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진한 걸음, 산티아고 가는길-7]

▲걷고 싶다. 걷고 싶다. 걷고 싶다.

그분의 방식
2008년 5월 22일 라바날델까미노Rabanal del camino

귀엽고 앙증맞은 세 명의 프랑스 할머니는 코골이계의 하모니가 무엇인지 보여주셨다. 견디다 못해 이어폰을 귀에 꽂았는데 마침 듣고 있는 음악의 드럼 비트와도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친구도 오래 되니 코골이마저 어우러지는구나. 조세트 할머니 저 작은 체구에서 저 울림 깊은 폭파음이 나는 것은 결코 한두 해 내공이 아닐 터였다. 게다가 세 할머니의 강력한 향수 냄새와 파스 냄새는 좁은 방 안을 질식사 직전으로 만들었다. 잠자기도 숨쉬기도 힘든 기나긴 밤이었다.

할머니들이 떠나자 알프레도는 다크 서클이 인중까지 늘어져있는 나를 보더니 택시가 올 때까지 조금 더 자라고 했다. 아직 설사는 멎지 않고 음식 냄새만 맡아도 구토가 치민다. 오늘도 물로 연명하는 신세. 인터넷에 접속해 보니 한국에선 이런 나를 부러워하며 내 위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순례자들 배낭을 다음 마을까지 운반해주는 택시에 배낭 두 개 값을 내고 탔다. 배낭들 틈에 끼어 오늘은 나도 배낭이 되어 실려 간다. 알프레도 아저씨는 나를 꼭 안아주며 무사히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꼭 연락해 달라고 이메일 주소를 적어 주었다. 조금 달리다 보니 날씨가 너무 좋다. 라바날로 가는 길은 햇볕도 적당하고 들꽃도 한창이다. 이제 메세타는 끝이 났고 산길이 시작되었다. 오늘 아침 누군가가 이곳이 갈리시아의 비가 시작되는 지점이라고 했다. 우리의 목적지 산티아고를 품고 있는 갈리시아 주는 365일 중에 300일 비가 내린다는 곳이다. 이 길을 두 발로 걸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도 저들과 함께 온몸으로 바람을 맞으며 이 아름다운 풍경을 두 발로 뚜벅뚜벅 다져보았으면! 그래, 하지만 몇십 킬로미터나마 메세타를 걸었고 이제부터 잘 쉬고 잘 걸으면 돼! 괜찮아, 화이팅! 순진, 아자아자!

택시는 식당을 겸하고 있는 사설 알베르게 앞에 나를 내려주었다. 허기 때문에 더 어지러운 것 같아 식당 주인 이사벨한테 내 상태를 말하니 우유를 한 잔 마셔보라 한다. 우유를 마시고 자리에 누웠는데 갑자기 온몸이 미친듯이 떨리고 구토가 치민다. 게다가 바로 코앞에서 들려오는 정신없는 음악까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알베르게를 뛰쳐나왔다. 수도원에 있다는 휴식의 집을 찾아볼 요량이었다. 하지만 수도원을 찾아가니 빈방이 없다고 했다. 나는 풀이 죽어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북 치고 피리 부는, 멀티태스커 할아버지


오늘은 마을 축제가 있는 날이라 온 동네 사람들이 악기를 들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복을 빌어준다. 북소리와 피리 소리, 흥겹게 춤추는 사람들이 두 겹 세 겹으로 보이면서 현기증이 몰려온다. 손이 떨린다. 나는 더 나아갈 수 있을까? 피레네 이후 처음으로 집에 돌아가고 싶다. 친구들 목소리가 듣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울게 될 것 같아 그만두었다. 오, 제발 독일에서 오신 여러분, 너무 큰 소리로 얘기하지 말아주실래요? 치즈도 조심해 주세요. 저 지금 토하고 싶거든요.

