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오후 9시30분에 닫는다는 성전문, 12일엔 왜?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시국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명동성당 앞마당에서도 스크린을 설치하고 신자들이 미사에 참여하고 있다. 명동성당 예수상 뒷모습이 처연하다. (사진/고동주)

일반적으로 월요일에는 거의 모든 성당에서 새벽미사만 거행된다. 한국교회의 상징이자,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는 월요일에도 오후 6시에 미사가 있다. 마음만 먹으면 월요일에도 명동성당에서 저녁 미사를 하고, 성체조배도 하면서 주님안에서 편안하게 쉴 수가 있다. 행여 일과에 쫒겨 미사 시간을 맞추지 못할지라도 밤 9시 전에만 가면 한 30분 가량은 성체조배를 할 수 있어 참 좋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고, 가을바람 같지 않게 매서움을 품은 바람이 불어 옷깃을 여미게 한 10월19일 월요일에도 서둘러 일과를 정리하고 명동성당으로 가 미사에 참석했다.

성전에 들어서니 미사 전에 삼종기도를 하고 있었다. 추운 날씨에도 변함없이 신자들이 참석해 거의 성전을 채우고 있었다. 미사가 끝나고도 조금 더 성전에 머물러 있었다. 대부분 신자들은 미사가 끝나고 성전 문을 나섰지만 제법 많은 사람들이 성체조배를 하면서 자리를 지켰고, 더러는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면서 성전 가장자리를 돌기 시작했다. 가끔 새로운 신자들이 들어와 조용히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기도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주님 안에서 위안을 얻고 싶은 사람들이리라. 월요일을 제외한 평일엔 오후 6시에 이어 7시에도 미사가 있으니 어쩌면 늦게 온 분들은 다른 날엔 7시 미사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성전으로 발길을 향한 사람들은 성체 안에 계신 주님을 만나고, 보다 깊이 주님과의 친교를 원하는 이들일 것이다.

시각을 일주일 전으로 되돌려본다. 말하자면 시간여행인 셈인데-,

2009년 10월 12일 오후 7시 무렵. 서울의 하늘에 똑같이 어둠이 내렸고, 명동성당 들머리에는 용산참사 문제의 해결을 바라는 이들의 발길이 하나, 둘씩 채워지기 시작했다. 오는 순서대로 자리는 채워졌고, 어둠이 깊어지자 사람들의 손에는 촛불이 들려졌다.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한 신자가 용산참사 관련 유인물을 들여다 보고 있다.(사진/한상봉)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주최한 시국기도회가 시작됐고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공연이 무대에 올랐다. 행사장 이모저모를 살펴보기 위해 가톨릭회관 마당부터 시작해 명동성당 언덕길을 올라 성당 마당을 둘러봤다, 가톨릭회관 마당에는 전국에서 모인 사제들이 대부분 모여 있었고, 성당 마당에도 역시 전국사제시국기도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들머리 입구부터 성당까지 이어지는 승용차 다니는 길까지 사람들이 들어차기 시작했고, 가끔 성당 마당에서부터 차량이 빠져나갔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차도까지 막아선 사람들 때문에 불편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조용히 길이 열리기를 기다렸고, 참석자들은 뒤쪽에서 들리는 차량 기척에 조용히 길을 열어주었다. 불편했겠지만, 상황이 그런지라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듯 했다. 질서있게.

미사가 시작되기 전에 잠시 성체조배라도 할 요량으로 명동성당 성전 입구 계단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지나 성전 문을 밀었다.

다른 날과 달리 성전 문은 잠겨져 있었다.

‘미사가 없어 정면 문은 잠그나’ 싶은 생각이 들어 측면 문 쪽으로 가보았다. 그곳도 역시 굳게 닫혀 있었다. 조금 난감해졌다. 소성당 쪽으로 가보았다.

소성당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다. 평생을 사제의 길을 걸으며 하느님의 종으로 살다가 주님 품에 안긴 최광연 모세 신부를 위한 연도가 바쳐지고 있었다. 잠시 머무르며 신부님의 평안한 안식을 위해 기도했다.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할 수 있는데......"
명동성당 지하 소성당으로 들어가는 출입문 윗쪽에 적혀 있는 글귀이다.

"악한 자들의 잔인한 만행보다 선한 사람들의 침묵, 그것이 우리의 비극"
12일에 열린 시국기도회 때 명동성당 들머리 입구에 붙은 글귀였다.

“수업 중. 출입을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계성여자고등학교장”
성전과 마찬가지로 굳게 닫힌 계성여고 문 앞에 버티고 서 있는 글귀였다.
순간 ‘그래, 맞아. 학교는 수업 중일 때 출입을 삼가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성전은? 성전은 왜?’ 라는 의문이 들었다.

편을 가르고, 너의 하느님과 나의 하느님을 따로 찾는 사람들의 이론이라면, 그날, 전국사제시국기도회에 함께 한 예수님은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 아니라는 것일까?

그날, 대성전에 계셨던 하느님은 어쩌면 무척 외롭지 않으셨을까?
소성당에서도, 명동성당 들머리에서도 낭랑하고 우렁찬 기도소리가 울려퍼졌으니 말이다. 대성전에서 침묵하는 주님의 마음이 아프지 않으셨을까? 행여 갇혀진 채, 눈물 흘리진 않으셨을까?

그 시각, 혹 명동성당을 찾은 발길 중에 하느님과 마주앉아 진정으로 주님의 위로를 얻고 싶었던 사람은 없었을까? 성체 앞에 조용히 머물며 주님과 사랑을 나누고 싶은 사람은 없었을까?

평소 아무 생각없이 드나들던 성전의 문-. 대성전에 들어가는 4개의 문을 돌아가며 열어보며 암담함을 느꼈을 때, 시국기도회 미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2009년 10월 12일 저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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