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트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을 읽고 음식문화를 생각함

매일 밥을 먹는다. 좋은 날, 궂은 날,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끼니 찾아 밥을 먹는다. 생명을 부지하겠다는 무의식적인 본능을 좇아 하루 세끼를 꼬박 챙겨 먹는다. 식사(食事)란 무엇인가. 생명의 불쏘시개가 될 만한 질료들을 내 안에 집어넣는 행위가 아닌가. 그러나 과연 그럴까. 방부제가 섞인 햄소시지를 먹는 것도 생명의 불쏘시개를 공급하기 위함인가. 수은이 섞인 푸성귀를 몸 안에 넣는 것도 생명을 위함인가.

먹는 것은 일상적이고 사적인 행위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인간이 세계와 관계를 맺는 방식이기도 하다. 종교가 먹는 행위를 의례의 한 부분으로 수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먹는 행위는 분명 생존, 그 이상의 신성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긴 생명을 유지하는 행위만큼 신성한 노동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인간의 먹거리는 태양과 물과 토양의 은혜가 결합되어 주어지는 축복이다. 음식을 먹음으로써 인간은 우주의 순환이라는 거대한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스턴트 식품에서 우리는 그런 신성함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여전히 그것들은 강력한 맛으로 인간의 혀를 유혹한다. 헬렌 니어링과 스코트 니어링의 책 <조화로운 삶>은 이렇게 말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먹을거리의 어떤 부분을 없애고, 어떤 부분은 남길지 결정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은 이윤을 남길 가능성이다. 이윤을 얻으려면 사람들의 눈에 띄어야 하고 사람들의 입맛을 당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먹을거리를 많이 팔 수 없다. 또한 팔려는 제품은 좋은 품질을 간직한 채로 시장에 나가야 되고, 시장에서 손님이 고를 때까지 가장 보기 좋은 모양으로 무한정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요리된 음식이 소비자들의 밥상에 오르기까지는 단순히 몇 시간이나 며칠이 아니라, 몇 주, 몇 달이 걸려야 한다. 농산물이 이리저리 돌다가 생산자로부터 소비자에게 가는 동안, 이 농산물을 보존하려면 엄청나게 높거나 낮은 온도가 필요하다. 특히 썩거나 상하기 쉬운, 그래서 상품성을 떨어뜨릴 수 있는 성분은 마땅히 제거된다. 비록 그 성분이 건강에 중요하더라도 말이다. 식료품을 만드는 기준은 시장에서 갖는 상품성이지, 소비자의 건강이 아니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식료품을 만드는 업자들은 소비자의 건강보다 먼저 이익을 생각한다. 농업의 최종 귀착지, 바로 ‘먹음의 주체’인 인간을 잊어버린 것이다. 정제된 밀가루가 그 예다. 기름, 단백질, 무기질과 같은 영양분은 낟알의 씨눈과 껍질에 있다는 사실은 상식이다. 그러나 제분업자들은 이런 상식을 간단히 무시한다. 조금만 씹어도 삼킬 수 있는 더 가벼운 빵과 과자를 만들게 하기 위해 제분업자들은 곡식의 낟알에서 씨눈과 껍질을 없앴다. 제분업자들은 밀가루가 희게 보일수록 더 깨끗하거나 고급이라고 생각하게 하기 위해 밀가루를 표백한다. 이 과정에서 밀가루 안에 있는 영양소들이 파괴된다. 이쯤 되고 보면 농업이 먹거리를 제공하는 원래의 기능에서 멀어져 돈을 창출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난도 근거없는 비난만은 아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 버몬트 숲 속에 살았던 스코트 니어링은 어디에서 그 많은 자료를 얻었는지 정부 보고서까지 인용한다.‘많은 밀가루와 빵에는 인, 불소, 규소, 백반, 니코틴산. 브롬산 칼슘과 그밖에도 스무 가지가 넘는 다른 독성 약품이 들어 있다. 빵집에서 만드는 빵도 다른 많은 가공 식품들과 똑같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돈뿐 아니라 건강까지 희생시켜 가면서, 화학약품과 그 대체물질을 만들어서 먹고사는 사람들에게 많은 이익을 준다.’제분은 식품가공의 끔찍한 예 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스코트 니어링은 말한다. 그가 살았던 당시 뉴욕시로 들어오는, 비타민이 제거된 밀가루 제품은 사람들이 먹는 전체 음식의 55퍼센트를 차지했다고 한다.

