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국의 세상만사 인생사]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소위 이분법을 배웠다.

명계남의 정말 명쾌한 대사, “ 세상에는 두 가지 부류의 인간이 있습니다. 박철순을 아는 인간, 그리고 박철순을 모르는 인간...”

박철순을 모르는 분들을 위해 한 말씀드리자면 그는 프로 야구 원년 (말하자면 1982년)에 정말이지 그 이름도 생소한 ‘밀워키’라는 미국의 어느 한적한 곳에서 야구를 하다가 (정확히 말하자면 당시로서는 한국에서 태어난 어떤 야구인도 상상하지 못할 소위 메이저 리그 언저리에서 생활하다가) 재일동포 출신의 감독 김영덕씨가 처음으로 지휘봉을 잡은 팀인 OB 베어즈에 입단했던 정체불명의, 또한 난공불락의 투수였다. 그 해 박철순은 그 무시무시한 기록인 22연승을 달성했다. (선발, 중간 계투, 마무리, 혹은 패전 처리 등등으로 그 전문성이 나뉘어 지는 지금의 투수 운용 체계에서는 사실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더러 박철순의 기록을 깬 투수들이 있기는 있다)
나 역시 야구를 꽤 좋아했고 박철순을 좋아했다. 그렇다. 세상에는 언제나 ‘두 가지 부류의 인간’이 있다.


또................

박봉곤 가출사건에서는 심혜진이라는 매우 그럴 법한 배우가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부른다.

“무울새... 우흐는.... 고오요호한 강 언덕에 그흐대해와... 두후리서 부으으흐흐르던 사하 라항 노래.....”

지금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인 ‘산 너머 남촌에는’이라는 노래를 박재란 이라는 가수가 부르는, 그 아름답고 절절한 60년대식의 감동이 밀려 올 때가 바로 그 “무울새 우후는” 이라는 노래를 내 아내와 부를 때다.
그렇다. 세상에는 언제나 (사실 그렇지도 않은데) 뭔가를 잃어버렸다고 생각 하면서 그 잃어버린 것에 대해 촉수를 곤두세우는 사람들이 있을 법 하다, 그리고 내가 그 ‘사람들’ 중의 하나다.
말하자면 나는 ‘둘 중의 하나’이고 ‘60년대식으로 절절’하다. 아아아아... 내가 태어난 60년대 초반이여... 그 서글픈 고리타분함이여.... 이분법이여...

오늘 만난 후배와 내가 한 얘기는 다음과 같다.
“형님. 대학로에서 연극을 하는 것이 이미 예전과 다릅니다.”
“야 이 잡놈아. 그렇게 얘기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따라서 나는 지금부터 너에게 명하노니 대학로의 예전과 현재를 명약관화하게 내게 설파하거라. 안 그러면 너는 오늘 나한테 죽는다.”
“형님 돈이 있으십니까?”
“없다”
“그러면 뭐가 있으십니까?”
“항용 내가 술값을 대줘 그 기꺼운 세월을 살았기에 지금도 연극을 하고 있는 너희 놈들이 있지를 않느냐?”
“에히히. 그렇다면 됐습니다. 대학로에 오지 마십시오”
“왜! 내가 창피하냐?”
“아니요. 버겁습니다.”


벌 받을진저 너무 많은 약골들을 양산하는 우리 세대들이여. 또 하나의 이분법이여....


정말 하고 싶은 말이 있다.

2차 대전인지 뭔지가 벌어질 때 일본의 도고 제독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나를 이순신 제독에 비교하지 말라. 그 분은 전쟁에 관한 한 신의 경지에 오른 분이다. 이순신 제독은 국가의 지원도 제대로 받지 않고, 훨씬 더 나쁜 상황에서 매번 승리를 끌어내었다. 나를 전쟁의 신이자 바다의 신이신 이순신 제독에게 비유하는 것은 신에 대한 모독이다.’

정말 서글픈 이분법은 이런 거다.
1. 그러저러한 이순신을 존경하는 도고제독
2. 그러저러한 이순신

용산의 전쟁 기념관에서 ‘고호’라는 사람의 그림을 볼 기회가 있었다.

나는 왜 그럴까?

마누라와 딸네미는 재미있게 보는 것 같은데 왜 나는 지겨워 죽을 뻔 했을까? 난 뭘까?


그저 빙판이 있다면 팽이나 돌리고 선호네 집이 여전히 있다면 그 집 뒤란의 짚가리 밑에서 동치미나 훔쳐 먹고 싶다.

/변영국 2008-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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