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정신 -『일본서기』에서 신영성운동까지> 이찬수, 모시는 사람들,2009

일본에 대한 자기 나름의 생각을 담은 여러 책이 세상에 나온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어떤 사람은 일본을 몰가치적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일본의 한 측면을 예리하게 분석하여 그 나름대로 설득력을 가지고 일본에 대한 이해를 돕기도 하였다. 일본을 바라보는 편차가 하도 커서 여전히 일본을 이해하기에는 요원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던 차에 또 한 권의 일본 해석서가 나왔다. 이 책이 출간되기 전에 필자는 원고를 읽는 행운을 가졌다. 읽기 전, 저자가 지난 일년 간의 일본 유랑에서 보고 들은 하나의 견문서이겠거니 생각했지만 그 생각이 보기 좋게 빗나갔음은 물론이다.

이 책의 필자는 2, 3년 전부터 언론의 조명을 받아온 이찬수 전 강남대 교수다.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종교 간의 벽을 넘어서고자 하는 정열적 활동이 학교에서 쫓겨나게 된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 그간의 언론보도의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저자가 그 지겨운 법정 대결을 하는 동안 일본에 체류하면서 차분한 마음을 가지고 이 글을 썼으니 인류의 위대한 대선배들이 그랬듯이 한 인간의 인고의 시간은 또 다른 인문적인 세계의 창조로 치환될 수 있음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일본의 속마음은 여전히 종교적

원고를 읽는 동안 불교와 기독교를 두루 섭렵한 종교학자의 눈은 예리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일본인의 종교적인 품성은 이미 탈종교적인 데로 접어들었다는 견해가 최근 대두되고 있는데, 이에 반해 저자는 신사와 교회, 사찰이 공존하는 일본적 현실에서 일본인들이 전통적인 방식으로 일생의 중요한 통과의례를 거치는 것에 대해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보고 있다.

하나가 일본인의 탈종교적 세속성이라면, 또 하나는 삶의 중요한 순간, 여전히 문화화한 종교적 상징 체계에서 의미를 찾고 방향을 찾아가는 모습이다. 교단이나 정기적인 종교 의례에 대한 거부감은 있지만 일본인의 속마음은 여전히 종교적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일본인들이 근대에 religion이라는 말을 종교(宗敎)라고 번역한 연유가 충분히 해명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신과의 관계나 깨달음을 중시하는 세계를 기반으로 하는 양 종교를 아우르는 일본인의 심성을 한 눈에 꿰뚫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이 책을 읽어가는 재미이기도 하지만 일본을 보는 저자의 패러다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전통적인 신도와, 불교, 그리고 과거 정치적 탄압으로 인해 정착하지 못한 기독교를 중심으로 다자간의 관계를 풀어내는 저자의 기술을 보면서 이제야 비로소 일본정신사의 총체적인 면을 보기 시작했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꼈다. 이제 겉으로만 보는 일본은 탈피해야 될 시점이라고 느끼던 차에 여기에 적절히 눈뜬 책이 태어난 것이다. 일본을 안다고 하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종교적 엄숙함과 일상적 흥겨움이 공존하는 일본

특히 마츠리를 통해서 일본 특유의 근대화의 성공을 보는 눈은 부드럽지만 깊은 통찰력을 지니고 있음을 본다. 저자는 전근대적인 전통이 연례적인 마츠리 속에서 계승되는 것을 보고 그러한 정신성 위에 서양의 근대가 잘 접목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전근대와 근대의 문제는 마루야마 마사오를 비롯한 일본의 대학자들이 줄기차게 추구해 온 것이기도 하다. 근대 제정 일치의 천황제가 가능했던 것도, 야스쿠니 신사가 일본 정치의 핵심 문제 중의 하나로 여전히 기능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양자의 문제로부터 발생한 것이다.

저자는 일본식 근대와 전근대의 특징을 관찰하면서 오랜 집단적 의례인 마츠리를 종교적 엄숙함과 일상적 흥겨움이 공존하는 축제로 보고 있다. 마츠리의 집단성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제사의 일상화라고 하는 마츠리의 사회성도 주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국의 전통이 서양적 근대라는 바람 속에 전근대적인 것으로 폄하되어 민중의 종합적 예술성이 사라진 것을 아쉬워하고 있다.

신학자이자 목사이기도 한 저자가 이렇게까지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이 자못 놀랍다. 종교가 지역에서 성숙하기 위해서는 예술성은 물론이지만 전통을 얼마나 존중하고 이를 자기화 하느냐에 달려 있음을 저자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점은 다도를 통해 일본에서 종교가 일상성을 갖추고 있으며 일본인들이 한국인들보다 더 종교적인 성향을 보여준다고 판단하는 데서도 드러난다. 종교를 하나의 도그마적 교의 체계로만 보지 않고 삶과의 연속선상에서 보고 있는 혜안이 부럽기까지 하다.

이 책은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목이 보여주듯 일본 고대로부터 근대의 정신세계를 관통하고 있다. 신도와 근대의 문제, 일본의 근대화와 근대문화, 애국주의와 신종교, 조상숭배와 유교문화, 종교와 일상성이라고 하는 소제목 속에 세세한 일본 역사의 뒤편에 있는 일본인의 정신적 원형을 담고 있다. 이 책에는 고대와 근대를 현대와의 대화적 삶 속에서 엮어가는 일본인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더구나 저자가 직접 찍은 풍부한 사진들은 그러한 삶의 장면을 여과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일본인과 일본 문화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이 책을 꼭 권하고 싶다.

원영상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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