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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치, 신과 자연에 대한 믿음 없는 세태를 비판함-신앙인아카데미, 합정동으로 이전 후 김종철 선생 첫 강연
-일리치, "복지제도보다 자유로운 헌신" 강조

신앙인아카데미(원장 김원호)가 지난 9월 19일 신촌에서 합정동으로 사무실을 이전하고 첫 강좌로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선생을 초청해 '이반 일리치'에 관한 강연을 들었다.

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다양한 관계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정립하고 다양한 삶과 종교를 인정하는 시대적 담론을 형성하는 강좌를 개설해 온 신앙인아카데미는 그동안 재정적 문제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어 왔으나 최근 '착한 사마리아인' 같은 은인의 도움으로 사무실과 강의실을 마련하게 된 것. 

신앙인아카데미 사무국장 강창헌씨는 홈페이지를 통해 "이제 우리 시대는 하나의 목적을 추구하며 '같음'만을 강조하던 분위기가 '다름'도 중시하는 가운데 다양한 목적을 인정하는 분위기로 가고 있다"면서 이른바 "다중심적 · 관계적 · 수평적 세계가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상대를 무시하고서는 이제 나 자신도 없는 시대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이러한 분위기를 미리 읽고 대비해야 할 때입니다. 특별히, 잊혀졌던 평신도의 역할을 중시하고, 남성 못지 않게 여성의 역량이 발휘되어야 할 때입니다. 제 목소리를 내면서도 타인의 처지를 존중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자기만의 언어는 이제 더 이상 의미를 발생시키지 못합니다. 모두가 저마다의 삶의 자리에서 존중받고 존중하는 세계를 만드는 데 앞장서야 합니다. 이러한 세계의 건설은 21세기 이후까지 이어져야 할 종교성의 핵심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만이 아닌 이웃종교도, 서구의 정신만이 아닌 우리의 전통과 문화도, 사제의 목소리만이 아닌 평신도의 목소리도 모두 함께 울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이 시대 예언자의 외침, 21세기 한국 그리스도인의 역할임을 믿습니다."

작은 목소리,큰 울림이 담긴 강좌를 통해 이 시대 사람들과의 나눔에 더욱 앞장서겠다고 다짐하는 신앙인아카데미의 새 사무실에서 첫 강연을 한 김종철 선생은 "국내에 번역된 이반 일리치의 '탈학교 사회' 등 몇 권의 일리치 저작들이 제대로 된 번역이 아니다"라고 말한 후 "오히려 번역이 아니라 '폭력'에 가깝다"고 한탄했다. 김종철 선생은 이반 일리치에 매료되어 잡지와 강연 등을 통해 이반 일리치의 사상을 두루 알리고 있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이반 일리치, "우리 시대, 믿음이 관건"

김종철 선생은 일리치가 사상가일뿐 아니라 제 사상을 몸으로 살았기 때문에 더 존경스럽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뺨에 종양이 생겼으나 2002년 74세로 죽을 때까지 24년 동안 진통을 완화시키는 아편에만 의존했을뿐 병원에 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병원이 병을 만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대의학을 통해 생명을 연장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종철 선생은 "뜸이나 부황, 침으로 고칠 수 없는 병은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김종철 선생은 일리치의 노선에 따라서 현대과학과 의학을 믿지 않는다. 그는 "잠을 자려고 누워도 수없이 많은  인공위성이라는 쓰레기들이 머리 위 하늘을 돌고 있다고 생각하면 잠이 안 온다"고 말한다. 아인슈타인마저도 다시 태어난다면 과학자가 되기보다 실질적으로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보일러공이 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일리치는 질병으로 인한 고통마저 감수해야 한다면서 "nudum christum esqure"(to follow christ naked)라는 라틴 장처럼 그리스도의 고통을 따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사제복을 벗었지만 평생 자신을 '교회의 아들'로 여겼다면서 김 선생은 "우리시대는 믿음이 없어서 촐랑댄다"고 한마디 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에도 장로라지만 "믿음이 없다"면서, "그를 나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라며 4대강 개발을 지켜보면서 "도리가 없다"는 절망감에 빠졌다고 말했다.  그가 바로 우리 시대의 표상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그를 대통령으로 뽑았고, 결국 '사람됨'을 포기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용산참사 문제도 정치적인 문제를 넘어서 이미 '종교적인 문제'가 되었다면서, "자기를 초월한 어떤 것이 있다는 것, 자기가 전부가 아니라는 믿음이 없는 데서 나온 사건"이라는 것이다. 즉, 하늘 두려운 줄 모르고 하는 짓이다. 

