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천주교인권위 김덕진

▲용산참사 발생 며칠 후...현장(사진/한상봉)

용산참사의 1심 재판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 27부(한양석 부장판사)는 망루 농성 철거민 9명 전원에게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상죄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징역 5년 이상의 무거운 형량이 선고된 것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지는 않다. 형량이 얼마가 나왔든지 이번 법원의 결정은 승복할 수도 존중 할 수도 없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어찌 이 모든 일의 책임이 철거민들에게만 있다는 것인가? 서울중앙지법 311호에서 공판을 방청한 사람들은 모두 검찰의 엉터리 기소논리에 실소를 참을 수 없었고 사실을 왜곡하며 억지스럽게 공소사실을 끼워 맞추려고 무리수를 두는 모습에 짜증이 났다.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한 경찰특공대원들이 1월 20일 오전 7시 18분경 이후 2차 진압작전을 위해 망루에 진입한 후에는 불붙은 화염병을 던지는 농성자들을 보지 못했다고 연이어 증언하자 당황해 하는 검사들의 표정도 보았다. 공판을 지켜 본 평범한 방청객들도, 날카로운 시선으로 공판을 기록한 기자들도, 재판장의 경위들이나 공인근무 청년들도 다 알게 된 용산참사의 진실을 십수년 판사경력을 가진 재판부와 검찰만 억지로 모른 척 하고 있다.

나는 기본적으로 경찰, 검찰 등 공권력을 존중하며 살아왔다. 법원의 판결은 더욱 그렇다. 아 역시 억울하다면 억울하게 짧지 않은 징역도 살았고 체포되고 재판받고 벌금 내는 일을 수차례 더 반복했지만 난 여전히 그들의 사명감과 자존심을 믿고 있다. 양심과 사명감을 가진 대부분들의 경찰관들과 검사들은 지금도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을 검거하기 위해, 사회 곳곳의 부조리와 부정부패를 척결하기 위해, 억울한 사람들의 안타까운 처지를 위해, 밤잠도 못 자고 가족도 돌보지 못하며 일선에서 노력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우리나라 최고의 엘리트라고 하는 판사들 역시 언제나 공정하고 치우침이 없는 판결을 내리며 우리 사회에서 분쟁을 해결하는 마지막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고도 믿는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다. 그렇치 않고서는 이 나라가 지탱될 수가 없다.

그런데 이 엄정한 공권력과 신성한 법원이 왜 정부에 비판을 가하는 국민들에게는, 왜 자본권력에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들에게만은 이토록 가혹하고 편파적인지 모르겠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고 그 강도가 더 심해지기는 했지만 노무현 · 김대중 정권에서도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어느덧 민중의 지팡이는 표현의 자유와 집회시위의 자유를 억압하는 몽둥이가 되었고 공익의 대변자 검찰은 MB나 삼성의 대변자가 되어가고 있다. 여기에 한 몫을 거들고 나서는 사법부를 보며 국민 중 어느 누가 절망하지 않겠는가?

나는 선고공판에서 검사가 낭독했던 검찰의 최종 의견서를 재판장의 목소리로 다시 들었다. 변호인과 피고인들의 주장이나 입장은 64페이지 판결문에 단 한줄도 없다. 오로지 검찰이 불충분한 증거에 근거해 주장한 내용, 검찰이 짜맞춘 엉성한 논리의 반복이었다. 경찰특공대의 2차 진입시 농성자들이 던진 화염병을 보았다는 경찰특공대 증언은 없다. 하지만 재판부는 1차 진입 때 화염병을 던진 농성자들을 목격한 경찰특공대가 다수 있으므로 2차 진입시에도 농성자들이 불붙은 화염병을 던졌을 것이라고 추측하며 1차 진입 때 던진 화염병이 경찰의 소화기 등에 의해 쉽게 진화되었기 때문에 2차 진입때도 별 탈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던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고 있다.

