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국의 세상만사 인생사]

성덕대왕 신종의 은은한 소리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신라 천년의 문화와 깊이가 어떤 것인지 절절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상하게 ‘신라’ 하면 경상도 쪽에 세워졌던 나라라는 통념을 갖고 있는데 무열 왕 이후 300년 가까운 세월동안 전국이 ‘신라’였던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무튼 그 신종 소리에 필이 꽂힌 나머지 나는 ‘천년보다 깊은’이라는 제목의 희곡을 썼고 그 희곡을 바탕으로, 전무송 선생님을 비롯한 기라성 같은 연극배우들을 섭외해서 공연을 만들었던 것인데 그 반응이 의외로 괜찮아 적지 않은 지방 순회공연까지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무대에 나도 배우로 섰던 것은 참 자손 대대로 자랑할만한 일이라고 지금도 자부하는 바이다. (단 하나 흠이 있다면 출연진 중 유일한 악역이었다는 것과 캐릭터가 당나라에서 파견된 스님이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사악한데다가 능글맞기까지 한 역할인데 나음대로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조금 창피하다)

일승원음(一乘圓音).... 종소리를 듣는 자의 온 존재를 단번에 부처님 전으로 날라다 주는 소리라는 뜻이다. 성덕대왕 신종의 명문에 들어 있는 이 구절은 말하자면 공연의 화두였던 셈인데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전무송 선생님은 그야말로 완벽한 연기를 통해 그 화두를 관객에게 풀어놓으셨다. 게다가 막과 막 사이 분장실에서 항상 두 손을 모으고 극에 몰입하시는 그 분의 연극에 대한 진지함이라니...
그런데 내가 맡은 배역은 전무송 선생님이 맡으셨던 ‘주종대박사 박부부 대나마’를 다그쳐 빨리 종을 만들라고 독촉하는 ‘경오 국사’ 역이었다. 궁핍한 연기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연기에 몰입하는 대선배의 카리스마에 겨워 땀을 뻘뻘 흘렸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아무튼 고추장으로 유명한 순창에서 있었던 순회공연 때였다.

몇 번이나 종을 지었다 부쉈다 반복하면서 완벽한 쇳물의 배합 비율을 찾느라 고심하고 있는 박부부 대나마에게 거침없이 다가가 매우 징그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느끼한 톤으로 “일이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박부부 대나마” 라고 연기를 시작하는데 관객석 한 쪽에서 어떤 어린애가 갑자기 모닥불을 뒤집어 쓴 것처럼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으앙... 나쁜 아저씨야. 엄마 무서워... 으앙....”
그래도 왕실을 쥐락펴락하는 경오국사가 졸지에 애나 울리는 한심한 땡중으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관객석에서는 웃느라고 난리가 났다.

(이하는 대충 그 때 객석에서 오고간 얘기들을 기억나는 대로 적어본 것이다)
“아따 이 작것아. 연극 구경할 때는 떠드는 것이 아니여.”
“아닌 게 아니라 저 중이 사납게 생기기는 했소”
“애 엄마. 애가 경기 허겄소. 싸게 데리고 나가 기응환을 먹여야 쓰겄소.”
“기응환? 내가 청심환 가진 것은 있는디 이거라도 반쪽 멕여 볼랑가?”
순창의 할머니들은 득음의 경지에 올라 계신 게 분명했다. 800석이 넘는 공연장을 대부분 채웠는데도 그 소리들이 또렷이 들려 지금도 나의 귀에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아무튼 구사일생.. 그 위기를 모면하고 가까스로 다시 관객들을 몰입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극의 중반부, 전무송 선생님의 멋진 대사가 다음과 같이 흐르고 있었다.

“고작 회전(回傳)의 방식으로 주조틀을 만드는데 성공했다고 서푼짜리 혀를 놀려 스스로를 높이려 하느냐? 중생을 계도하는 단 하나, 일승원음..”
이 때였다. 이번에는 객석의 다른 한 곳에서 이런 외침이 들려왔다.
“도끼 자루 썩는 줄 몰랐는갑소. 막차 시간 다 됐당께요.”
“뭣이여? 몇신디?”
“아 벌써 여덟시가 다 됐단 말이요.”
“뭣하요. 싸게 짐 들고 나가장께요.”

아.... 무정한 할머니들이여. 웅성거리며 일어서느라 의자 덜컥거리는 소리가 난무하고 여기 저기 문을 여시느라 철저하게 암전이 지켜져야 하는 공연장이 삽시간에 대낮같이 밝아지면서 마치 모세가 이끄는 일단의 히브리 백성들처럼 그렇게 그 분들은 밖으로 밖으로 나가셨다.


그 날 뒤풀이 자리에서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키신 한 선배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야 영국아. 우리 공연은 그야말로 일승원음이다. 관객들을 대번에 터미널까지 날라다 줬으니... 안 그러냐?”
그런데 이상했다. 마땅히 기분이 나쁘고 화가 났어야 하는데 배우 중에 아무도 그런 사람이 없었다. 기분이 나빠지거나 화를 내기에는 할머니들의 그 단체 행동(?)이 너무나 앙증맞고 거침없었기 때문이었을까?
몇 년이 지나도록 우리는 가끔 그 얘기를 한다. 아주 유쾌하게...

/변영국 2007-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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