다시 휘청대는 걸음으로 알베르게를 빠져나왔다. 여기서 자다간 아무래도 오늘밤에 하늘나라 구경을 하게 될 것만 같다. 수도원 옆에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작은 알베르게가 있었다. 혹시나 해서 가보니 역시나 침대가 없다. 호스텔이나 호텔이라도 알아봐야겠다 싶어 떠나려던 차에 호스피탈레로 부부가 잠깐만 기다려 보라고 한다. 나를 도울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거다. 그러더니 침대는 없지만 도서실 옆에 있는 창고방에 매트리스를 깔아주겠다고 하셨다. 아스토르가에서 만났던 한국인 리노 할아버지도 선뜻 당신 침대를 내주겠다고 하셨지만 창고가 더 조용하고 쉬기 좋을 거라고 하셔서 그러기로 했다.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가우셀모 알베르게


미국에 살면서 일 년에 몇 주씩 자원봉사를 하러 오는 톰과 다이앤 부부는 며느리가 한국인이고 세 살짜리 손녀딸이 있다고 했다. 다이앤 아줌마는 내가 자기 손녀랑 똑같이 생겼다며 신기해했다. 아주머닌 내게 수프를 끓여주고 구토 멈추는 약을 계속 먹여주었다. 톰 아저씨는 전기 히터를 틀어주고 핫팩을 가져다주었다. 모두들 걱정하며 내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다이앤 아주머니는 위가 힘들 땐, 특히나 동양 사람들에겐 우유가 좋지 않다고 했다. 구토랑 설사는 계속 뱃속을 오르락내리락 했지만 쉴 곳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마음은 편안해졌다.

▲머리맡을 지켜주던 켈트 십자가

다이앤 아주머닌 혹시라도 밤에 아프면 깨우라고 당신 방문을 열어놓겠다고 했다. 희한한 곳이다. 어디서 이렇게 천사 같은 사람들이 툭 튀어나왔을까? 세상엔 원래 천사가 이렇게 많았던 걸까? 게다가 까미노에선 돈과 비례하는 것이 별로 없다. 지금껏 내가 힘들고 아팠을 때 도움을 청할 수 있었던 곳들은 거의가 자원 봉사와 기부제로 운영되는 곳이었다. 돈 내라고 하지 않는 곳이 더 편안하고, 돈 내라고 하지 않는 곳에선 밥도 주고, 돈 내라고 하지 않는 곳의 호스피탈레로들이 항상 더 친절하고 따뜻했다. 내가 살던 곳에서는 돈을 많이 낼수록 모든 게 더 좋았는데 여기선 내가 살던 세상에서 만큼 돈이 힘을 못쓴다. 어떤 호텔, 어떤 병원이 이보다 더 따뜻하고 든든할까. 이 길에서 나는 확신하게 되었다. 하느님의 사랑은 공짜인 게 틀림없다고.

잠들기 직전, 문득 나는 하느님이 몹시도 나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느꼈다. 다이앤 아줌마, 톰 아저씨, 리노 할아버지, 이 모두를 통해 어렴풋이 '그분이 나를 사랑하시는 방식'을 알게 된 것이다. 내 가슴은 고요한 기쁨으로 가득 차올랐다. 창고방은 어둡고 춥고 나는 아직 아팠지만 아주 크고 부드럽고 평화로운 누군가의 품속에서 잠들 수가 있었다.


모든 것이, 하나 (or 모든 것이 하나)
2008년 5월 23일 라바날델까미노Rabanal del camino2nd

귀마개 없이 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따뜻하고 편안하게, 뭔가 기분 좋고 설레는 꿈까지 꾸어가며 잘 잤다. 다이앤 아줌마는 새벽에도 내려와 내 상태를 확인했다. 이제 구토는 멎은 것 같다. 리노 할아버지도 새벽에 떠나면서 나를 들여다보시고는 호스피탈레로 부부에게 나를 잘 부탁한다며 몇 번이나 당부하셨다. 처진 눈이 선해보였던 라파엘 아저씨도 어서 회복하고 앞으로 인생에 좋은 일만 있으라며 축복해 주었다. 다이앤 아줌마 말로는 혹시라도 나를 깨울까봐 모두들 발소리를 죽여서 나갔다고 한다.

