 ‘망나니’가 되어 다른 사람을 죽일 수 없으며, 우리에게도 죽이라고 요구할 권한 또한 없다. 오히려 죄인도 인간이라는 너무도 명료한 사실, 그리고 그도 분명 다시 태어날 수 있으리라는 인간에 대한 믿음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두려움과 공포를 떨쳐버리게 할 것이다. 반인륜적이고 반사회적인 범죄는 우리 모두에게 다시 인간 본연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다른 사람을 죽이고 내가 사는 죽음의 문화가 아니라 서로를 살리는 생명의 문화가 절실한 때다.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고 소회를 나누어 준  <집행자> 영화감독 최진호씨의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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