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에서 마주친 교회]

사진/한상봉

200명이 넘는 초등부 주일학교의 자모회장을 할 때였다. 자모회 운영은 여느 성당과 크게 다르지 않아 주일학교와 유대를 갖고, 자모회비를 걷어 아이들 간식을 챙기고 부활이나 성탄과 같은 대축일에 아이들 선물을 준비하는 것이 주요한 일이었다.

1년 동안 자모회 활동을 한 후, 나는 자모회장으로서 총회에서 보고한 자모회 활동과 결산 내역을 본당 홈피에도 올렸다. 왜냐하면 자모회 활동을 열심히 하는 임원이나 회원 외에 사정상 회비만 내고 자모회 살림살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는, 더 많은 자모회원들도 자모회의 활동과 회계에 대해 알 권리가 있으며, 또한 아무리 신앙인들이 모여서 만든 단체라 하더라도 회계관리와 재정 상태 등을 투명하게 보여줘야한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초등부 자모회 뿐만 아니라 본당의 모든 살림살이도 언제든 누구나 쉽게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고 사목회와 본당 신부에게 말하고 싶었다. 사실 본당의 수입 지출을 공개하는 성당이 몇 있기는 하지만, 아주 미미한 수준이고, 이렇듯 본당의 재정은 늘 베일에 싸여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일반신자들은 알 수가 없는 상태다.

여하튼 난 비록 작은 단체인 자모회라 할지라도 내가 재정을 검토하고 관리하는 한 모든 것을 다 공개하는 것으로 불투명한 교회의 재정운영에 한번쯤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기를 바랬다. 물론 자모회의 지출내역은 대부분 아이들 간식비라 불투명할래야 할 수 없는 지극히 단순한 회계계정이다. 그런데 재정은 투명했지만, 1년 결산을 하고 보니, 뜻밖에도 성직자와 수도자에게 아무런 고민없이 선물로 지출한 ‘예물’이 마음에 걸렸다.

바친 예물 금액도 적지 않았다. 예물은 성직자나 수도자들을 위한 기념일이나 축하식 때 단체장들이 주인공에게 ‘봉투’로 전해지는데, 실제 이런 봉투 주고 받기는 교회 안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축일 뿐만 아니라, 설날과 추석 같은 명절, 서품 몇 주년, 은경축식 그리고 인사이동, 심지어는 사제의 부모까지 챙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무튼 그 해 자모회가 네 명의 성직자와 수도자에게 선물비로 지출한 금액은 100만원 정도였다.

이런 결산내용이 담긴 자모회 1년 살림살이를 본당홈피에 올리고 나서 며칠이 지났을 때 한 자모회원이 내게 전화를 걸어 왔다. 그는 결산 내역을 굳이 본당 홈피에 올려 공개할 필요가 있느냐고 이견을 내었다. 무슨 문제가 있느냐는 내 말에 그 회원은 성직자와 수도자들에게 드렸던 선물비가 거슬린다는 것이었다. 순간, ‘내 생각과 같은 건가?’ 했지만, 이내 그 회원은 선물 준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시시콜콜 적은 결산보고를 본당홈피에 올린 것에 감정이 상해있었다. 그런 것은 자모회만 알고 있으면 됐지, 굳이 까발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고, 선물을 받으신 ‘그분’들이 불편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선물을 하고도 찜찜한 사람(들)! 그래서 나는 그에게 개인의 돈도 아니고 ‘공금’인 경우 투명한 재정 운용과 공개는 기본이고, 그러자면 없는 일을 만들어서 보고할 수도 없으며, 또 자모회의에 나오지 않는, 더 많은 자모회원들이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또 설명하였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 그는 자모회 활동에 소극적으로 변했다.

난 그 다음 해에도 자모회장을 연임하게 되었는데, 임원들과 상의를 하고 그 해에는 사제 축일에 ‘봉투’를 건네지 않았다. 결심한 바를 실행하기까지 정말 몇 번이나 망설였는지 모른다. 관행을 깨는 것이 힘들기도 했지만, 난 이게 맞는 거라고 생각했다. 다음날, 예상한대로 자모회원들은 나를 성토했다. 지금까지 해오던 자모회의 관례를 자모회장 독단으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난 몇몇 자모회원들의 만족을 위해 200명이 넘는 자모회원들이 아이들에게 쓰이는 줄 알고 낸 회비를 그렇게 쓸 수 없으며, 물질적으로 축하인사를 하고 싶은 사람은 개별적으로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몇몇의 자모회원들은, 이것은 ‘교회의 어른’에 대한 인사이며 ,지금까지 아무 문제없이 해왔던 것으로 공금으로 인사치레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이후, 내 임기는 끝났고, 자모회장이 바뀐 뒤 모든 것은 다시 이전으로 돌아갔다.

받는 일에 너무도 익숙해져 이제는 무감각해진 듯 보이는 ‘교회의 어른’들. ‘그분’들이 바뀌지 않는 한, 이 어리석은 ‘봉투 주고받기’는 아마도 교회의 역사와 함께 끊임없이 이어져 나가지 않을까 싶다. 그런 분들을 교회의 ‘어른’이라 해야 하는지는 둘째치고라도 왜 본당 신자들, 아니 각 단체의 임원들은 물질로 인사하는 일에 그토록 집착하는 것일까. 교회 안에서도 역시 돈이 최고의 덕목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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