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에서 마주친 교회-1]

 

▲사진/한상봉(이 사진의 성당은 기사와 상관이 없습니다-편집자)

세상 속에서 바쁘고 정신없는 일주일을 보낸 신자들은 주일, 하느님 집에서 미사를 드리고 삼삼오오 무리지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친교를 나눈다. 남성 신자들은 성당 마당에서 무리지어 담배를 피우며 환담하고 여성 신자들은 성물방이나 우리농 판매처 등에서 봉사를 하거나 만남의 방에서 음료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들 본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어느 주일이었다. 미사를 마친 나는 만남의 방에서 주보를 읽으며 약속한 교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조금 전까지 성당마당에서 담배를 피우며 담소를 나누던 한 무리의 남성 신자들이 만남의 방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성당의 주요한(?) 직책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었고, 나도 성당에서 여러 활동을 하며 서로 알고 있는 터라 가벼운 목례로 인사를 나누고 다시 주보를 읽고 있었다. 잠시 후 그들끼리 하는 인사말이 들렸다.

“인사하십시오, 이분은 000이고 기획분과장입니다.”
“이분은 지역장입니다. 몇 개 구역을 관할하죠. 구역장보다 위죠, 하하하.”
“구역장이 도지사라면, 분과장은 장관인 거죠. 하하하.”
“이분은 꼬미시움 단장입니다. 꾸리아의 상급단체를 책임지고 있죠.”

주보를 읽던 나는 순간 눈을 돌려 그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바라보았다. 흡사 정관계 인사들이 오찬모임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괜스레 입 안이 쓰다.

언젠가 신문에서 본 기사가 떠오른다. 업무의 효율화와 불필요한 권위주의를 없애기 위해 기업에서도 부장이니 이사니 하는 직함을 없애고 이름 부르기 운동을 하고 있는데, 대표이사나 사장도 예외는 아니라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위계질서 엄격한 사회에서조차 서로의 높낮이를 뛰어 넘어 인간애를 살아보려고 하는 판인데, 스스로 희생과 봉사로 머리를 조아리겠다며 선출된 봉사직들이 웬 직책 운운인지.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서로 사이좋게 도지사, 장관의 직책을 부여하던 그분들은 사제에게까지 세상의 직책을 붙여준다.“우리 본당 신부님은 정말 훌륭한 CEO야.”

헉! 그럼 이곳은 ‘예수 주식회사?’ 당사자인 사제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글쎄, 적어도 내 생각엔 칭찬이 아니라 굴욕이다.

하기야 서로 어떻게 생각하고 인사를 하든, 맡은바 소임만 잘하면 될 걸 공연한 시비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경험하는 한 남성 신자들이 ‘장’인 경우, 대부분 실제 자신이 ‘도지사’나 ‘장관’인줄 안다는 거다.

본당의 자질구레한 일부터 시작해서 거의 모든 일을 여성신자들이 하는 것에 반해, 그들 ‘도지사’와 ‘장관’들은 본당의 문화를 보다 구체적으로 공부하려하거나 고민하지 않는다. 고민하지 않으니 문제제기도 없다. 행사 뒤에 수고했다며 알량한 봉투를 내밀거나 ‘영광’을 챙기는 것이 그들의 몫이다. 본당의 일에 제대로 모르니 ‘있는 게 돈 뿐인’ 그들은 그렇게 직책도 샀는지 모르겠다.

그들은 자신에게 부여된 책임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세상에서 통용되는 방법, 이른바 ‘줄서기’에 익숙한 그들의 문화를 교회 안으로 들여와 교회 안의 보이지 않는 권력에 의지한다. 그저 세속의 관행대로 ‘좋은 게 좋은 거’다. 그러니 무엇이든 ‘사장’, ‘CEO’로 내세운 사제가 하라는 대로 한다. 사제의 판단이 잘못 되었어도 아무 의견도 내지 못한다. 심지어 앞장서 사제의 눈을 가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물론 모든 남성신자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과연 교회는 사람을 섬기는 곳일까, 부리는 곳일까? 남성 중심의 권위적이고 권력지향적인 교회, 그게 지금 내가 느끼는 가톨릭교회다.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