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국의 세상만사 인생사]

딸네미가 한두 달 전부터 소화가 안 된다거나 쓴 물이 넘어온다는 얘기를 꽤 여러 번 했던 것 같다. 허나 이 녀석이 똑 제 엄마를 닮아 제 몸 아프다는 얘기를, 남의 얘기 하듯이 지나가는 말로 툭툭 던지곤 하는 것이어서 나 역시 별 대수롭지 않은 증상이려니 하고 말았는데 하루는 누워서 뒹굴고 있는 나를 앉히고는 대화를 청했던 것이었다.

“아빠. 아마 병원에 가 봐야 할 것 같아.”
“뭐? 왜?”
“내 생각에는 내 위장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아.”
“회충이 살아 꼼지락거리는 듯한 생동감이 느껴지냐?”
“농담 아냐.”

너무나 오랜 단골이어서 우리 식구 끼리 ‘돌팔이’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원장님이 계시는 동네 의원에 들러, 순서를 기다릴 때까지도 나는 100원짜리 커피를 뽑아 먹고, TV에서 방영되는 ‘개콘’을 보면서 박장대소했고, 언제나 그렇듯이 맨발에 슬리퍼 차림새인 왼 발을 오른 무릎에 올려놓고 코를 팠으며, 내원환자임이 분명한 어린아이에게 까꿍을 하다가 그 아이로 하여금 얼굴이 파래지도록 울게 만들었으며, 더불어 그 아이 엄마의 얼굴 역시 하얗게 만들었다. 말하자면 나는 언제나처럼 매우 일상적인 삶을 즐기고 있었다. 헌데 뒤이어 돌팔이 원장님을 만나는 순간 모든 ‘일상’은 삽시간에 작살나고 말았다. 내 얼굴이 아까 그 아이의 얼굴처럼 파래진 것이다.

“심각한데요. 내시경 검사가 필요하겠어요.”
“예? 왜요? 왜 내시경을 한대요?”
“심각하니까요.”
“왜 갑자기 심각하죠?”

나는 하늘에 맹세코 그 원장님이 진짜 돌팔이기를 빌고 또 빌며 이런 대화를 이어갔다. 그리고 우리는 부랴부랴 종합병원에 예약을 하고 날짜를 기다렸다. 이윽고 이번에는 돌팔이 원장님과는 다른 포스가 느껴지는 종합병원 특진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특진의 경우 돈이 더 든다는 사실을 겪은 최초의 날이었다) 그리고 내 딸의 배를 두어 번 만져보고 눈까풀을 까뒤집어 본 그 의사 선생님에게 나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심각한가요?”
“아니요.”
“예??? 심각하다던데요”
“뭐 조금 염증이 있을 수 있으니 내시경을 받아보는 것도 괜찮겠지요.”
“심각하지 않다면서요.”
“그럼 내시경 예약을 취소해 드릴까요?”

허걱....

“아니요. 아니요....”
“무슨 내시경으로 할까요. 수면 내시경과 일반 내시경이 있는데...”
“어떤 게 더 좋을까요...” 어쩌구 저쩌구

그리하여 나의 딸은 바야흐로 수면 내시경을 이틀 후에 받기로 했다.
아 그 무서운 이틀이여...

나는 우선 인터넷을 뒤져 내시경이라는 낱말을 찾았다. 그리고 그 얘기를 발견한 것이다. 수면 내시경을 하다가 사망한 사례가 있다는 그 무서운 얘기를 말이다. 확률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다. 내 딸 아닌가. 만약 내 딸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긴다면? 그 때에는 지구상의 모든 것이 나의 적이 될 판국이다.

다짜고짜 동네 의원 돌팔이 원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면 내시경하고 일반 내시경 중에서 어떤 게 더 위험합니까?”
“그것은 대답하기 좀 곤란한데요.”
“아 이 양반아, 원장님 때문에 우리 딸 목구멍에 막대기 집어넣게 생겼는데 결자해지의 차원에서 말씀을 해 주셔야 할 거 아닙니까?”

(나는 덩치가 꽤 큰 남자인 반면 돌팔이 선생님은 우리 딸 보다 조금 큰 남자이므로 다소 위압감을 느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뭐 위험 부담으로 치자면 수면내시경이 조금 더 위험하지요”
“뭐요? 아니 이 무슨....”

나는 아예 패닉 상태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아 나의 딸... 그 위험한 내시경을 해야 하는 나의 딸... 주여...

나는 내시경 검사를 받기로 한 전날 엄청나게 술을 마셨지만 결국 뜬 눈으로 밤을 새고 말았다. 그리고 알콜중독자처럼 입에서 술 냄새를 풍기며 내 딸과 내 마누라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게다가 나는 가장이었으므로 셋 중에서 가장 태연하고도 여유로운 표정을 지어야 했다. 내시경 같은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나는 내 몸으로 보여야 했다.

나의 표정에 고무되었는지 맑은 웃음을 머금고 내 딸은 그 무시무시한 내시경 검사실에 입장했고 나는 회복실에서 기다렸다. 나는 마음의 평정을 놓치고 마누라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여보. 밖에 비 많이 와?”

(참고로 그 날은 아침부터 구름 한 점 없었고 일기 예보 역시 앞으로도 계속 맑을 것이라고 했다)

“당신 어디 아파? 비가 왜 와. 비가. 이 양반아. 이 맑은 날에”
“아 이놈의 여편네가... 맑은 날에도 비가 올 수 있는 거지 뭘 그래...”

그리고 약 삼십분 후, 회복실 문이 열리면서 졸음에 겨운 병아리처럼 곤댓짓을 하면서 내 딸이 휠체어를 타고 나타났다.

“아빠. 나 괜찮은데... 엄청 졸려”

에구 귀여운 것, 사랑스러운 것, 나의 전부, 내 딸이 드디어 살아 왔구나. 아아... 부활했구나. 내 이제부터는 너를 더욱더 사랑하리. 네가 아프면 내가 대신 아프리...

이게 바로 오늘이었다.
나는 오늘 아버지로서 또 하나의 계급을 달았던 것이다.

/변영국 2008-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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