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아빠의 육아일기]

 

‘토토로’를 만나게 한 ‘도토리’

미야자키 하야요 감독의 명작 애니메이션 ‘토토로’를 보면 극중의 꼬마숙녀 ‘메이’와 ‘토토로’를 만나게 해주는 매개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도토리’다. 극중에서 아이들이 일본말로 ‘동그리’(발음도 우째 이리 비슷한지)라고 하는 그 도토리가 숲의 요정이자 정령인 토토로와 아이들을 연결시켜준다.

이 놀라운 애니메이션은 몇번을 봐도 지겹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새로운 모습과 감동을 전해준다. 그래서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까지 이 동화에 몰입하게 되는 것일 터이다. 애니메이션 토토로에 관해선 많은 이야기거리가 있을 것이다. 귀농/귀촌에 대한 이야기, 농촌공동체이야기, ‘무릇 가족이란’의 그 가족이야기, 동네이웃들의 이야기 그리고 무엇보다 숲의 요정을 불러오는 상상력 등등 어느 장면 하나 깊은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않은 데가 없을 정도로 뛰어나 영상미와 이야기 거리가 존재하는 것이 이 장편 애니메이션의 특징일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한 구체적 이야기는 뒤에 다시 한번 하기로 하고, 오늘은 이 장편동화의 중요한 소품으로 등장하는 ‘도토리’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해보도록 하자. 시절은 시나브로 가을의 한가운데 와있는 듯한 그 ‘도토리의 계절’이니 말이다.


‘토토로’를 찾아 나선 아이들

아이들과 동네 뒷산으로 도토리를 주우러 다녀왔다.
벌써 며칠 전 ‘동네 한바퀴 놀이’에서 아이들은 길가에 떨어진 ‘동그리’(아이들께는 ‘도토리’보다 ‘토토로’의 영향으로 ‘동그리’란 말이 더 재미있는 모양이다)를 몇알 주워왔었다. 그래서 시절은 시나브로 ‘도토리의 계절’로 접어들었음을 알 수 있었고, 내친 김에 어제 아이들과 작은 배낭을 하나씩 둘러메고 산을 오르게 된 것이다.

산을 좋아하는 필자가 한여름 아이들과 함께 산을 오르지 못한 것은 그 숱한 모기들 때문이었는데, 다행히 한껏 불어오는 다소 서늘한 바람은 모기들을 멀리 쫓아주었는지 이 가을산행의 아이들은 모기들의 공격에선 비교적 자유로웠다. 그래서 아이들은 맘껏 가을산의 정취를 느끼고, 그 속의 숱한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우리 산에는 도토리나무가 지천으로 널린지라 어느 산엘 가도 가을은 도토리가 지천이다. 인간들이 주워 가지만 않으면 산엔 도토리가 천지일 것인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웰빙 바람을 타고서 그 ‘자연산’ 도토리는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이어서 보이는 족족 녀석들을 줍는 손들은 바쁘다.

그래서 드문 드문 새로 떨어진 녀석들 중에서 그래도 우리들 ‘작은’ 눈에 띄는 녀석들을 꼬맹이들은 줍는 것이고, 그 ‘동그리 줍기놀이’에 열중하는 것이리라. 정말이지 아이들이 그 코딱지만한 눈으로 녀석들을 찾아내는 것은 얼마나 신기한지 모른다.

그렇게 아이들은 이 가을의 정령들을 주워들면서 가을을 한껏 느껴보는 것이고, 가을을 그대로 한껏 담아오는 것이리라. 이렇게 아이들의 가을산행은 그 나름의 운치가 있는 것이었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는 시간인 것이다.

첫째 놈은 나무막대기를 잘 줍는다. 나뭇가지의 잔가지 끝이 녀석이 요즘 한창 ‘열애’하고 있는 공룡의 손을 닮았기에 녀석은 나뭇가지를 주워들고는 “아빠, 테리지노(사우르스) 손가락 같제?” 한다. 그러곤 지 동생에게도 하나 나눠주고는 뭐라 뭐라 둘은 조잘대면서 숲을 걷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제주 올레길’이 부럽지 않다. 사실 ‘올레길’이 따로 있는가? 지척에 놓인 이 숲길이야말로 참 올레길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종류도 다양한 도토리

막대기로 켜켜이 쌓인 낙엽더미도 흩어보면서 우리는 ‘동그리 찾기놀이’에 더 열중한다. 그런데 이렇게 여러 참나무에서 떨어진 도토리를 줍다보면 그 모양이 다 다름을 알게 된다. 어느 놈은 그야말로 동글동글하고, 어느 놈은 길쪽하고, 어느 놈은 둥굴넓쩍하게 큰 것이 사람이 다 가지각색이듯 도토리 또한 색색가지인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흔히 아는 도토리나무 즉 참나무의 종류가 여러 가지이고, 따라서 그 열매 또한 각기 다른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열해 보면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졸참나무, 신갈나무, 떨갈나무, 길참나무 이렇게 여섯 종류의 참나무가 있고, 그 나무마다 약간씩 모양이 다른 도토리가 열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 열매들을 모아놓고 보면 참 재미있다. 특히 ‘동글이’ 녀석과 ‘길쭉이’ 녀석이 크게 대별되는 것이 녀석들을 보는 재미가 솔솔하다. 거기다가 이 가을은 여러 다양한 열매를 선사한다. 비슷한 시기에 영글어 가는 알밤과 개암 그리고 야생 마 열매가 그것들이다.

녀석들을 한곳에 모아두고 보니, 반가운 친구들이 서로 모인 것 같아 보기 좋고, 아이들은 요 새로운 친구들과 참 잘 어울려 논다. 이 새로운 친구들 입장에선 다소 괴롭기도 하겠지만, 어쩌랴 운명인 것을.


‘도토리 올레길’, 토토로를 만나는 시간

이렇게 아이들과의 산행은 여러 가지 친구들을 만나고 사귀고 하면서 이 가을 속으로 깊이 들어갔다 오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들의 뒷모습에 가을이 그대로 담겨있다. 아이들과 함께한 가을나들이는 이렇게 많은 선물들을 가지고 돌아온 시간이다.

참으로 하늘이 드높은 가을이다.
주말 먼데로 ‘낯선’ 올레길을 찾아 떠날 것이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가까운 뒷산으로 ‘도토리 올레길’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산이, 자연이 주는 선물도 한아름 받고, 이웃들과 인사도 나눌 수 있는 그 ‘반가운’ 시간들 속으로 말이다. 혹 그 길에서 진짜로 ‘토토로’를 만나는 영광(?)을 입을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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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근/ 대구의 엄마산인 ‘앞산’을 지키는 싸움인 앞산터널반대운동을 하면서 환경과 생태 문제는 곧 지역의 문제, 정치의 문제란 것을 확실히 느끼는 계기가 되었고, 그런 인식하에 지역의 환경과 생태 그리고 농업의 문제에 관심이 많다. 현재 지역 청년들의 작은 공부모임 ‘땅과자유’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앞산꼭지’(‘앞산을 꼭 지키려는 사람들의 모임’의 약칭) 회원이자, ‘블로그 앞산꼭지’(http://apsan.tistory.com)의 운영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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