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숙의 여행(女幸), 여행(旅行) 4] 삶을 보는 따스한 눈길들

길을 가다 만난, 길을 걷는 젊은이들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라곤 하지만 이건 또 내려도 너무 내린다 싶을만큼 세차다.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물난리 소식을 접하며 그래도 우리 일행은 빗길을 뚫고 목적지를 향해 내달렸다.

비오는 들판에서 작물을 보살피는 농부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달리는 차 안에서 맞는 풍경이라 휙휙 지나가 버리는 장면들이지만, 마음에 와 닿는다. 머리 수건을 쓴 위에 비닐을 또 한 겹 더 쓰고, 허리를 굽히고 품을 파는 저 아낙의 손길은 분명 생명의 손길일 거다. 아낙을 등지고 역시 허리를 굽히고 있는 저 사내는 남편일까? 녹색의 땅이라는 보성, 그리고 아득한 옛날부터 풍요로움의 상징이었다는 득량만을 뒤로 하고 경상도 땅 진주로 접어든다.

전국의 간이역을 찾아다니며 촬영을 시작한지 벌써 두달이 다 돼간다.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한 사전답사까지 합한다면 그 기간은 이미 일년도 넘어 버린 시간 여행이다.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변해 갈 때마다 간이역은 색깔을 달리하며 나를 맞이해 준다.

진주역에서 만난 그늘진 삶에 아픔을 느끼며....

순천에서 남해 고속도로를 타고 도착한 곳은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의 유려한 물길과 기암절벽의 조화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예향 진주는 천년의 멋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조선시대 3대 절경으로도 유명한 촉석루, 임진왜란의 3대 첩지로 민족의 충절이 서린 진주성 등이 진주가 자랑하는 문화재다. 특히 남강의 푸른 물결 위에 떠있는 의암은 왜장을 껴안고 물에 뛰어들어 순절한 논개의 기개가 서린 곳으로도 유명하다.

개인적으로도 진주는 낯설지 않다. 대학 다닐 때 MT를 오기도 했고, 여행삼아 남강을 찾기도 했다. 해거름에 남강 다리 밑 포장마차에서 꼼장어를 구워먹던 맛도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하지만 2009년 여름, 장맛비가 오락가락 하던 날 찾은 진주는 오히려 슬프게 다가왔다. 오전 11시경 진주역. 빗줄기가 차츰 가늘어지다 그예 그쳐 푸른 하늘을 드러냈다.

역사는 비교적 깨끗하게 단장돼 있었지만 진주역 광장에는 노숙자들과 가출 청소년으로 보이는 이들 한무리가 앉아 있다. 소녀 한 명이 티셔츠를 아무 생각없이 걷어 올려 배를 드러낸 채 일행 쪽으로 걸어간다. 손가락엔 담배 한 개비가 들려져 있다. 가슴이 철렁했다. 쫒아가 티셔츠를 내려주고 싶은 마음이 앞서지만 꼼짝할 수 없었다. 그저 아픈 마음만 추스리고 있는데, 광장 한 켠에 앉아 술을 마시던 노숙자들이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역무원들은 이들에게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여자는 아까부터 술을 마시며 함께 있던 남자에게 계속 시비를 걸고 있었다. 여자의 주사가 점차 심해지는가 싶더니 이내 남자의 발길질이 시작됐다. 주변에 사람들이 없는 것도 아닌데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저러다 죽지 싶은 생각이 들어 나라도 신고를 하려 했더니 선배가 만류한다. 그들을 위해 어떤 행동도 취하지 못하는 자신이, 우리 일행이 조금 한심스럽게 생각된다.

진주역을 떠날 때 우리 일행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목격한 장면들에 대한 생각 때문이었으리라. 기차가 떠나면 종착역을 향해 달리듯 인생길도 마찬가지일텐데, 좀 더 자기 생을 사랑할 수는 없을까? 사람마다 구비구비 인생길에서 마주치는 간이역은 어떤 것일까? 다음 목적지를 향해 가는 동안 일행은 어쩌면 비슷한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진주수목원역'.
비가 조금씩 다시 내린다. 진주수목원역에 도착했을 때 나는 그 소박하면서도 정겨운 모습 때문에 조금 전까지의 우울함을 털어낼 수 있었다.

