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국의 세상만사 인생사]

상황1 - 대학로 유람기

내가 살고 있는 부평에서 대학로 까지 가려면 지하철 1호선을 타야 한다. 물론 차를 몰고 갈 수도 있지만 그 엄청난 유류비를 감당하기에는 나의 경제력이 지나치게 왜소한 관계로 항용 지하철을 이용하곤 한다. 그리고 그 지하철에서 많은 사람을 만난다. (대개의 남성들은 과묵한 표정이거나 심지어 적개심이 살짝 비치는 표정을 짓고 있고 대개의 여성들은 뭔가 경계하는 눈빛을 하고 있거나 반대로 지나친 자기긍정의 자태를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인 지하철은 그래서 옛 추억을 떠올리기 아주 좋은 공간이다. 왜? 변한 것이 하나도 없으니까.) 특히 뭔가를 파는 양반들을 자주 만난다.

세상에... 장갑 한 켤레에 천원이란다. 게다가 보기에도 아주 양호해 보였고 신사용과 숙녀용으로 나뉘는 다양성(?)까지 확보한 그것이 천원이라면 누구나 호기심을 가질 법 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전철 안의 대다수 사람들처럼 ‘나도 살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었고 그렇게 몇 분이 흘렀다.

별 일이 아니라는 듯이 장갑 아저씨는 손에 들고 흔들던 장갑들을 작은 카트에 실려 있는 박스에 담았고 그길로 다음 칸을 향해 카트를 끌고 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바로 그 때 한 부부의 얘기가 들렸다.

“당신 매일 조깅 하면서 손 시리다며? 하나 사지 그래?”
“장갑이 하나 필요하긴 했어.”
“아저씨 장갑 하나 줘 보세요.”

다음 칸으로 옮기던 아저씨는 다시 잰 걸음으로 그 부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아! 그 아저씨는 봉 잡았다. 여기저기서 그 아저씨를 불러대기 시작했으니까...

“아저씨 저도 몇개 주세요! 동네에 노인 분들이 많아서....”
“이봐요. 아저씨. 이리 좀 와 봐요! 내 여간해서는 이런데서 물건 안 사는데 속는 셈 치고 사지 뭐”
“이봐요 아저씨! 저거 AS는 돼나?” ..........

그 아저씨 그 날 내가 탔던 그 칸에서만 어림잡아 스무 켤레 이상은 팔았다. 다행이다. 조깅할 때 쓸 장갑을 구하려 한 그 부부가 아니었으면 그 아저씨는 단 한 켤레도 못 팔고 허탕을 쳤을 테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참 이상하다. 그냥 장갑 하나 달라고 하면 될 것을 왜 그렇게 ‘장갑을 사는 목적과 배경’에 대해 옆 사람에게 설명하려들었을까?


상황 2 - 수인 산업도로 운행기

아무리 경제적으로 궁핍하더라도 차를 몰고 나가야 하는 급한 일이 있기 마련이다. 그날도 무대 제작에 대해 누군가와 급히 상의해야 할 일이 있어 나의 14년 된, 그래서 다소 창피하지만 무지하게 고마운 내 차를 몰고 급하게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바야흐로 수인 산업도로 초입, 말하자면 인천 대공원 후문을 지나 좌회전을 받아 서서히 속도를 올리던 중에 오른 쪽 차선의 고급 승용차 한 대를 추월하게 되었다. (만나야 할 사람이 시간이 없는 관계로 나는 최대한 빨리 가야 했다) 그런데 오른쪽 후사경을 본 나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목도하게 되었다.

그 고급 승용차가 갑자기 미친 듯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아니 저 아저씨가 갑자기 왜 저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나대로 급한 마음에 속도를 점점 더 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고급 승용차는 내가 속도를 내면 낼수록 더욱더 무서운 질주를 했고 이제 거의 내 차를 따라올 정도가 되었다. 바로 그 때 쯤 나는 전방의 황색 신호등을 보고 서서히 속도를 줄였고 그 차는 내 우측을 바람처럼 지나갔다. 아! 그 차의 아저씨는 황색 신호등을 보고도 정지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매우 가슴 아팠던 것은 그 차가 지나간 바로 그 위에서 ‘신호, 과속 감시 카메라’가 펑 하고 터졌다는 사실이었다. (야간에 터졌던 그 카메라 후레쉬의 순간적 명멸은 의외로 아름다웠다)

그 아저씨는 참 이상하다.
왜 그렇게 속도를 올렸을까? 나 때문이었을까? 그게 도대체 말이 될까?
나는 1차로, 자기는 2차로.. 나와 자기가 무슨 관계가 있다고 6만원에 벌점 15점짜리의 무지막지한 손해를 감수하면서 나를 추월했을까?
만약 나 때문이었다면 정말 미안한 마음에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드리고 싶다.
‘아저씨. 저는 그 날 무지 바빴다구요...’


에그머니나..

그러고 보니 참으로 곤혹스러운 선거일이 코앞이다.
후배 녀석이 누구를 찍을 거냐고 물어보기에 아무도 안 찍을 거라고 했다가 무지몽매한 인간인 동시에 민주주의도 모르고 주권도 모르는 답답한 인종인 것으로 낙인 찍혔으니 누구를 찍긴 찍어야겠는데....

그 아저씨는 왜 나를 추월했을까?
장갑을 왜들 그렇게 급하게, 한꺼번에 샀을까?

/변영국 2007-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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