나는 아줌마가 주시는 약을 넙죽넙죽 잘 받아먹었다. 아줌마는 흰쌀로 죽을 쑤어주었는데 내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말하지 않아도 기막히게 잘 아셨다. 수도원에서 신부님이 오셔서 순례자를 위한 휴식의 집은 일손이 부족해 문을 닫게 되었다고 하신다. 어쩔 수 없지. 다이앤 아줌마는 한숨 더 자고 일어나서 빨래도 하고 샤워도 하자고 했다. 며칠 동안 구토랑 설사에 찌든 몸도 씻고 옷도 좀 빨아야겠다. 아, 감사하다. 나는 정말 행운아야.

▲창고방에 누워서 본 창문

새벽에 꾼 꿈이 떠올랐다. 난생 처음으로 엄마를 만났다. 엄마는 그동안 나를 사랑해주지 못해서, 함께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엄마는 아주 젊고 힘있고 부드럽고 강했다. 친절하고 따뜻했다. 엄마는 '우주인'으로 선발되어서 곧 우주로 나가게 되었는데 나는 엄마랑 헤어지는 것이 서운하지 않았다. 엄마가 너무도 자랑스러웠고 엄마가 우주로 떠난 뒤에도 우리가 깊이 연결되어 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았다. 나는 엄마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고 더이상 엄마가 없음을 서운해 하거나 엄마를 그리워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았다. 우리는 하나였다.

다이앤 아줌마랑 꿈 이야기를 했다. 아줌마는 내 꿈속의 엄마가 이다음에 내가 엄마가 되었을 때의 모습일거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꿈속의 엄마는 '진짜 나'였다! 나는 드디어 진짜 나를 만났던 거다. 자유롭고 강하고 부드럽고 따뜻한, '참 나'를 말이다! 내가 평생 그리워하고 찾아 헤맨 엄마는, 바로 내 안에 있었다. 내 안에 있는 엄마가 나를 맘껏 사랑하실 수 있도록, 난 그저 나를 열어놓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그리고 그건,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방식과도 같았다.

오후가 되자 비에 젖은 순례자들이 하나 둘 알베르게로 들어왔다. 나는 톰이 일하는 책상 옆에 앉아 순례자들을 구경했다. 오늘도 독일 사람이 제일 많다. 비에 젖어 먼 길을 걸어온 순례자들 얼굴에 피로감과 뿌듯함이 함께 담겨있다. 나도 다시 순례자가 되어 길 위에 서고 싶다. 하지만 발아, 내 몸아, 나는 무조건 네 명령에 따를 거야. 그러니 신호를 줘.

저녁엔 콩이 들어간 수프를 조금 먹을 수 있었다. 건더기를 먹을 수 있다는 건 아주 좋은 신호다. 저녁을 먹고 성당에 가서 그레고리안 성가로 이루어진 미사, '베스파'에 참례했다. 여기 라바날 성당은 순교자들의 무덤 위에 지어졌는데 교회 안엔 흙 속에 파묻힌 뼈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 함께 기도드리는 곳. 나는 이 작은 교회의 진지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눈을 감고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산 사람들이 가득한 작은 교회 안에 죽은 사람들도 무덤에서 일어나 두 손을 모으고 안토니오 신부님의 아름다운 노래를 듣고 있을 것만 같다. 눈 감고 떠올리니 정말 황홀한 그림이었다. 산 사람도 죽은 사람도, 삶도 죽음도 사이좋게 공존하고 있었다. 모든 게 하나였다.

▲비가 그쳤다!

밤에는 폭풍우가 몰아쳤다. 5월의 폭풍우 치는 밤이라니, 내 봄은 오데 갔을꼬. 나는 도서실에서 벽난로를 쬐며 오카리나를 불었다. ‘나뭇잎배’나 '섬집아기’ 같은 우리 동요도 좋지만 비틀즈의 노래는 어느 나라 사람들이나 다 좋아한다. '오블라디 오블라다'를 불고 있는데 사진기를 들고 오던 톰 아저씨가 무뚝뚝하게 난로 앞에 앉은 독일 사람들에게 한 마디 한다.
"세상에, 이 노래에 춤을 안출 수가 있다니!"

▲작고 소박한 라바날 성당

▲아래 쪽에 삐죽삐죽 튀어나온 게 순교자들의 뼈다

김순진 (애니메이션 시나리오를 쓰며, 어린이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는 순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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