그저 역 명판 하나에 마을과 나란히 붙은 철길 하나, 그리고 알록달록한 비닐 천막 지붕이 전부였다. 조금만 주의를 게을리하면 영락없이 스쳐지나쳐 버릴 것 같은 진주수목원역. 하지만 그 역은 있는 그대로 소박한 모습으로 방문객을 환하게 맞이해 준다.

새내기 간이역 '진주수목원역'의 호젓한 즐거움

속도 지상주의에 밀려 수많은 간이역들이 소리도 없이 자취를 감춘지 이미 오래다. 하지만 진주수목원역은 인근에 있는 도립 경상남도수목원 이용객의 편의를 위해 2007년 새롭게 문을 연 새내기 간이역이다.

비록 역사도 없이 임시승강장 형태로 영업을 시작했지만, 진주수목원역이 주는 의미는 남달랐다. 간이역 촬영을 위해 기초 자료를 찾기 시작했을 때 옛 기억 속에 빛바랜 추억으로 남겨져 있던 간이역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적이 실망했던 터였다. 그런데 비교적 경전선은 원형 그대로의 간이역이 많이 남아 있었고, 거기다 새로운 간이역이 생겼다니 반가움이 앞섰던 것도 사실이다. 경전선은 총연장 315.2㎞. 삼랑진에서 마산-진주-순천-광주 송정동에 이르는 철도로 우리나라 남해안 지방을 횡단한다.

철로 위를 달리던 열차가 진주수목원역에 멈춰 가쁜 숨을 몰아쉬면 승객들이 내려 대부분 탄성을 내지른다. 하지만 그것은 비교적 한 템포 느리게 나타난다. 진주수목원역은 분명 상식 속에 머무르는 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찻길의 한 쪽은 마을과 거의 거리를 두지 않고 달리고 있고, 다른 한 쪽은 도로와 나란히 달린다. 역무원도 없고, 역사도 없는 역에 기차가 서면, 마을이 깨어나는 듯 하다. 개암마을. 80 여 호, 200 여 명의 주민이 사는 개암마을은 진주수목원역이 생기면서 작은 변화가 생겼다. 철길 옆에 오래 전부터 있었던 마을 정미소 옆에 숙박업소와 식당이 생겨난 것. 올해부터는 이곳에서 간이역 축제도 열린다니 진주수목원역은 분명 새로운 문화를 품고 지친 현대인의 쉼터로 자리매김할 듯 하다.

서울에서부터 여행 왔다는 3명의 여대생 조수연, 김소진, 김수현씨는 진주수목원역에 내리면서 조금은 낯설어하면서도 빠르게 주변 풍광에 빨려 들었다. 철도 여행을 하기 전 인터넷을 검색해 진주수목원역을 알고 왔다는 그녀들. "막상 와보니 너무 신기하다" 는 말로 첫 느낌을 전한다. 도심에서는 절대 만날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것을 마음 주머니에 담아가겠다면서 그녀들은 경남 수목원을 향해 빗길을 나란히 걸어 사라졌다.

외롭지만 호젓하게 나 있는 철길, 그리고 그 곁에 말없이 세월을 이고 있는 감나무 한그루, 고추밭과 콩밭이 정겨운 개암마을과 진주수목원을 뒤로 하고 마을 주민들이 힘을 합쳐 간이역 축제를 열고 있다는 평촌역으로 발길을 옮긴다.

스러져가는 농촌 마을, 사라지는 간이역이 안타까워 진주 인근의 문화예술인들과 평촌역 주변 주민들이 힘을 합쳐 만들었다는 평촌 간이역 축제다. 그러나 축제가 열리는 가을날과 달리 여름날 찾은 평촌역은 쓸쓸하기 짝이 없었다.


지역민 힘합쳐 간이역 축제 열지만 평소엔 여전히 쓸쓸한 평촌역

인적이라곤 없는 평촌역에 들어선 허리 굽은 할머니와 중년의 여인. 마산에서 기차를 타고 일주일에 한, 두번 친정어머니를 만나러 온다는 한기남씨(49세) 모녀다. 딸은 팔순이 넘은 노모에 대한 안타까운 정이 넘친다.

