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 221일째 기고] 우리가 시청광장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이유

 

▲ 지난 8월 7일 용산참사가 발생한 지 200일을 맞은 가운데 봉헌된  '용산참사 해결 촉구를 위한 추모미사'에 참석하고 있는 유족들(사진/고동주)

어제 오늘 내린 비로 무더위도 한풀 꺾인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아침, 밤으로 공기가 서늘해졌다. 한겨울에 시작해서 가을까지 왔으니 사계절을 장례식장에서 다 맞는 셈이다. 장례식장이 집이요, 용산 참사 현장이 일터가 되어버린 유족들에게 이제 하루단위로 날짜를 세는 것은 더 이상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고백하건대, 정말 처음에는 이럴 줄 몰랐다. 망자들을 묻기 위한 산자들의 싸움이 이렇게 길어질지 그 누가 알았겠는가. 제 아무리 후안무치한 정권이라도 최소한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과는 할 줄 알았다. ‘여기 사람이 있다’는 절규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사회적 성찰과 새로운 합의도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까지 드러난 결과만 놓고 보자면 이것은 순진한 생각이었다.

용산 철거민 살인진압은 예고된 참사

역설적이지만, 지금까지 용산 참사가 해결되지 않은 것은 이것이 정권에게 그야말로 치명적인 급소이기 때문이다. 용산 참사에 대해 정권이 책임을 인정하는 순간 그것은 국정 운영 기조 전반의 수정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정부는 작년 11월 ‘경제난국 극복 종합대책’을 통해 부동산 및 건설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대책은 앞서 9월에 발표된 ‘국민 주거안정을 위한 도심공급 활성화 및 보금자리 주택 건설방안’에서 그나마 잠시 언급된 소형주택 및 임대주택 의무 건설 방안마저 무력화한 것이었다. 747 공약으로 집권하고 뉴타운 공약으로 국회 과반을 석권한 정부 여당에게 부동산 및 건설경기 활성화라는 정책방향은 지지기반의 문제와도 연관된 사활적 과제였다.

이제 정부에게 재개발-재건축 사업은 주거환경 개선이나 주거생활의 질 향상이라는 본 취지와 무관하게 오로지 ‘경제살리기’의 한 방편으로 인식될 뿐이었다. 각 지방자치단체는 지역 개발과 세수 증가를 이유로 사업인가와 특혜를 남발했고 건설자본과 투기꾼들도 개발 복마전에 불나방처럼 뛰어들었다. 개발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시공사와 철거용역업체가 선호하는 전면 철거 방식도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게다가 정부는 작년 촛불집회를 경과하며 공안기구를 대폭 강화한 상태였다. 불법 시위 엄단이라는 문구가 빈번히 등장했고, 공권력 투입 과정에서 발생한 우발적 사고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법무부 장관의 든든한 보증서도 일선에 하달됐다. 경제위기 아래 생존의 벼랑에 몰린 민중들의 저항을 미연에 차단하겠다는 공공연한 협박이었다.

대통령 정부 서울시 하나같이 책임 회피 급급해

이처럼 용산 참사는 재개발 관련 법 제도의 모순과 잘못된 정부 정책, 그리고 경찰의 강경진압이 빚은 참혹한 결과였다. 그렇기 때문에 정권은 처음부터 필사적이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생존권을 주장하던 철거민을 불법 도시 테러범으로 낙인 찍은 뒤, 전철연을 와해시키기 위해 표적 수사를 단행하고 범대위가 주최하는 집회를 모두 불허했다.

특히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검찰은 정권의 의중을 충실히 대변했다. 검찰은 혐의 사실을 객관적으로 입증하지 못한 상황에서 철거민들을 기소한 반면, 경찰의 불법 과잉 진압이나 용역업체와의 유착 관계에 대해 전혀 수사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자신들에게 불리한 수사기록을 은닉함으로써 재판을 파행으로 몰아갔다. 공익의 대변자이기를 포기하고 철저히 권력의 시녀로 복무하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다.

