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7월 5일 시청 앞 광장에서 대규모 촛불 집회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 날은 나도 좀 나가서 간만에 감격의 눈물도 뿌려보고 분노의 주먹도 쥐어 보고 허접하게 늙어가고 있을 것이 분명한 내 동창 놈들도 만나서 맛있는 것도 얻어먹고 해야지 하고 있는데, 인터넷에서 바로 그 날 보수 꼴통 천 여 명이 모여 ‘촛불 반대 집회’ 를 할 예정이라는 기사를 보고 배를 잡고 웃었다.

세상에 그렇게 웃기는 일이 또 있을까?
우선 이름이 웃긴다. 세상에 반대할 게 없어서 ‘촛불’을 반대하냐? 촛불이 뭘 어쨌게 반대 하냐? 니들은 왜 그렇게 하는 짓 마다 꼴통 짓이냐? 이런 얘기를 해 주고 싶지만 해 봐야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을 것이 뻔하니 관두는 것이 좋을 듯 하고 다음으로 넘어가자.

다음으로는 발상이 웃긴다. 도대체 거기서 외쳐질 구호가 뭘까 하고 생각해보면 어찌 웃기지 않을 수가 있는가 말이다. 몇 가지만 나열해 보면,

‘대통령님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이 피켓을 들고 서 있을 할아버지를 연상해보라. 이건 이미 코미디를 넘어서 비극에 속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쓸데없는 촛불 시위, 나라 경제 파탄 난다’
(이 피켓을 들고 외치는 모습이 제발 다른 나라 언론사를 통해 유포되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란다)
‘품질 좋은 미국 소고기 우리가 다 먹겠다’
(아주 그냥 포크레인으로 퍼서 먹여주고 싶다)

거기는 왜 찾아갔을까?


종교계를 달래기 위해 한 총리가 명동을 방문했단다.
아니, 촛불을 든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 아픔에 동참하고자 비가 오는 가운데서도 식음을 전폐하고 온몸으로 주님께 부르짖는 거리의 사제단을 바로 그 곳, 거리로 방문해서 삼천 배를 해도 시원치 않을 판국에, 사제단의 거리 미사를 ‘우려하며’ 바라보고 있는 거기는 왜 찾아갔을까?

거기서 한 총리는 ‘아무리 정책이 좋아도 국민이 이해를 못하면’ 소용이 없다는 해괴한 이야기를 했고 모 주교님은 ‘정부의 노력에 비해 (국민에게) 잘 전달이 되지 않았음’을 얘기하셨다고 하니 그게 도대체 뭔 얘긴지, 과연 정부의 노력이 뭐고 정책이 뭔지 아직도 오리무중인 나는 그저 나의 부족한 신심이나 탓해야 하나?
이건 웃기다고 보기에는 좀 그렇고 진짜 웃기는 건...


미국산 소고기가 안전하다

총리실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구입했단다. 목적은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한다. (갑자기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라는, 정윤희 주연의 허접한 영화가 생각난다.)

우선 총리실 직원들이 너무 안됐다. 물론 구입만 하고 몰래 전량 폐기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한 나라의 행정을 총괄하는 총리가 가오가 있지 그런 치사찬란한 짓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전제로 할 때 분명히 그걸 먹을 텐데 과연 그것을 먹는 그 직원들의 표정은 어떨까? 같은 민족으로서 한없는 연민과 안타까움을 느끼는 바이다. 그러니 총리실 직원들에게 내 한 수 가르쳐주고 싶다.
우선 총리에게 다음과 같이 요구하라.

‘그 쇠고기 집으로 가져가서 가족과 함께 드십시오.’
‘이왕 드시는 김에 좀더 국민들이 적극적으로 안심할 수 있게 어깨뼈로 만든 티본스테이크와 내장 볶음, 그리고 수입 사골로 푹 우려낸 곰탕을 매일 장복하십시오.’
‘그저 기사로만 발송하면 국민들이 믿지 않을 것이 뻔하니 집의 식탁에 여러 각도에서 식탁을 비출 수 있는 CCTV를 설치하시고 가급적이면 하루에 두 끼 이상은 집에서 식사하십시오.’
‘미국산 쇠고기임을 증명하는 구입 경로도 실시간으로 중계하십시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손자들과 손녀들, 아들딸들도 같이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일 년만 버티시면 아마 국민들이 잠잠해질 것입니다’

물론 짤리겠지. 그리고 아마 다른 곳에 취직도 안 될 거다. 왜? 괘씸하니까.
바로 그게 웃기는 거다. 도대체 자식들에게 뭐라고 하려고 그런 속 보이는 짓을 하는지 참 웃기고도 웃긴다.

조갑제라는, 총알도 아까운 인간이 시청 앞 거리의 신부님들을 지칭하면서 엄정하게 법에 따라 집행해야 한다고 떠들었단다. 말하자면 신부님들을 어서어서 옥에 가두고 때리고 윽박지르라고 성토하는 모양이다.
언제까지 그런 견음(犬音)들을 들어야 하는 것일까...
아...
우리가 맞서야 할 상대들이 너무, 엄청나게 띨띨하다.
절절히 다가온다. 모르고 저지르는 죄악은 알고 저지르는 죄악보다 훨씬 더 잔혹하고 무섭다는 옛날 현자의 경고가...

 

/변영국 2008-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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