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아빠의 육아일기]

▲ 오빠 덕에 이제 둘째 우인이마저 '공룡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다.

'호기심의 왕' 아이들

첫째 승준이는 5살이 되면서부터 부쩍 호기심이 많이 생겼다. 물론 그 전에도 그랬지만 올해 들어서 더 심한(?) 것 같다. 보이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궁금한 모양이다.

이건 뭐야, 저건 왜 그래, 쟤는 왜 저래 등등 일일이 다 답을 해주기 귀찮을 정도로 물어댄다. 그런 녀석을 따라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는 둘째까지 가세해서 물어대는 통에, 집안은 언제나 조용할 날이 없다. 좀 피곤해서 누워있을라치면 그 머리맡에 딱 붙어 앉아 ‘조잘대는’ 통에 녀석들이 눈을 뜨고 있는 한, 잠시도 쉴 수 없다.

오호 통재라, 이런 것이 육아의 진면목(?)이란 말인가? 새삼 세상 엄마들의 위대함을 발견하게도 된다. 태생적으로 엄마에게 더 ‘앵겨붙는’ 아이들이고 보면 말이다.

“아빠, 누가 이겨?”

그런데 언제부터 녀석이 물어오는 질문 형식이 바뀌어간다. 그것은 대상을 비교하는 것인데, 늘 승부의 관점이 들어 있다.

예를 들자면 “아빠, 호랑이가 이겨? 여우가 이겨?” 라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호랑이가 세냐? 도깨비가 세냐?”를 넘어, 비교 대상이 아닌 것들에도 승부를 묻는다. “아빠, 호랑이가 세나? 자동차가 세나?”

너무 승부에 집착하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최근의 질문엔 언제나 승부의 관점이 들어 있다. 평화, 공존, 공생 이런 가치를 중히 여기는 현재의 이 아빠가 약간 당혹해지기도 하는 지점이다. 그래서 이것이 본성인가 싶기도 하면서 첫째 녀석의 심리가 더욱 궁금해진다.

그러던 차에 그 궁금증의 실마리를 하나 얻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공룡’이었다.

어린이 집에서 만난 ‘공룡’

녀석이 어린이 집에서 돌아오면서 공룡 이야기를 꺼낸 것은 올 늦봄 무렵인 것 같다. 그때부터 공룡이름을 혼자 중얼거리더니, 급기야 예의 그 질문이 반복되는 것이다. “아빠, 호랑이가 이기나, 공룡이 이기나?”

아하, 그렇구나. 문제는 어린이 집의 또래 집단이었구나.

그랬다. 아닌 게 아니라 어린이 집 녀석들의 반에는 공룡에 ‘꽂힌’ 친구들이 둘이 있었고, 그 친구들 덕에 공룡의 세계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 담당 선생님께 최근 들은 이야기가 반에서 공룡에 빠진 친구들이 승준이를 비롯해서 셋인데, 녀석들은 웬 종일 공룡과 지낸다고 한다.

그제서야 이 아빠의 궁금증도 약간씩 풀려간다. 그러니까 또래 집단에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승부의 관점을 습득한 것이고, 지금의 공룡에 와서 최고조에 이르게 된 것이란 사실을 말이다.

공룡에 ‘꽂힌’ 아이

▲ 공룡놀이에 신이 난 첫째 녀석 승준이

하여간 이때부터 녀석의 관심은 온통 공룡이다. 오, 그 지겨운 공룡이여!

녀석이 공룡을 이렇게 좋아하니, 녀석을 위해 이모는 장난감 공룡들을 선물했고, 그때부터 밥 먹을 때부터 잠잘 때, 동네를 한 바퀴 돌 때도 어김없이 그 공룡들을 데리고 나선다. 그런 녀석의 왕성한 호기심에 겨워 또 엄마는 공룡 책을 몇 권 안겨 줬고, 그때부터 녀석은 공룡 책 삼매경에 빠지더니, 그 책에 등장하는 공룡의 이름이며 녀석들의 특징을 줄줄이 꿴다.

브라키오사우르스, 부경고사우르스, 티라노사우르스, 타르보사우르스, 데레지노사우르스, 벨랍키랍토르, 프로케랍토르 …… 하여간 그 덕에 이 아빠도 이제 ‘인구에 회자되는’ 웬만한 공룡이름은 거의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런 아들을 위해서 이 가난한 백수 아빠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작년 연말 경에 EBS에서 방영해서 큰 인기를 끈 대작 다큐멘터리인 <한반도의 공룡>을 알게 되었다. 

교육방송에 들어가서 '다시 보기'로 그 대작을 아이들과 함께 감상을 했는데, 그 작품은 정말 잘 만들어진, 우리 CG기술의 우수성도 새삼 확인하게 된 작품이었다. ( <한반도의 공룡> 다시보기 - http://home.ebs.co.kr/koreanosaurus/index.html )

'양육강식, 적자생존'에 대한 걱정

다시 처음의 의구심으로 돌아가 생각해 보면, 하여간 아이들이 승부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것은 이렇듯 또래 집단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아이들만의 호기심의 발로가 아닌가 싶다. 책을 통해서 접하는 공룡의 거대한, 그리고 낯선 모습은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엔 충분한 것이니 말이다.

▲ 작물들의 공존 - 파, 옥수수, 호박, 오이, 토마토 , 들깨 등이 한데 어울려자라고 있는 우리 텃밭
그래서 크게 걱정할 만한 일은 아닌 듯 싶다. 비록 공룡 책을 통해서나, 앞의 “한반도의 공룡”이란 다큐멘터리를 통해서나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법칙을 너무 자연스럽게 학습해가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그것 또한 자연스런 과정일 것이다.

공존, 평화, 정의를 향한 지향

물론 생각 같아서는 공생과 공존, 상호협력, 상호부조의 관점을 어렸을 때부터 녀석의 심성에 녹아들어가게 하는 학습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공존의 관점이 중요하고 위대한 것도 그런 적자생존의 관점을 넘어설 때이고 보면, 그것도 자연스런 학습의 과정이란 생각이 든다.

암튼 아이들은 호기심의 왕이고, 그 호기심은 크고, 자극적이고, 낯선 것에서부터 먼저 오게 마련이다. 그러나 호기심과 관심은 서서히 변해가는 것이니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닐 것이다.

녀석들도 결국은 이성을 지닌 ‘인간’이 되어갈 것이고, 그 이성이란 것은 공존, 공생, 평화, 정의 이런 것을 지향하게 마련이니 말이다. 그러니 “공룡에 ‘꽂힌’ 아이들, 너무 걱정할 일은 아니다”는 결론이다.


정수근
/ 대구의 엄마산인 ‘앞산’을 지키는 싸움인 앞산터널반대운동을 하면서 환경과 생태 문제는 곧 지역의 문제, 정치의 문제란 것을 확실히 느끼는 계기가 되었고, 그런 인식하에 지역의 환경과 생태 그리고 농업의 문제에 관심이 많다. 현재 지역 청년들의 작은 공부모임 ‘땅과자유’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앞산꼭지’(‘앞산을 꼭 지키려는 사람들의 모임’의 약칭) 회원이자, ‘블로그 앞산꼭지’(http://apsan.tistory.com)의 운영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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