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땅물벗]

참깨단에서 참깨가 자르르 자르르 쏟아진다. 마치 검은 비가 오는 듯하다. 사진 출처 ⓒ 땅과자유 '티끌'


가을은 저 높은 하늘로부터 시작해서, 불어오는 바람에도 실려 오고, 먼 산의 표정에서에서도 옵니다만, 뭐니뭐니 해도 가을은 역시 저 들녘에서 펼쳐지는 수확의 현장에서 성큼 다가오는 듯합니다. 가을 들녘의 수확현장은 가을을 가장 사실적으로 표현해주는 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경북 의성 직가골 ‘땅과자유 실습농장’에서 불어오는 가을의 향기에는 ‘꼬신내’가 솔솔 묻어납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참깨수확의 현장입니다. 실습농장에 심어둔 참깨가 이 가을 결실을 맺었고, 그 참깨를 수확한 것이지요.

올해 처음 시작한 우리 '땅과자유 실습농장'에서 거둔, 올 초여름의 감자수확(귀농 연습, 땅과자유 실습농장을 가다 - “땅으로서 자유하라”)에 이어 두번째 ‘고소한’ 결실입니다. 앞으로 고구마 수확도 남아있습니다만, 농사는 역시 수확에서 오는 보람으로 그 한여름의 고된 노동을 갈무리하는 것 같습니다. 그 한여름 땡볕의 제초작업(주말농장 체험을 하고 나니 ‘농사’가 보인다 - ‘땅과자유’ 실습농장을 다녀와서)은 아직까지 기억이 생생합니다만, 그런 고된 작업이 있었기에 이 가을의 결실이 더욱 풍요롭게 여겨지는 것이겠지요. 하여간 올해 처음 시작한 실습농장에서 이렇게 수확의 큰 기쁨을 누려보니까 농사란 것이 이런 것이구나란 것을 슬쩍 느껴도 보게 됩니다.

이번에 수확한 참깨는 '검은깨'인데요. 한방에서는 '흑임자'라고도 합니다. 한방에서는 말하는 흑임자의 효능은 “영양을 돕고 대변을 부드럽게 한다”라고 되어있고, 주로 강정이나 죽, 다식 등으로 해먹습니다. 또한 이 흑임자는 우리 몸에 좋은 필수 아미노산이 많이 들어있어 항산화작용을 하고 치매를 예방하고, 피부암, 위장암, 폐암 등 각종 암세포의 억제능력이 있다고 합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지요. 그 가을 수확의 현장으로 한번 들어가보록 하겠습니다.

땅과자유 실습농장의 참깨밭입니다. 흔히 깨 수확을 "깨를 찐다"라고 표현하는데, 깨 찌기 직전의 참깨밭 모습입니다.

본격적으로 '깨를 찌고' 있습니다. 참깨단을 잘라서 이렇게 한곳으로 모읍니다.

찐 깻단을 모은 다음 한묶음씩 이렇게 묶습니다.


묶은 참깨단을 서로 마주보도록 세워서 말려둡니다. 이렇게 서서히 마르면서 깨가 들어있는 '깨방'이 벌어지고, 적당이 벌어졌을 때 털어주면 깨가 좔좔 흘러내리지요.

한 일주일 세워둔 깻단을 들고와서 이렇게 깨를 텁니다. 잘 마른 녀석들은 살살 두들기면 쏴아 소리를 내면서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그 어떤 소리보다 더 기분 좋고, 풍성해 보이는 그 소리를 내면서 말입니다. 바로 가을을 부르는 소리겠지요.

자, 참깨가 좔좔 흘러내립니다.

 

'검은깨'입니다. 한방에서 '흑임자'라고 하는 그 '검은깨'되겠습니다.


가을향기가 뭍어나는 그 '꼬신내'를 눈으로도 확인하고요.

이렇게 마대자루에 담으면 참깨수확은 끝이 납니다. 물론 아직 덜 마른 녀석들은 다음주 주말에 가서 다시 떨어야 하겠지요.

이쯤해서 김준태 시인의 "참깨를 털면서"란 시를 한번 봐야겠습니다. 위의 참깨수확의 모습을 보시면서 시인이 들려주는 '참깨 터는 소리'를 들어보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참깨를 털면서
-김준태

산그늘 내린 밭 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 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세상사(世上事)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내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
한 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
도시에서 십 년을 가차이 살아본 나로선
기가 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
휘파람을 불어가며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댄다
사람도 아무 곳에나 한 번만 기분좋게 내리치면
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털다가
"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 되느니라"
할머니의 가엾어하는 꾸중을 듣기도 했다

‘의성 직가골’에서 분 가을의 고소한 향기를 많이 맡으셨나요? 이렇게 가을은 저 들녘에서 우리에게 성큼 다가와 가을인사를 건네고, 그 인사에는 이런 안부의 목소리도 슬몃 들려오는 듯합니다. “너희가 아무리 그래도 농사는 죽지 않아.” 그렇습니다. 농사는 우리의 생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없어서는 안될 근본적인 일임을 새삼 다시 한번 돌아도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여간 가을의 저 현장속으로 어서들 들어가 볼 일입니다. 저 가을들녘으로 들어가 가을의 깊은 향기를 흠씬 묻혀 돌아오시길 바랍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정수근 (대구 앞산을 지키는 백수 아빠, 대구지역 생태모임 '땅과 자유'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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