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국의 세상만사 인생사]

이 사회에는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는 표식이 매우 다양하게 있다. 모든 것 떠나서 우선 잘 생기고 봐야 한다는 믿음이 팽배한 것을 보면 일단 얼굴과 몸매 자체가 하나의 표식일 수 있겠고, 호텔 도어맨들이 매우 정중하게 주차해 주는 자동차는 대개 고급 승용차라는 것을 볼 때 자동차가 또 하나의 표식이 될 수 있겠다. 그리고 눈에 띄는 그런 표징이 없을 때에는 신분증이 표식이 되겠는데, 이 삭막한 세상 나이로라도 상대방을 이겨 보려는 서글픈 호승심으로 인하여 상호의 주민등록증을 확인하려 하는 일도 곧잘 벌어진다. (호적이 잘못되어 그렇지 원래는 두어 살 위라고 강변하는 분들은 제발 그만 하시라. 그건 전적으로 자신의 부모님을 욕하는 행위 이상도 이하도 아닐 테니까...)

허나 그런 모든 것들보다 훨씬 더 명징하고 강력한 표식은 바로 문신이 아닐까 한다. 문신이야 말로 그것을 소유한 사람의 이력을 각별한 것으로 보이게 하는 최고의 표식이다. 더운 여름날 반팔 옷 아래로 드러나는 용 문신의 일부분은 주먹질을 꽤 해 보았을 것이 분명한 문신 소유주의 용력을 짐작하게 해 주고, 막노동판에서 곡괭이를 휘두르는 초로의 노동자의 허벅지에 그려진 또 다른 문신은, 금연은 비교도 되지 않을 무시무시한 인내로 갱생의 의지를 불태우는 그의 삶의 무게를 짐작하게 해 준다. 허나 내가 지금부터 하고자 하는 얘기는 바로 ‘찜질방의 문신들’이다.

주안의 모처에 있는 S찜질방은 말하자면 나의 단골 찜질방일 텐데, 일단 하루 종일 주차를 할 수 있고, 2층에 엄청나게 많은 만화책이 있으며 몇 가지의 헬스 기구들이 있다는 것과 값이 싸다는 것이 내가 그 곳을 자주 애용하는 이유다. 그런데 그곳은 나만 애용하는 것이 아니라, 온 몸에 용과 호랑이를 새긴 양반들이 그것도 단체로 자주 애용을 하신다. (그 양반들도 만화책을 좋아하시나?) 아무튼 꽤 오래전인 그 날도 나는 반신욕을 하고 만화책을 보며 누구도 누리지 못하는 나만의 널널함을 완전히 만끽하고자 그 곳을 찾았고 욕탕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완전히 얼고 말았다.

세상에... 탕 안에 몸을 담그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들어갈 수 없는 것은 둘째 치고 그 양반들의 등에 하나같이 용 문신이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아, 나의 반신욕... 나의 널널한 자유와 나른함... 나는 어쩔 수 없이 ‘탕에 들어가기 전에 몸을 닦으시오’라는 안내문에 철저히 순응하여, 샤워를 하면서 그 문신 아찌들이 탕에서 나오기를 기다렸다. 허나 머리가 빠지도록 샤워를 해도 그 아찌들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 전날 어디서 과음들을 하셨나? 아니면... 그 말로만 듣던 조폭 간의 전쟁을 치르시느라 온 몸이 뻐근하신 건가? 그 양반들이 일어나지 않는 한 달리 할 일이 없는 나는 그저 하릴 없이 샤워만 하고 있었다. 비누칠을 세 번인가 했을 때 탕 안에 있던 한 노인이 나를 불렀다. 이제 보니 문신 아찌들 사이에 너무나 왜소해 마치 숨어 있는 것처럼 한 노인이 앉아 있었다.

“젊은이 이리 와 내 곁에 앉아요. 그렇게 샤워만 하다간 대머리 되겠소.”
(나는 노인에게 들켰던 것이다. 끝없이 위축된 나의 몸과 영혼을...)

그런데 다음 순간 마치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탕 안에 몸을 담그고 있던 문신 아찌들이 동시에 일어나더니 그 노인에게 90도로 절을 하고 탕 밖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아... 절절이 묻어나는 노인의 내공이여 그 카리스마여!

“형님. 편히 계십시오”

문신들은 흩어져 샤워를 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 노인 곁에, 위축된 내 몸을 최대한 공손하게 만들어 좌정했다.

“젊은이를 자주 보는데 혹시...”
“무슨 말씀을...”
“가만 보니 실업자는 아닌 듯 하고... 이런 낮 시간에 이 곳에서 만나는 걸 보면 젊은이도 우리와 같은 계통에 있나보우.”
(예? 천부당만부당 하옵나이다. 같은 계통이라니요 제가 언감생심...)

“아니... 저는 그저... 글을 씁니다.”
“아이고... 이런. 작가 선생을 몰라봤구먼. 소설? 아니면 시?”
“그냥 희곡도 좀 쓰고 그저... 신변잡기 정도...”
“겸손하시구먼. 암튼 우리 다음에 만나면 대포나 한 잔 합시다.”
“예 당연히 그래야지요.”

뭘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건지 나도 몰랐다. 아무튼 그런 과정을 거쳐 나는 그 분, 말하자면 흘러간 조폭이자 지금도 주안 일대에서 영향력이 막강한 ‘헹님’을 알게 되었고 이후로도 종종 만났다. 물론 찜질방에서 말이다.

“꿈에 보여. 내가 괴롭힌 사람들이... 나는 말이지 조폭들이 나오는 영화를 보면 감독 하는 놈들을 패주고 싶어. 세상에 그런 멋있는 조폭은 없거든. 이거 지랄같은 짓이야. 아주 치사하지. 강한 놈한테는 빌붙고 약한 놈을 최대한 짓밟는 것이 법칙이니까 얼마나 치사해. 부모 화병 걸리게 하고, 마누라 새끼 병신 만들고... 늙어서 나처럼 떠돌아다니기나 하고... 더러운 짓이야. 그런데 영화를 보면 다 멋있더라구. 조폭 중에 잘생긴 놈들이 어디 있다고 영화에서는 그렇게 잘난 놈들만 나오는지 원...”

나는 스스로, 누구보다 치사하고, 누구보다 계산적으로 살면서 아닌 척 치장하는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럼 도대체 왜 사는 걸까? 나는 나이가 먹어 저 노인만큼의 연륜이 쌓이면 저렇게 남 앞에서 나의 미미함을 담담하게 드러낼 수 있을까? 나는 연극하는 후배들을 사랑하노라고 입에 달고 다니는데 저 노인은 등에 문신을 새긴 후배들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들까? 과연 나의 ‘후배 사랑’은 진실일까? 우리는 조폭들처럼 남을 괴롭히지는 않는다. 그건 분명하다. 그럼 그게 다인가?

허... 참... 그 노인네......
내게 ‘뜰 앞의 잣나무’ 하나를 던져주셨다.

 

/변영국 2008-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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