오신채(五辛菜)라 하여 불가에서 금하는 다섯 가지 음식물이 있다. 마늘과 파, 부추, 달래, 흥거의 다섯 가지가 그것이다. 자극이 강하고 냄새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음식을 공양하면 평정심을 떨어뜨리고, 몸에 냄새를 나게 만들어 청정한 몸과 마음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 이런 음식물을 금하게 한 이유다. 그러나 속간(俗間)에서는 식욕을 돋우고 정력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는 강장제로 알려져 있는 음식물이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혀끝을 녹이는 데, 강력한 맛을 내는 갖은 종류의 화학조미료를 동원한다. 대부분의 식당이 몸에 좋지 않은 화학조미료와 설탕을 듬뿍 넣음으로써 고객의 건강을 망치고 자신의 자본을 북돋운다.

2002년 불교환경운동의 선구자였던 불교환경교육원 사무국장 유정길씨가 ‘공양주’를 자청했다고 해서 작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음식은 단순히 음식물이 아니라 그것을 만드는 과정에 보이지 않는 그 무엇, 즉 정성이나 사랑 등도 함께 먹는 것입니다. 따라서 급하게 만든 음식을 먹으면 마음도 급해지고 인내심도 없고 산만해진답니다. 오늘날 음식문화의 문제는 모든 먹을거리를 사서먹는 매식(買食)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음식점에서 맛이 없으면 손님이 오지 않기 때문에 온갖 조미료를 넣을 수 있을 만큼 넣습니다. 장사이기 때문에 가능한 싼 가격으로 원료를 구입해서 비싸게 팔아야 하기 때문에 유기농으로 재배된 것을 구입할 엄두도 내지 않습니다. 건강한 먹거리를 기대할 수는 없지요.’ 소비자들의 몸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본을 살찌우기 위해서 만들어지는 온갖 가짜들을 기억할 것이다. 가짜 참기름, 가짜 해파리, 가짜 해삼…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방부제가 듬뿍 섞인 수입농산물, 그 안정성이 입증되지 않은 온갖 유전자 조작식품들, 그러나 우리의 식욕은 위험을 모른다. 이런 와중에 건강한 먹거리를 생각하는 유정길씨의 자비심이 고맙다.

▲헬렌 니어링과 스코트 니어링

곡식은 땅에서 자란다. 땅이 죽으면 곡식도 죽고, 그 곡식을 먹고 자란 몸도 죽는다. 그러므로 몸을 살리는 길은 땅을 살리는 길이고, 땅을 살리는 길은 그 땅 위에 사는 모든 생명체를 살리는 일이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지렁이의 예를 들어보자. 지렁이 배설물에는 식물의 성장에 필요한 영양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또 지렁이는 겨울철에 지하 3m 60cm까지 내려가 동면을 하고, 배설할 때는 지표 위에 배설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렁이가 움직이는 자리에는 작은 터널이 형성되는데, 이 터널은 공기와 수분의 통로가 될 뿐만 아니라 여러 미생물 등과 식물에 영양분을 공급해주는 통로가 된다고 한다.

