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인수 칼럼]


존경하는 주교님들께 드립니다.
삼국지 류의 사극 영화를 보면 황량한 들판에 양쪽 진영이 팽팽히 맞서서 한 판 승부를 가리려 할 때 맨 앞에 말을 탄 왕들의 기싸움 장면이 종종 나옵니다. 처음엔 용감하게 자원하는 장수를 내보내서 적장과 싸우게 하지요. 그 일대 일 대결이 불리하다 싶으면 또 다른 지원자를 내보내고 그것도 안 되겠다 싶으면 이번에는 자기가 평소에 제일 신임하는 장수를 불러 특명을 내립니다. “그대를 믿노니 나가서 승리하여 짐의 원을 풀라!” 여기서 뽑힌 장수가 적장을 쓰러뜨리면 군대의 사기는 하늘을 찌르고 왕이 앞서 돌진하는 전투는 해보나마나 승리로 끝납니다. 왕이 마무리 제 임무를 다한 것입니다.

올 2009년이 시작되면서 일어난 용산의 참변은 낙엽이 뒹구는 지금까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습니다. 5구의 시신은 냉동고에 언 채로 갇혀있고, 가족들은 감옥에서, 길거리에서 억울함과 외로움에 치를 떨고 있습니다. 우리까지 이들을 버려둘 수는 없다고, 우리라도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고, 사제들은 끝도 안 보이는 천막투쟁을 오늘도 계속합니다. 이명박정부는 급할 것도 아쉬울 것도 없으니 스스로 지쳐서 주저앉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습니다. 혹시나 했던 새 국무총리도 역시나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결국 해결사는 청와대라는 말인데요, 그곳 주인은 지금 4대강 죽이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이 일을 어쩌면 좋습니까?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했습니다. 엊그제 명동 들머리에서 우리의 결집된 큰 힘을 보여 주자고 읍소하던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의 목멘 애원은 차라리 애처로웠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제 교회의 최고지도자들이 나서십시오! 수하 몇몇 장수들의 정의감과 패기만으로는 역부족입니다. 지난해에 수 십, 수 백 만의 촛불들이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지만 교회에서 주교들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사제나 신자는 거의 없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금 많은 사제들이 정의구현사제단의 소신과 행동에 공감하면서도 선뜻 그 깃발 아래 모여들기를 주저하는 까닭은 주교님들의 눈치를 살피기 때문입니다. 장상이 싫어하는 걸 굳이 고집해서 미운 털 박힐 이유가 있겠냐는 것이지요. 나무라기 어렵습니다. 보좌신부도 주임의 눈치를 살피는데 하물며 자신의 인사권을 쥔 윗분의 눈치를 안 보겠습니까?

평신도들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저는 신자들에게서 주교의 뜻을 따르지 않는 사제가 어찌 신자들에게 순명을 요구할 수 있느냐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입이 열 개라도 답변이 궁색한 무서운 질문입니다. 주교님들은 이미 사제의 권위가 예전에 비해 많이 손상되었음을 피부로 느끼실 겁니다. 슬픈 일입니다. 하지만 주교의 한 말씀은 거의 절대적입니다. 하느님의 명령, 하느님의 뜻으로 아는 신자들이 대부분입니다. 그게 바람직한 일이냐 아니냐를 차치하고 견진성사를 집전하러 본당에 오신 주교님의 높다란 모자와 지팡이에 무한한 감동을 느꼈다는 신자들이 ‘아직도’ 많다는 것을 알아주십시오. 그러니 주교님들이 나서시면 그동안 내색도 않고 엎드려 있던 수많은 사제들과 신자들이 그 뒤를 따라나설 것은 너무도 뻔한 일입니다. 전국의 주교님들이, 아니 가까운 서울, 수원, 인천교구의 주교님만이라도 주교관을 쓰고 목장을 짚고 용산에 나서시면 아마 용산역 앞의 넓은 대로는 세 교구의 사제와 신자들로 가득찰 것입니다. 그 날이 바로 용산문제가 해결되는 날이겠지요. 제가 지금 꿈을 꾸고 있습니까?

제가 어찌 거대한 교회조직을 이끄시는 그 복잡하고 어려운 사정을 헤아리겠습니까마는 한 말씀만 덧붙이겠습니다. 주교님들이 보시기에 이건 정말 아니다 싶으시면 “'일부' 사제와 신자들은 깨끗이 손을 떼라”고 주교단의 이름으로 교서를 내리십시오. 마냥 침묵하고 지켜만 보는 종잡을 수 없는 태도를 그만 거두십시오.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호인수 (신부, 인천교구 고강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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