증거나 증인도 없이 재판장이 추측하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유죄를 선고하고 징역 5~6년을 선고 할 수 있는 것이었는지 정말 몰랐다. 철저한 증거주의, 공판중심주의로 재판을 하겠다고 선언한 사법부가 아닌가?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집회 참석자 재판 개입 문제가 불거졌을 때 전국의 법원에서 평판사 회의를 열며 ‘사법부는 다르다’라고 세상에 외쳤던 젊은 판사들이 아닌가? 그런 법원이 온 국민의 관심이 쏠려있고 국민 여섯 명이 죽은 이 참혹한 사건의 판결을 추측해서 내린다는 재판장의 말을 들으며 나는 내 귀를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1월 19일의 남일당 건물 주변의 상황이 경찰특공대의 결정을 한나절 만에 결정하여 전격 투입할 만큼 위험한 상황이었다는 판단도 인정할 수가 없다. 판결문에 첨부된 19일의 피해라는 것이 주택 2층 유리창 파손(수리비 5만원), 자동차 유리창 파손(수리비 25만원), 상가 한 곳에 화재 번짐, 카페 입간판 손괴, 약국 에어콘 실외기 일부 소훼, 승용차 유리창 파손(수리비 12만원)등 총 6건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피해를 입힌 것이 사실이라면 그 피해를 보상해야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과연 겨울날 새벽 내내 수백톤의 물포를 쏘아대며 컨테이너 박스에 경찰특공대를 싣고 진압작전을 강행하여 망루를 다 부수고 농성자들을 다 잡아들여야 할 정도의 엄청난 피해사실이라고 하는 것은 재판부가 너무 옹색한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망루 농성자들이 일반 시민을 향해 이유 없이 화염병을 던지고 지나가는 아무 승용차나 겨냥하여 새총으로 골프공을 발사할 리가 있는가? 용역직원들이 죽이겠다고 달려들지 않았다면, 경찰이 무조건 투항하라고 강권하며 콘테이너 박스에 경찰특공대를 태워 옥상위로 올려보내지 않았다면 망루에 있던 철거민들이 먼저 공격적으로 골프공을 쏘고 화염병을 쏠 리가 있었겠냐는 말이다.

경찰청장에 내정된 김석기 당시 서울경찰청장이 자신의 취임식이 임박한 상황에서 철거민들의 망루농성이 거추장스러운 것이었기 때문에 그다지 위험한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경찰특공대를 투입하여 강경진압을 강행시켰을 것이라는 추측은 사법부가 왜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백번 양보해서 남의 건물 옥상에 올라가 망루를 지은 것이 잘못이라고 치자. 이유야 어찌 되었던 화염병을 만들어 던지고 세녹스 60통을 사서 쌓아 두었던 것도 잘못이라고 치자. 법에 따라 조합에서 주는 보상금에 감지덕지 하지 않고 생계대책을 요구한 것 자체도 잘못이라고 치자. 그런 잘못을 하면 겨울 새벽에 경찰특공대가 용역과의 합동 작전으로 물포 7개를 한시간도 넘게 집중적으로 쏘아대고, 만일의 사태에 대한 안전장치도 준비하지 않고, 농성자들이 주장하는 것이 무엇이고 분쟁의 해결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지도 않은 채 이례적으로 강경진압을 펼쳐서 사람이 6명이나 죽게 되었어도 경찰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말인가?

위험물질을 준비한 철거민들에게 죄가 있다면 그 위험물질들을 실제로 위험하게 만든 경찰의 잘못은 왜 묻지 않는가 말이다.

이러한 참사를 불러오는 데에 경찰과 정부는 정말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것인가? 경찰특공대의 진압이 없었다면 참사는 없었을 것이라는 명백한 사실을 진정 외면할 수 있다는 말인가? 판결문에 나온 것처럼 이번에 투입된 경찰특공대는 그동안 오산 세교 철거민 농성, 홈에버 서울 상암점 해고자 농성, 주식회사 콜텍 본사 해고자 농성, 포스코 비정규직 노동자 농성 등을 무자비한 폭력으로 진압하는 역할을 해 왔다.

이제 서울중앙지법 형사 27부의 판결로 날개를 단 경찰특공대는 더 자주, 더 열심히 시위 현장에 투입 될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을 죽게 만들어도 아무 잘못이 없다는데 이제 그들이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말이다. 이 판결로 인해 국민은 더 억압받고 통제받게 될 것이다. 이 책임을 재판부가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묻고 싶다.

판결문 곳곳에는 공판이 진행되는 내내 불편했던 재판부의 심경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 엄숙한 이 법정에서 계획적으로 재판의 진행을 방해하고 이 법정을 자신들의 정치적인 의사표현의 장으로 변질시키려 하는 등 범죄 후의 정황이 매우 좋지 않다.”는 구절은 재판부의 권위적인 입장을 잘 보여준다.