이런 고마운 생물을 ‘大地의 腸’으로 표현하는 이도 있다. 지렁이는 일년에 1천배 이상 증식하는 등 증식률이 매우 뛰어나 1~2년 간만 퇴비를 주면 산성화된 토양이 살아있는 토양으로 변하게 된다고 하니 기특한 동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런 기특한 동물들에게 인간은 몹쓸 짓으로 보은(報恩)을 대신한다. 지독한 화학비료와 각종 폐기물로 땅을 지옥으로 만들고야 만다. 배은망덕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런 지렁이의 이로움을 일찍이 알아본 사람은 <조화로운 삶>의 스코트 니어링이었다. 그 방면에 권위 있는 사람들의 견해를 인용해가며 그는 화학비료의 해로움과 유기농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떨어진 잎사귀를 지렁이가 먹고, 지렁이의 똥을 다시 곡물이 먹고, 그 곡물을 다시 인간이 먹는다. 똥과 인간이 섞이는 이 관계의 인드라망 속에서만 인간은 건강할 수 있다. 스코트 니어링은 건강하게 살다 깨끗하게 죽었다. 100세, 자발적으로 곡기를 끊고 천수를 다했다. 고승대덕(高僧大德)의 죽음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헬렌 니어링 또한 92살로 천수를 다하고 땅으로 돌아갔다.

먹을거리에 관한 한 니어링 부부는 매우 꼼꼼하게 챙겼다.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디자인하우스)은 온통 먹을거리에 관한 이야기뿐이다. 헬렌 니어링의 요리 원칙은 되도록 날 것으로, 조리할 때는 낮은 온도에서, 최대한 단순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식사를 간단히 준비하자. 이루 말할 수 없이 빨리. 그리고 거기서 아낀 시간과 에너지는 시를 쓰고 음악을 즐기는 데 쓰자. 자연과 만나고 테니스를 치고 친구를 만나는 데 쓰자’고 그녀는 말한다. 고기, 생선, 흰 설탕, 흰 밀가루, 달걀, 우유, 베이킹 파우더가 없는 채식 위주의 식단을 그녀는 만들었다. 그 음식들은 니어링 부부의 몸과 영혼을 건강하게 지켜주었다.

니어링 부부가 타임머신을 타고 오늘의 시점으로 초대되었다면 구역질을 느껴야 했을 곳이 있다. 바로 뷔페 식당. 엄청난 먹을거리가 식욕을 자극한다. 이런 뷔페식당을 좋아하는 식도락가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책이 있다. 1995년 일본에서 출간되어 지금까지 100만부 이상 판매됐다는 <초라한 밥상>(마쿠우치 히데오, 참솔) 이란 책이 그것. 책 제목대로 초라하게 먹으라는 것이다. 조촐한 식사를 하면 성인병이라 불리는 대부분의 질병을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단순하고도 명료하다. 동양인이 기준치 이상의 육식을 섭취하면 몸이 적응하지 못해 아토피성 피부염이나 알레르기성 피부질환 등 각종 생활 습관병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암, 당뇨, 고혈압, 비만, 변비, 빈혈, 충치, 고르지 못한 치열, 급하고 공격적인 성격까지 모두 잘못된 식생활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필자는 주장한다. 그는 간단하게 말한다. ‘부식은 적게, 밥을 많이’ 먹는 예전의 식생활로 돌아가자고.

뭐, 골치 아프게 먹는 데 이거저거 따지냐는 ‘속 편한 사람들’이 읽어야 할 책이 바로 이런 책들이리라. 헬렌 니어링이 ‘속 편한 사람들’의 불만에 이렇게 대꾸하지 않았을까. ‘소박하게 먹자는 거지, 골치 아프게 먹자는 게 아닙니다. 이거저거 가리지 않고 먹는 데서 병은 생기고, 병은 곧 고뇌입니다.’

김보일 (배문고등학교 국어과 교사)
현재 배문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면서 한국출판인회의 '이 달의 책' 선정위원, 청소년출판협의회 고문 등 책과 관련한 일을 하고 있다. 도서정보 포털사이트인 ' 리더스가이드(www.readersguide.co.kr)'에서 연재한 북리뷰를 모아 『나는 상식이 불편하다』(소나무)를 냈으며 『한국의 교양을 읽는다-과학편』(휴머니스트)를 저술했다. 한국출판인회의 '이 달의 책' 선정위원, 청소년출판협의외 고문 등 책과 관련한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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