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토 16세 교황, 돈은 사라지는 것, 말씀만이 참된 현실이라고 발언

지난 10월 6일 주교 시노드 회의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돈은 사라지는 것, 아무 것도 아니다. 오로지 하느님 말씀만이 참된 현실, 실재이다”라고 하여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 파급되고 있는 금융사태에 대해 눈앞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물질만이 참 실재인양 착각하는 잘못된 현실주의를 경고하였다.

주교 시노드 회의의 개막식에서 있었던 묵상에서 교황은 특히 비극적인 현 경제 사태와 연결하도록 두 가지 삶의 방식의 가능성을 상기 시켰다. 첫째는 마치 모래 위에 짓는 집과 같이 성공, 경력, 돈이라는 가시적인 것을 추구하는 삶은 보이기에 진짜 현실인 것 같지만 하루아침에 허물어지고 사라지는 현실임을 직시해야 한다. 둘째는 하느님 말씀 즉 복음을 바탕으로 하는 삶은 마치 단단한 바위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이 흔들림이 없고 견고하다. 그것은 곧 하느님 말씀은 모든 현실들의 근본, 참된 실재이기 때문이다.
-<Avvenire> 로마, 2008.10.7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현재 열리고 있는 주교 시노드에서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적으로 큰 파동을 치고 있는 금융 사태에 대해 “돈은 아무 것도 아니다...... 하느님 말씀만이 확고하다” 며 최근 사태에 대해 전 가톨릭 교우들에게 어느 때보다도 하느님 말씀인 성경말씀에 귀를 기울일 것을 당부하였다. 어제 저녁에서, 오늘 아침까지 각 T.V 채널에서 뉴스 앵커를 통해 나오는 이 짧은 보도를 들었다.

그런데 정작 하느님 말씀을 대하면 하느님은 결코 인간 생활에 “돈”의 필요성을 평가절하하지 않았다. 돈, 재물이 인간에게 얼마나 필수적 것이라는 점을 어느 누구보다도 아시고 예비하시는 분이 바로 하느님이시다.

성경 첫 장을 펼치면 천지 창조 설화가 나온다. 그 창조 이야기에서 하느님은 인간을 맨 나중에 만드신다. 하느님의 입에서 천지가 모두 인간이 살 수 있도록 구비된다. 인간은 하느님 손에서 빚어지자마자 모든 것이 갖추어진 이른바 파라다이스에 살기 시작한다.

뿐만 아니라 하느님 손에서 최초로 빚어진 아담과 이브가 죄를 짓고 이 파라다이스에서도 쫓겨 날 때도 누가 가죽 옷으로 그들을 입히셨는가? 인간은 하느님 앞에서 원죄를 지은 죄인이지만 땅을 가는 피나는 노동을 해서라도 먹고 살 수 있도록 하신 분이 누구이신가? 하느님이시다. 화폐경제인 오늘날, 돈으로 환산되는 모든 물질이 인간의 삶에서 얼마나 필수적인가 하는 것을 하느님은 소홀히 여기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우리를 위해 마련한 것이다.

문제는 하느님의 본래 의지대로 그 물질이 인간의 삶을 위해 잘 쓰이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데 주된 무기가 된다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는 매일 뉴스로 돈에 사람의 목숨이 매달려 있는 상황을 보도하고 있다. 돈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자살한다. 돈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평생을 노예처럼 중노동을 하거나 범죄의 희생물이 된다. 돈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비 인간적인 대우를 받는 사례가 아주 당연시 되는 세상을 살고 있다. 가난한 아프리카에서 온 피부가 검은 우리의 형제자매들, 공산권에서 막 해방된 동유럽에서 온 백인들, 필리핀, 스리랑카 등등의 아시아 인들이 돈 때문에 소위 선진국으로 분리 되는 서구 유럽에 더부살이하고 있다. 서구 유럽의 몰지각한 사람들이 단지 자신들의 경제를 축낸다는 이유로, 자신의 나라를 더럽힌다는 이유로 이들을 집단구타하거나 심지어 목숨도 앗아간다는 뉴스를 매일 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돈은 사라지는 것,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발언에 100% 동의할 수 없다. 그 돈을 쌓아 두고 있는 자, 돈에 눈 먼 자에게 알 맞은 경종일 수는 있으나 생존하기 위해서 돈이 꼭 필요한 사람들은 결코 동의할 수 없는 시대착오적인 발언이 될 수 있다.

즉 하느님 말씀과 대비하여 강조된 돈의 허무성, 돈의 절대 가치가 갖는 무가치성은 돈 때문에 실질적으로 고통을 받는 자들에게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 단지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돈에 대한 관념이 문제일 뿐이다. 현실 상황에서 돈의 압박은 실존적인 것이다. 따라서 지금 이런 상황에서 그 돈의 실존적 가치를 논할 때라고 생각한다.

성경을 통해 보면 하느님께서는 바로 인간의 삶에 필요한 물질, 오늘날은 돈의 실존적 가치를 미리 내다 보시고 예비하시는 분이다. 그렇기에 하느님은 인간 이전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의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구비한 뒤에야 인간을 손수 손으로 빚어 그 안에서 살게 하셨다. 인간의 원죄 이후에도 우리를 끊임없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이끄셔 진정한 인간의 웰빙을 추구하는 그 분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결코 죽은 뒤의 영생의 삶의 아닌 우리가 사는 이 지상의 삶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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