"마을 바로 앞이 기차역이니 다른 교통수단보다 편리하고, 또 기차를 타고 오는 길은 옛 추억이 살아나 즐겁다"고 말하는 한기남씨는 "예전에는 평촌역에서 기차를 타는 사람도 많았고, 늘 북적거렸는데, 도로가 발달하고 승용차가 늘어나면서 열차 문화는 사라졌고, 이젠 고향 친구들도 잘 만나지 못한다"고 아쉬워 했다. 기차가 주된 교통수단이었을 땐, 기차시간에 맞춰 역에 나가면 고향가는 친구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는 것. 우리 생활 깊숙히 스며든 자동차 문화와 속도 지상주의가 어쩌면 사람의 향기를 빠르게 흩어버렸는지도 모른 채 오늘날까지 앞만 보고 달려온 듯 해 조금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저 멀리서 기차가 기적을 울리자 플랫폼까지 따라나온 노모가 딸의 어깨를 부둥켜안는다. 엄마 품에 안겨 그녀도 가만히 노모를 안는다. 가슴이 찡했다. 심장이 좋지 않은 노모의 건강을 걱정하며 그녀는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뗀다. 엄마를 떠나 다시 자기 삶의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딸을 싣고 기차는 무심히 평촌역을 떠난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 속에 말없이 서 있는 평촌역. 역사에 마음이 있다면 오늘 같은 날은 참 슬프고 외롭겠다는 생각이 든다. 먼 산 너머 하늘이 조금씩 개인다. 이 비는 곧 그칠 것이다. 노모와 함께 기차를 기다리면서 안으로 들어온 개구리를 가만히 발로 밀어 역사 밖으로 뛰어나갈 수 있게 해주던 그녀의 고운 마음이 조용히 내 마음 속에 포개어진다.

지친 여행객 맞이한 원북역에서의 희망낚기

평촌역과 군북역 사이에 있는 작은 간이역 원북역. 원북역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또하나의 만남은 철길 따라 걸으며 삶의 방향타를 찾던 젊은이였다.

마치 시골의 간이버스 정류장처럼 맞이방만 덩그마니 있는 원북역이 촬영 대상에 들어간 것은 역사에 얽힌 미담 때문이었다. 원북역은 본래 철도청(現 한국철도공사)의 계획으로 설립된 것이 아니라 지역주민의 요청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원북역에는 박계도라는 사람이 역 건물을 기증했다는 명판이 붙어있는데, 재일교포인 그가 1975년 고향 주민을 위해 역사를 만들어 주었다는 것. 그 후부터 주민들은 마을에 열차가 정차해 편리한 생활을 했을 것이다.


때로 단선 철로의 외로움은 마치 인생길의 외로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원북역에서 만난 청년은 원주에서 온 도보 국토 순례객이었다. 외롭게 홀로 걷고 또 걷다가 지쳐, 마산까지 기차로 이동할 생각으로 원북역에 잠시 머무르던 이용기씨(24세). 비옷을 입은 채 간이역 맞이방 소파에 길게 앉아 있던 그는 촬영팀이 부산하게 움직이며 역사 주변을 찍어대자 가만히 몸을 움직여 허리를 세우고 앉았다. 나는 촬영팀을 제쳐두고 그와 얘기를 시작했다.

걸으면서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나누며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는 이용기씨. 무전 도보 여행으로 지친 기색은 역력했지만 자기 삶을 마주하는데에는 여전히 힘이 들어가 있는 듯 했다.

"철길을 따라 걸으면 마을을 만나게 되더라구요. 철길은 마을과 멀어지기도, 마을과 가까워지기도 하면서 제 갈 길을 가더라구요. 기차는 사람을 품고 달리고, 사람은 또 자기들의 삶을 품고 달리겠지요. 이 삶의 여정 속에서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길을 갑니다."

3명이 함께 출발해 일주일만에 홀로 남게됐지만 그는 "여행을 포기하는 것은 인생의 절반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며 걷고 또 걸었다고 한다. 이제 열이레를 걸었다는 그. 모든 것은 자신에게로부터 비롯되고, 모든 싸움은 자신과의 싸움이란 것을 알게 됐다는 젊은 순례객의 말에서 삶의 원천에서 솟아나는 힘을 느낄 수 있는 듯 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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