검찰은 3천여쪽에 해당하는 용산참사 수사기록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민중의소리 자료사진

두 전직 대통령의 ‘정치적 사망’을 계기로 용산 참사의 해결을 요구하는 여론이 다시 한 번 들끓었지만 정권의 태도는 요지부동이었다. 오히려 청와대는 수사를 진두지휘한 천성관 서울지검장을 검찰총장으로 지명하기도 했으며, 경찰은 대테러훈련 중 하나로 용산 살인진압을 버젓이 재현하며 앞으로 예상될 생존권 투쟁에서 하나의 ‘매뉴얼’로 사용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또 미디어악법을 강행 처리하고 쌍용차 파업에 공권력을 투입함으로써 대화와 타협은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관련 지방자치단체의 태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울시는 용산 참사를 의식한 듯 주거환경개선대책을 발표했지만, ‘재개발 사업을 공공주도로 바꾸겠다’는 선언만 있을 뿐 용산 참사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전혀 내놓지 않고 있다. 참사 직후 철거민 투쟁을 ‘생떼거리’로 매도하여 물의를 빚은 용산구청도 자기들 소관이 아니라며 뒷짐만 지고 있다.

서울광장으로 장례식장 옮길 것

지금까지 정권이 보인 태도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철거민들의 불법 행위이자 사인(私人) 간의 문제이므로 정부 책임은 없다’는 것이다. 이미 ‘철거민 유죄, 경찰 무죄’라는 수사 결과가 발표된 만큼 대통령 사과는 물론 정부가 직접 협상에 나선다는 것은 가당치 않다는 논리다.

그러나 거짓 수사 결과를 법과 원칙이라 강변하며 그 뒤에 숨어서 자신의 책임을 애써 회피하고 있는 정부를 과연 국민의 존엄과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정부라 할 수 있을까. 설령 철거민들에게 실정법상 책임을 묻는다 하더라도, 전직 대통령마저 ‘야만적 처사’로 규정한 ‘경찰의 난폭진압’에 대해 정부가 하등의 책임이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 아닌가. 전직 대통령의 유지(遺志)라 할 수 있는 용산 참사 해결을 외면한 채 국정 화합 운운하며 국민을 기만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어쩌면 정부는 최근 일시적으로 지지율이 반등하고 있는 데 한껏 고무되어 용산 참사를 국민들의 기억 속에서 지울 수 있다고 착각할지 모른다. 유가족과 범대위가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유가족과 범대위는 다시 한 번 장례식장을 거리로 옮기기로 결심했다. 청와대, 정부청사, 서울시청이 한 눈에 보이는 서울광장에 분향소를 차리려고 한다. 그리고 시민들과 함께 고인들을 추모하고 정부 당국에게 조속한 사태 해결을 촉구할 계획이다. 용산 참사 해결 없이 우리 사회의 인권도 민주주의도 없다는 것을 시민들에게 널리 호소할 생각이다.

물론 정부는 지난 달 참사 반년 천구의식 때와 마찬가지로 경찰을 앞세워 우리의 행렬을 원천봉쇄 하려고 할 것이다. 분향소 설치는커녕 추모대회마저 제대로 진행될지도 불투명하다.

9월 한 달, 다시 한 번 힘을 모으자

그렇다면 결국 관건은 시민들의 의지와 힘이다. 이제는 더 이상 물러설 수도, 물러설 곳도 없다는 각오로 추모대회를 진행하고 분향소를 설치해야 한다. 애당초 쉽게 끝날 싸움이 아니었다면 그만큼 우리의 태세도 비상해야 한다. 그리고 9월 한 달 동안 서울광장 분향소를 교두보 삼아 용산 투쟁의 불씨를 다시 한 번 피워 올리자. 서울 도심에서 정부를 압박하고 전국 순회 투쟁으로 전 국민의 힘을 모으자. 그리하여 이번 추석만큼은 유가족이 각자의 가정으로 돌아가 고인들에게 따뜻한 술 한 잔 올릴 수 있도록 하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류주형 (용산범대위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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