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원.인력.사업자 선정까지 세밀한 계획없어

정부가 소액서민금융(마이크로크레딧) 사업을 벌이기로 했다. 서민과 중소상인에 대한 소액 대출사업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제도권 은행에 접근이 어려웠던 사람들이 반길만한 소식이다.

일각에서는 '기존의 재탕.삼탕 정책에서 한 발 나아간 획기적인 정책'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몇가지 우려를 제기하며 '혹여 말잔치로 끝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내비치고 있다.

MB정부의 회심작..미소(美少)금융중앙재단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7일 소액서민금융재단에서 열린 제31차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마이크로크레딧 뱅크재단인 '미소재단'을 만들어 2조원을 전국의 서민들에게 골고루 지원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7일 소액서민금융재단에서 열린 제31차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마이크로크레딧 뱅크재단인 '미소재단'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청와대


정부가 추진하는 '미소(美少)금융중앙재단'이란, 제도권 금융 이용이 곤란한 금융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창업자금, 운영자금 등 자활자금을 무담보.무보증으로 지원하는 소액대출사업을 뜻한다. 정부는 기존에 운영되던 소액서민금융재단을 대폭 확대해 네트워크를 형성해 금융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금융소외계층이 사회.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계획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대기업과 금융권을 중심으로 향후 10년간 총 2조원의 기금을 조성해 25만 가구에 소액 대출사업을 벌일 계획이다. 원활한 기금 조성을 위해 사업에 동참하는 기업에게는 법인세 50%의 세제상 혜택을 주기로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 날 "전경련을 중심으로 한 대기업과 은행연합회에서 협조를 해서 대기업이 최하위에 있는 소상인들에게 직접 도움을 주는 제도를 시작하려고 한다"며 "현대사 60년 역사상 처음으로 민간에 의한 직접 서민금융을 한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재원 문제 어떻게 해결하나

정부의 이번 계획에 대해 기존의 마이크로크레딧 사업장을 포함, 진보진영에서도 일단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현재의 사업 규모는 금융소외자들의 금융문제를 해결하기에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안대로 대규모 네트워크를 만든다면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 사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우려되는 점도 많다. 특히 재원에 대한 우려가 가장 크다. 정부는 10년간 2조원 가량의 기금을 조성하겠다는 방침이지만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한 마이크로크레딧 뱅크 관계자는 "대부분의 재원이 기업의 기부로 채워지는데, 각 기업의 자발성에 맡겨진 일이라 기부를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다"며 "더욱이 현재처럼 경기라도 좋지 않으면 더욱 재원 확충이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경련이나 은행연합회쪽에 사전구두약속을 받은 것 같긴 한데 과연 확충이 가능할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다행히 2조원 가량의 기금 조성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 금액은 서민금융문제 해결에 턱없이 모자라다는 비판도 있다.

임수강 민주노동당 정책전문위원은 "2조원이 작은 금액은 아니지만 이것으로 해결이 되는 것은 아니다"며 "현재 대부업 대출 금액이 40조원에 이른다. 정부 공식 집계로는 18조원에 이르는데, 정부의 집계만으로 봐도 필요한 돈의 10%에 불과한 금액"이라고 지적했다.

제도권 금융을 이용하지 못하는 금융소외자가 대부업 등 사금융을 이용한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 대부업 대출 규모만큼은 지원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임 위원은 "특히 10년간 2조원이라면 1년에 2천억 정도인데, 경기가 안 좋아지며 지속적으로 가계소득이 줄어들고 부채가 늘어났다는 점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도덕성.윤리성 필요..인력은 어떻게?

이명박 대통령이 '현대사 역사상 처음으로 민간에 의한 서민금융을 한다'고 말한 것과는 달리, 민간에 의한 마이크로크레딧 사업은 지난 10여년 전부터 시작돼 왔다. 현재 활동 중인 30여개의 사업장 중 사회연대은행, 신나는조합, 아름다운재단 등이 가장 활발한 사업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이들은 운영된 지 5년이상 지난 곳들로, 한국을 대표하는 마이크로크레딧 사업 기관이다.

현재 활동 중인 사업장을 모두 합쳐도 사업규모가 크지 않고 추진기반이 취약해 전달 체계의 효율성도 다소 낮은 상태다. 특히 서민들에의 접근성도 제한돼 있었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10배 이상의 법인을 설립해 전국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기존 사업장은 "재단이 확대되면 지원받을 수 있는 사람들도 늘어나기 때문에 환영할 일"이라면서도 재단 운영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사회연대은행의 안준상 사업개발본부 팀장은 "우리는 벌써 7~8년 동안 (마이크로크레딧을) 운영해 왔지만 이제서야 운영에 대한 노하우들을 조금 알게 됐다"며 "2~300개의 네트워크가 동일한 퀄리티를 가지고 움직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사실, 무담보.무보증으로 신용이 낮고 어려운 사람에게 창업을 통한 기금을 마련해 주는 마이크로크레딧 업무는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도덕성과 윤리성이 요구되는 일이다. 자금이 가장 시급한 사람에게 컨설팅을 통해 대출해주고, 대출금을 상환할 때까지 따라다니며 독려.교육 등을 수행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는 오는 11월까지 미소금융법인 모집 등 준비기간을 거쳐 12월부터 30여개의 지역법인을 설립하고, 2010년 6월부터 전국에 걸쳐 지역 법인 설립 및 지부 확대 등을 통해 300여개 수준의 네트워크를 구성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1년이 안되는 기간동안 법인 수를 급격히 확대해 나가겠다는 것인데, 법인만 늘리고 대출만 해준다고 해서 모두 해결되지는 않는다. 네트워크 간 동일화된 운영원리나 노하우, 시스템 등의 확실한 정비가 선행돼야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설계는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다.

또 다른 난관, 사업자 선정

사업자를 어떻게 선정할 지도 문제다. 중앙재단에서 선정한 사업자에 재원이 분배 되는 구조인데, 이에 대한 정부의 계획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엉뚱한 사업자가 선정된 과거 사례가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지난 17일 한 기자회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지난 정부 지원대상에서 사회연대은행은 배제됐었다. 이사진 중에 참여정부와 친했던 인사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그 대신 이제 설립된 지 몇 달 채 되지 않는 이른바 뉴라이트 계열의 단체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거액의 정부지원을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박원순 상임이사는 "아직 경험과 실적이 전혀 없는 단체들에게 거액의 지원을 했다가 이들이 제대로 일을 처리하지 못하고 예산의 낭비나 부패가 있는 날이면 그 모든 책임은 결국 정부가 져야 할 몫"이라며 "사실 그런 잘못은 예정돼 있다. 공정성을 잃어버린 정부의 행태를 어떻게 믿을 수 있나"고 말했다.

임수강 전문위원도 "여기저기서 (미소금융재단에 들어가겠다고) 신청서를 냈는데, 뉴라이트 계열만 통과시켜주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며 "가만히 보면 금융 쪽을 잘 알지 못하는 비전문가들이 많은데 이런 사람들이 사업자로 선정되면 아까운 돈만 새게 된다"고 우려했다. <기사제공: 민중의소리>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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