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아빠의 육아일기]

 

▲텃밭에서 아직 덜 익은 토마토를 따서 꼭지를 따고 있는 둘째 우인이

둘째 아이가 손가락을 빠는 버릇이 있었다. 특히 잠을 잘 때는 손가락을 빨지 않으면 잠을 못 이루는 것처럼 항상 엄지손가락을 입에 물고 자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처음에는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이것이 시간이 갈수록 더욱 고쳐지지를 않고, 이제는 하나의 버릇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엄지손가락의 위쪽은 항상 부풀어 있다.

지금 세 살인 아이가 계속해서 저러면 어쩌나 싶은 것이 슬슬 걱정이 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그 세살이 아닌가 말이다. 저것을 강압적으로 못하게 한다는 것은 더욱 큰 집착을 일으킬 듯하고 해서 걱정이 여간이 아니었다. 그래서 아내와 고민고민하다가 하나의 방법을 생각해 내었다.

녀석이 엄마 젖을 끊을 때 썼던 방법과 유사한 방법을 한번 써보기로 한 것이다. 그것은 그림을 이용한 방법인데 그것을 응용해서 아이 엄지손가락에 ‘손가락아저씨’를 그려보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엄지손가락을 하나의 사람으로 인식시키도록 한 방법인데, 어라 요것이 그대로 먹히는 것이 아닌가?

▲아이의 엄지손가락에 그려 넣은 손가락아저씨, 그려놓고는 “이제 손가락아저씨 빨면 아저씨가 아프겠지?” 하니 “응, 이제 우인이 손가락아저씨 안 빤다” 한다.

참으로 신기했다. “자 우인아, 이제 손가락아저씨 빨면 아저씨가 아프겠지? 그러니까 이제부터 손가락아저씨 빨면 안 되겠지?” 그랬더니 “응, 이제 우인이 손가락아저씨 안 빤다” 하더니 실제로 그때부터 손가락을 빨기를 멈춘 것이다. 게다가 손가락아저씨가 세수나 목욕 등을 하면서 지워지기라도 할라치면 다시 그려달라고 아빠에게 와서 조르기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참 신기하지, 그렇게 손가락을 빨던 버릇을 못 고치던 아이가 요 그림 하나로 금세 손가락 빨기를 멈춘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 못해 신비하기까지 한 것이다. 아이들의 행동이 이렇게 자연스런 논리에서 오는가 싶기도 한 것이 말이다.

그래서 말이다. 간혹 보면 강압적으로 아이의 나쁜 버릇을 고치려 애쓰는 부모들을 보게 되는데 절대로 강압적으로 아이의 버릇을 고치려 드는 것은 옳은 행동이 아닌 듯하다. 그것은 아이 나름의 충족되지 못한 욕구의 다른 표현이다. 따지고 보면 둘째 녀석의 이런 손가락 빨기 버릇도 돌을 넘기고 나서 끊게 된 지 엄마 젖에 대한 욕구를 다 채우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고 보면 채워지지 않은 욕구는 항상 다른 식의 행동으로 표현되기 마련인 것이다. 

아마도 이번의 이 손가락아저씨를 통한 변화도 녀석이 그동안 충분히 손가락을 빨면서 채우지 못한 욕구를 어느 정도 해소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니 절대로 아이에게 강압적으로 버릇을 고치려 해서는 안될 것 같다. 그것은 또다른 부작용을 반드시 낳기 마련이고, 그것이 아이의 정서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니 말이다.

이렇게 아이는 여리고 섬세한 존재다. 하나의 나쁜 버릇이 들었다고 해서 그것을 너무 걱정하지 말고 천천히 그리고 인내를 가지고 자연스런 방식으로 납득을 시킨다면 반드시 고칠 수 있다는 것을 이 손가락아저씨를 통해 새삼 깨닫게 된다.

이쯤 되면 이 백수아빠도 이제 육아의 달인 대열에 들려나? 후후후.
암튼 아이들은 자연이고 사랑이다.

▲동네 인근의 한 텃밭에서 잘 자란 옥수수 곁에 가서 “아빠, 옥수수 어디 있노? ” 하는 우인이 


정수근/ 대구의 엄마산인 ‘앞산’을 지키는 싸움인 앞산터널반대운동을 하면서 환경과 생태 문제는 곧 지역의 문제, 정치의 문제란 것을 확실히 느끼는 계기가 되었고, 그런 인식하에 지역의 환경과 생태 그리고 농업의 문제에 관심이 많다. 현재 지역 청년들의 작은 공부모임 ‘땅과자유’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앞산꼭지’(‘앞산을 꼭 지키려는 사람들의 모임’의 약칭) 회원이자, ‘블로그 앞산꼭지’(http://apsan.tistory.com)의 운영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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