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국의 세상만사 인생사]

희대의 터미네이터를 대통령으로 뽑은 초유의 참(慘)을 겪은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선거란 말인가? 지겨워 죽겠다. 참변.

가요 중에서도 참 듣기 싫은 가요로만 엄선하여 로고송을 만들어 틀어 제끼는 1톤 트럭들이 오뉴월 메뚜기 튀듯이 여기저기 난무하다 못해 우리 아파트 바로 앞에서 진을 치는 것은 참 죽을 맛이다. 우선 시끄럽고 불쾌하다. 무엇보다도 소위 국회의원 후보들의 상판때기에 흐르는 개기름이 역겹고, 그 무수한 세월 동안 국민들을 등쳐먹은 주제에 머슴이 되겠다는 둥, 지역을 살리겠다는 둥 떠들어대는 그들의 주둥이가 뺑파의 그것보다 더 흉물스럽다. 게다가 한나라당인지 뭔지가 많이 앞서간다는 여론 조사를 보면서 이게 무슨 엉덩이에 청양고추 문지르는 소리인가 싶다가도 얼마 전 대선의 결과를 생각해 보면 그도 그럴 수 있겠다 싶어 배알이 뒤틀리고 욕지기가 나는 판이다. 에라 이 뭣 같은 세상...

‘너는 못난 거냐 착한 거냐? 그도 저도 아니면 미친 거냐? 어떻게 저 로고송을 들으면서 참을 수가 있단 말이냐.’ 이러한 내면의 소리를 들으며 나는 분연히 일어서서 수화기를 들었다. 그리고 112를 돌렸다. ‘감사합니다’로 시작하는 멘트가 끝나기도 전에 나는 다음과 같이 범죄 신고를 단행했다.

“수고 하십니다. 여기는 XX동 YY아파트인데 지금 난리가 났습니다.”

“무슨 일인지 차근차근히....”

“아파트 바로 앞에 웬 정체불명의 1톤 트럭이 불법 주차를 하고 말도 안 되는 내용의 정치 선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 앞에는 정신 이상자로 보이는 여자들이 확성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추어 몸을 흔들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일단의 사이비 종교 무리들인 듯합니다. 왜냐 하면 전체적으로 접신을 했거나 아니면 뭔가에 단단히 세뇌되어 판단 기능이 마비되어 있는 상태로 보이거든요.”

“혹시 국회의원 후보의 유세 현장을 말씀하시는 거 아닙니까?”
“아니 그럼 저게 국회의원 후보의 유세 현장이란 말씀이십니까?”
“그거야 제가 가보지 않아서...”
“결코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적어도 우리나라의 국회의원 후보들은 저런 식으로 볼성사나운 이벤트나 하고 경천동지할 소음이나 흘려가면서 표를 구걸하지 않습니다. 저것은 군부독재가 여전히 판을 치고 있는 미얀마나 우간다, 아니면 인구의 대다수가 에이즈와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에티오피아나 시에라리온의 국회의원 후보들이 하는 짓입니다. 제가 보기에 저들은 분명히 우리나라 사람이고 따라서 저것은 유세가 아닙니다.”
“선생님. 조금 있으면 끝날 테니...”

나는 이제 정말로 화가 났다.

“여보세요. 조금 있으면 이라니요. 저는 지금 죽겠단 말입니다. 내 집을 두고 내가 밖에 나가 일을 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당장 신고 접수 하시고 출동하세요.”

잠시 후 다소 미적거리면서 경찰차가 한 대 왔고 1톤 트럭은 다른 곳으로 갔다. 허나 그 트럭에서 흘러나오는 예의 그 귀를 거스르는 로고송은 여전히 볼륨을 그대로 둔 채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다소 과격한 국가관을 가지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국가는 전혀 필요가 없는 것이며 언젠가는 스스로 소멸하고 말 것이라는 것이 그 뼈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것은 내 신앙관이기도 하다.

나는 분명히 예수를 따르고 그 분을 사랑하지만 유태인도 아니고 이스라엘 국적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런 나를 예수께서는 엄청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나는 경험으로 안다. 자, 이미 예수님께서 초국가적으로 존재하신다.

애국심? 물론 그런 것이 나에게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 땅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선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지 결코 배타적 적개심을 기초로 하는 이데올로기는 아니다. 나는 이 땅의 고아가 불쌍한 만큼 미국의 고아도, 일본의 고아도, 아프리카의 고아도 불쌍하다. 동시에 이 나라의 폭력이 싫은 것과 똑같은 분량으로 다른 나라의 폭력이 싫고 그 폭력의 주체들을 증오한다.

그게 나다. 나는 나일 뿐이다. 그러니 내 앞에서 제발 소위 ‘지역사회’니 ‘국가’니 운운하면서 견음(犬音)을 설하지 마라. 게다가 그 견음의 장본인들이 그리 정당하지 않은 바에야 더더욱 조용히 하기 바란다.

예수님...
저 이번에는 정말이지 투표하기 싫습니다. 제발 한번만 봐 주세요.
그래도 하라구요? 그렇다면 예수님 이렇게 하지요. 예수님이 후보로 나오시는 거예요. 그러면 제가...
거봐요. 예수님도 화나시잖아요. 그런데 왜 저만....
예? 그래도 꼭 투표는 하라구요?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물론 그렇죠.
제가 예수님의 뜻을 알 수는 없지요. 알겠습니다. 하지요.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건 분명히 하겠습니다.
누구를 찍기는 찍겠지만 그거... 제 본심 아닙니다.

 

/변영국 2008-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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