김종철 선생은 "사람이 그렇게 해서는 안 되지"라는 말이 무색해진 불경(不敬)한 시대가 믿음이 없는 시대"라면서, 무도(無道)한 짓을 비판했다.

복지제도를 넘어서 자유로운 돌봄으로 나가야..

   
▲이반 일리치
한편 일리치를 해방신학에 영향을 준 <민중교육론>(페다고지)의 저자이기도 한 파울로 프레이리와 구분해서 말했다. 일리치는 한때 프레이리와 우정을 나누었으나 나중엔 프레이리가 "충분히 래디컬하지 않다"고 비판했다고 한다. 억압받은 자들의 의식화를 강조한 것은 좋은 일이지만 프레이리가 산업사회를 부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리치는 '근대' 자체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기계적 장치나 시스템 자체를 바람직하다고 보지 않는다. 설령 그것이 사회주의라 해도.

일리치는 학교 없이도 풍요로왔던 과거 민중의 삶을 이상으로 삼았다. 따라서 학습의 제도화된 기구인 학교를 부정한다. 학교에 안 가면 배움이 없는 사람이라는 고정관념을 넘어서라고 촉구한다. 자연스럽게 방언(사투리)을 쓰라고 요구한다. 또한 가난한 이들을 돕기보다 함께 있는 게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따라서 일리치는 이른바 진보적 체제라는 '복지국가' 개념에도 반대한다. 

일리치는 인간에게 최고의 가치는 '돌봄'이지만 '제도적 돌봄'을 말하는 '복지국가 시스템'에는 문제가 있다고 말하며 성경의 '착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를 전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은 누구의 명령이나 부탁, 제도적 의무와 상관 없이 스스로 쓰러진 사람을 부축하고 여관에 데려다 주고 치료해 주었던 것이다. 일리치는 그게 그리스도교 정신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아무런 강박도 없이 비제도적으로 "내 마음이 그랬어"하고 자율적으로 다친 사람을 돕기로 선택한 것이다. 이처럼 전적으로 자유에 맡겨진 친절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김종철 선생은 도로시 레싱의 소설을 예로 들며 제도적 복지가 얼마나 인생을 각박하게 만드는지 소개한다. 복지서비스를 받는 노인은 관청에서 월급 받고 자신을 도우러 오는 사람보다는 자유로 곁에 와주는 고양이를 더 좋아한다. 타르코프스키 감독도 마지막 영화 <희생>을 복지국가인 스웨덴에서 찍으면서 출퇴근하는 영화 스텝들의 '정열 없음'에 개탄했다고 말한다. 복지국가에선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것은 고용주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고, 더 중요한 문제는 "정열이 없어지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일리치는 제도와 '계획'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는 인류의 진보에 공헌했다는 프로메테우스보다 판도라의 남편이었던 에피메테우스가 이 시대에 더 필요하다고 말한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질병이 나왔지만, 질병 때문에 온갖 드라마가 펼쳐지는 게 인생이라는 것이다. 가난과 고통은 불편하지만 인생을 깊어지게 하는 힘이 있는것이다.

김종철 선생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쓴 밀란 쿤데라가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그는 왜 인간에게 똥을 만들었는가?"하고 물었지만, 똥이 밥이 되는 순환고리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질병과 어둠을 통해 삶의 예술, 고통의 예술, 죽음의 예술을 이해해야 인간다와진다는 것이다. 더러운 것을 눈 앞에서 치워버리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말이다. 

기대를 넘어 희망으로

한편 일리치가 말한대로 희망(hope)과 기대(expectation)는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희망은 '자연의 선량함을 믿는 것'이며  기대는 '인간이 계획하고 통제한 결과에 의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판도라의 상자에 남아 있던 희망을 중시하는데, 예측할 수 없지만 그저 자연의 선량함을 믿고 따라야 의외의 '경이로움'을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마치 예상치 않던 사마리아 사람에게서 도움을 받고서, 그 강도 만난 사람이 느꼈을 경이로움 같은 것이다. 이는 시스템이 줄 수 없는 것이다.

김종철 선생이 전한 일리치는 줄곧 '믿음'에 관해 말하고 있었다. 우리 너머에 있는, 예측할 수 없는, 우리보다 더 큰 자비로운 존재에 대한 믿음 말이다. 불안한 삶, 질병과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보험(제도)에 의지하도록 우리를 이끌어 가지만,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느님과 자연의 선량함을 믿고 순진한 눈으로 자신을 맡길 수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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