변호인 없이 재판 받을 수 없으니 새로운 변호인을 선임할 때 까지 1주일 정도만 재판을 연기 해 달라고 호소하는 피고인들을 외면하고 재판을 강행한 재판부에 호소하며 피고인들이 방청석을 향해 돌아앉았고 방청객 몇몇이 항의를 표시한 것이 재판을 방해한 일이라면 수사기록 3천쪽을 공개하라는 법원의 명령을 어기면서도 수사기록을 내 놓치 않은 검찰은 재판을 방해하고 피고인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공익의 대변자로서의 직무를 유기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아쉽다”는 말 한마디로 일축하고 이토록 모든 잘못을 철거민들에게만 돌린다는 말인가?

우리는 검찰 은닉 수사기록 3천쪽 없이 진행되는 재판은 부당하다고 끊임없이 주장해왔다. 검찰은 형사소송법 266조를 교묘하게 해석해 불이익을 감수하겠다고 하며 공개를 거부했고 한양석 판사는 이 문제를 재론하지 말라며 호통을 쳤다. 변호인단이 재판을 거부하고 사임계를 내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는데도 국선변호인 한명을 선임한 채 재판을 강행했다.

재판부가 판단의 근거로 삼은 증거들도 납득이 되질 않는다. 국과수 감정당시 발전기의 전원이 OFF로 되어 있었으니 발전기가 작동 중이었던 것이 아니라던지, 망루 계단에 화염병과 같은 색의 병조각들이 화염병을 던져서 깨진 것으로 보인다던지, 경찰이 수차례 협상을 시도 했으나 무조건 거부했다던지 하는 대목에서는 판결문을 내 던질 수 밖에 없다. 판결문 어디에도 재판장으로서의 진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재판부 기피 신청, 변호인 사퇴, 피고인과 방청객들의 퇴장 등으로 상처받은 권위 때문에 몹시 짜증이 나있고 검찰의 공소사실을 다 인정해 주고 말겠다는 오기만 읽힌다.

용산참사 1심 선고와 미디어법 국회통과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보며 법원도 여전히 정권에게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확인하며 씁쓸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난 법률전문가도 아니고 법에 대해 깊게 공부한 적도 없다. 하지만 수차례 피고인의 신분으로 법정에 서면서 아무리 진실을 말해도 판사가 외면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번 용산참사 재판에서 한양석 부장판사가 외면한 것은 비단 용산참사의 진실만이 아니다. 그가 외면한 것은 수사기록 3천쪽을 은닉한 검찰의 치명적인 잘못, 유가족들 절규와 피고인들의 호소, 그리고 이 사건의 올바른 판결을 염원했던 온 국민의 바램,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힘없고 빽없는 사람들이 기댈 마지막 보루는 그래도 법원밖에 없다는 믿음과 희망을 저버린 것이다.

우리는 항소심에서 또 최선을 다해 법정투쟁을 펼쳐 나갈 것이다. 수사기록 3천쪽 없이는 또 반쪽짜리 재판이 될 것이고 서울고등법원 역시 권력의 눈치를 보며 진실을 외면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국민이 납득하지 않는 재판 결과는 10년, 20년 후에라도 반드시 진실이 밝혀 질 것이라는 것도 잘 안다. 인혁당 사건이 그랬고,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 사건이 그랬다. 지금 당장 철거민들을 감옥에 가둘 수는 있겠지만 진실은 감옥에 가둘 수가 없다.

대한민국 사법부에 절망했지만 우리는 결코 여기서 멈추지는 않는다. 국민을 우습게 보는 정권, 힘있는 자들의 보디가드인 검찰과 경찰, 그리고 더 이상 신성할 수 없는 법원에게 이렇게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망루 화재에서 돌아가신 분들을 검찰이 죽이고, 법원이 다시 죽였다. 인혁당 선생 여덟분에게 사형을 선고한 날이 사법사상 암흑의 날이었다면 2009년 10월 28일 용산참사 사건의 선고가 있었던 날은 사법사상 가장 우쓰꽝스럽고 수치스러운 날로 기억될 것이다. 시간이 얼마가 걸리지는 모르겠지만 반드시 이 사건의 진실을 밝혀 낼 것이다. 용산참사 해결을 위한 우리들의 기도와 우리들의 선한 싸움은 이제 두 번째 시즌을 시작한다. 이 땅의 민주주의와 인권이 용산에서 다시 살아날 것을 믿는다.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김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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