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교회]9월 13일자 1035호 <평화신문>과 2664호 <가톨릭신문> 모니터링

친일 문제를 재론하게 된 것은 유감이다. 문제가 해결되거나 진정된 것은 아니지만 다시금 교계신문을 통해 눈앞에서 반복되는 일을 본다는 것은 마음 편안한 일이 아니다. 한국천주교회가 스스로 지은 잘못이 원죄 아닌 원죄가 되어감에도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교회구성원으로서 마음이 한없이 불편하다. 

▲명동성당 (사진/김유철)

알다시피 일제강점기 시절 교회의 친일, 좁게는 노기남 대주교로 비롯되는 교회 구성원들의 행위에 대하여 “친일행위자” 혹은 “반민족행위자”란 치욕스런 말 앞에 “아니다” 혹은 “협조는 했지만 그러나.....”라는 말은 변함없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전에도 이 문제에 대해서 많은 말들이 있었지만 2008년 4월 2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친일인명사전 수록대상자 명단’을 발표하면서 이 문제가 불거졌다. 그러자 동년 4월 30일 서울대교구는 「가톨릭인사 ‘친일명단’ 발표에 유감을 표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고, 교계신문들은 5월 11일자에 관련보도와 함께 사설을 통하여 의견을 피력했다. <지금여기>는 당시 <미디어 흘겨보기> 꼭지를 통해 5월과 6월, 4주 동안 교계신문의 보도에 대한 모니터를 한 바 있다.

불행하게도 작년의 민간단체에 이어 국가기관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노기남 전 서울대교구장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난 7월 3일 결정하였으며, 서울대교구는 9월 2일 해당 위원회 앞으로 이의공문을 보냈다고 교계신문은 이번 주 일제히 보도했다. <평화신문>과 <가톨릭신문>은 같은 위치인 1면 오른쪽 하단에 동일한 3단 기사를 실었으며, <평화신문>은 사설을 덧붙였다.

한국천주교회의 가장 대표적이었던 고위성직자를 ‘친일인명사전 대상자’라고 발표한 것보다 국가기관이 그에게 ‘친일반민족행위자’라 부르는 말이 천주교인으로서는 참으로 견디기 힘든 모멸이 아닐 수 없으며 민망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서울대교구는 작년 민간단체의 선정에 대하여 하루 만에 공개적인 성명서를 발표한 것과는 달리 이번의 경우 약 두 달이 지난 후 보도자료 없이 이의공문을 국가기관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 제출한 것을 보면 고민의 농도가 더 깊었음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애초에 불씨를 던졌던 민간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는 <친일인명사전>을 예정보다는 늦어졌지만 머지않아 발간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내년으로 다가온 경술국치 100주년에 대한 조명에서도 천주교회의 친일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가 될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서울대교구와 교계신문들은 논리의 개발 혹은 선정(결정) 기준의 복잡화보다는 단순하게 이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할 것이다. 교계신문의 보도에도 나와 있듯이 서울대교구가 표현한 “노기남 대주교가 식민지시대 말기 조선총독부의 강요로 몇몇 단체를 조직해 일제에 협력한 것은...”이란 말이 단순한 인정이 아니라 진심으로 속죄한다는 데 방점을 찍어야 한다. <평화신문>이 2면 사설에서 “(서울대)교구는 노 대주교가 일제에 협력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았다.”라고 한 것처럼 부인하지 않았으면 역사와 민족 앞에 보다 겸허해야 할 것이다.

사실에 대한 ‘인정’ 다음에 이어지는 당시의 시대상황과 교회 내부적 고민 기타 조건에 대한 이의제기는 위원회가 아니라 역사학자들에게 제시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 역사 앞에 이런 일들을 후대가 어떻게 불러야 할지, 시대모습을 달리하여 교회와 민족 앞에 매번 펼쳐지는 이런 일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처신해야 할 것인지 고민을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작년에도 필자는 친일의 문제는 지난 역사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여기’의 문제라고 했었다. 자신의 이름이 함부로 불리는 치욕을 통해 노기남 대주교는 오늘의 우리에게 자신을 넘어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는 교회의 사람이었다. 

▲순교자를 위한 기념상(사진/김유철)
교회는 순교자성월을 보내고 있다. 교회의 박물관들이 새로운 단장을 했으며 단순한 유물 전시가 아니라 새로운 기획으로 보다 가깝게 신자를 포함한 대중에게 다가올 모양이다. <가톨릭신문> 15면에 절두산 순교성지 주임신부는 인터뷰를 통하여 “순교자들은 자신들이 받아들인 믿음을, 자신의 신념과 확신을 현실적인 이유로 팽개치지 않았다는 말이 될 것이다. 그런 모습을 우리 신앙인들이 지녔으면 좋겠다. … 실천하겠다고 약속한 것을 소홀히 하지 않았던 신앙 선조들을 본받았으면 한다”라고 했다. <평화신문> 역시 3면에 절두산 성지 내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의 재개관을 보도하였다. 재개관 기념전의 이름은 ‘믿음, 그 시작과 … 흔적’이다.

참으로 공교로운 것은 절두산 순교성지 안에는 노기남 대주교 기념관도 있다. 눈물로 씨 뿌리던 사람들의 ‘순교’와 최소한이었다는 ‘협조’가 같은 공간속에서 동전의 양면처럼 한국천주교회 한복판에 놓여있다. 어제도 오늘도 역사는 여전히 말이 없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김유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위원, 경남민언련 이사,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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