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소환정국 123일..‘미완의 투표-관권선거 논란’...전면적 도정쇄신 비전 급선무

        지난 5월부터 4개월 동안 제주를 뜨겁게 달궜던 ‘주민소환투표’가 끝이 났다. 제주해군기지 추진과정에서 드러난 김태환 제주도지사의 정책결정 프로세스에 대한 문제제기에서 시작된 주민투표는 우리나라에선 광역자치단체장에 대한 첫 소환투표란 점에서 제주는 물론, 전국의 이목을 끌었다. 1991년 ‘제주개발특별법’ 제정 이후 가장 큰 갈등으로 기록될 주민투표는 선출직 공무원에 대한 유권자의 ‘직접통제’ 가능성을 실험해 봤다는 민주정치의 긍정성 못지 않게 숱한 갈등과 후유증도 남겼다. <제주의소리>는 주민소환투표 정국이후 제주사회가 나가야 할 과제에 대해 점검하고 도민화합을 위한 새로운 담론을 제시해 본다. /편집자 주

주민소환투표 청구 서명 ‘5만1044명’...주민소환투표 발의...김태환 지사 ‘직무정지’
주민소환 투표율 11%...주민소환투표 ‘불(不)개표’...김태환 지사 ‘직무 복귀’


김태환 제주도지사주민소환운동본부가 지난 5월 6일 기자회견을 통해 김 지사에 대한 주민소환을 선언한 이후 주민소환투표가 막을 내린 8월26일까지 123일 제주는 여름의 폭염이 무색할 정도로 뜨거운 격동의 소환정국을 보냈다. 4개월 사이에 국가적으론 노무현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이 서거하는 대사건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제주의 소환정국의 열기를 넘어서진 못했다. 그만큼 주민소환투표는 제주사회에 전대미문의 극한 상황이었다.

26일 종료된 주민소환투표 결과 주민소환투표법이 정한 개표 하한선인 1/3을 넘지 못한 11%에 그쳐 개표를 하지 못했다. 김 지사 소환에 대한 찬성 반대여부는 확인 못했지만 어쨌든 주민소환은 무산됐다. 8월6일 주민소환투표가 발의되면서 직무 정지당했던 김 지사는 20일만인 26일 저녁 늦게 다시 도지사 직무에 복귀했다. 한동안 중단됐다시피 했던 제주도정은 다시 활기를 띠게 됐다. 하지만 유권자들이 자신을 주민소환투표에 부쳤던 ‘경고메시지’에 답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 ‘주민참여정치’ 첫 시도...무소불위 권력에 대한 ‘주민통제’ 가능성 확인

‘찬성’과 ‘반대’가 아닌, 김 지사의 ‘투표불참’ 전략으로 논쟁의 끝을 보지 못한 채 ‘불개표’라는 어정쩡한 차원에서 주민소환투표가 막을 내렸다. 그러나 이번 주민투표는 ‘주민참여 정치’를 직접 실현해 볼 수 있는 계기를 줬다는 점에서 풀뿌리 민주주의 정착의 가능성을 제주사회에 확인시켰다.

주민의 직접참여가 지방자치법이나 주민소환법 등 각종 법에 많이 망라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활용을 못한 사장된 시스템이었다. 책상 서랍에 있는 이 제도를 제주가 광역자치단체에서 처음으로 작동시켰다는 사실은 이제 제주도민들이 ‘참여정치’의 구체적인 방법을 알기시작했다는 긍정성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특히 선출된 권력이 주민통제에서 벗어나 일방적으로 나갈 경우 언제든지 소환할 수 있다는 행정에 대한 ‘주민통제’ 자심감을 불어넣은 것도 주민투표의 큰 성과로 꼽힌다. 구체적으론 소환투표율이 1/3에 한창 모자라 소환본부가 청구한 김 지사 소환은 ‘무산’ 됐지만, 김 지사를 소환투표에 부침으로서 일방통행 제주도정에 대헤서는 분명한 경고메시지를 보냈다. 결과적으로 소환본부와 김 지사 양쪽에 이번 사태를 되새겨 볼 수 있는 기회를 줬다.

제주대 양영철(행정학과) 교수는 “거의 사문화됐던 ‘주민참여’가 유권자들에게 분명히 각인됐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양 교수는 “또 하나는 선출직 공직자가 주민의 분출되는 욕구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할 경우 이번처럼 주민이 직접 나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제도권의 자성의 필요하다”고 소환투표의 교훈을 강조했다.

# 사회적 비용 불구 ‘결론’ 못내린 점은 큰 부담....관권선거 논란은 새로운 불씨

2000년대 이후 가장 큰 갈등으로 기록될 이번 주민소환투표 찬반운동이 찬반양측의 쏟아낸 역량, 그리고 그 사이에 낀 제주사회가 감당해내야 했던 ‘사회적 비용’에 비해 주민투표에서 나온 ‘결론’이 어정쩡한 점은 진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제주해군기지에서 비롯된 주민소환투표가 정책결정과정에서의 합리성, 주민의견 반영여부, 절차적 정당성 등 본질적 문제에 대해선 논쟁다운 논쟁을 전혀 하지 못했다. 거꾸로 해군기지 사업이 주민소환투표 대상이 되는냐, 그리고 김 지사의 투표불참 전략에 대한 정당성 공방 등 비본질적 논란이 지난 4개월 소환정국을 가득 채웠다. 합리적 토론은 뒤로하고 감성적 대응을 앞세우는 제주사회 불합리성이 이번 주민소환투표 정국에서도 다시 한번 고스란히 노출됐다.

주민소환투표 참여가 11%에 그쳐 주민소환 자체가 무산되긴 했지만, 도민들이 소환자체를 반대했느냐는 확인할 수 없고, 단지 ‘불개표’ 결정에서 비롯된 ‘무산’으로 실제 도민들의 뜻이 어디 있느냐는 여전히 논란거리로 남게 됐다. 투표 결과를 놓고 양측이 아전인수(我田引水) 해석을 할 경우 또 다른 갈등으로 번질 소지를 안고 있다.

주민소환법에 보장돼 있긴 하지만 투표로 선출된 김 지사가 ‘투표불참’을 전략으로 내세운 점은 민주적 제도 틀내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회피’하는 방식으로 사태를 넘어서려해 지역사회 갈등이 여전히 숙제로 남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특히 주민소환투표 찬반운동 과정에서 일부 공직자들의 공공연한 불법적인 ‘투표불참’ 운동, 그리고 26일 투표소 곳곳에서 벌어진 마을이장이나 자생단체장들에 의한 노골적인 ‘투표방해’행위 등 공권력에 의한 관권 투표개입 의혹은 새로운 갈등 요소로 등장할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게 하고 있다. 과거 행정체제개편과 이번 주민투표에서 드러난 것처럼 행정이 자신과 관련된 선거에서는 공무원이 직접나서 자생단체 등을 동원하는 관변선거가 언제까지 반복돼야 하는지, 주민투표가 ‘민의 통제’가 아닌 ‘관의 통제’를 받아야 되는 것인지 주민소환 찬반을 떠나 도민사회가 곱씹어 봐야 할 대목이다.

이와 함께 주민소환법의 맹점이 노출되고, 김 지사가 '투표불참' 전략을 구사하긴 했지만 제주도선거관리위원회가 주민소환 투표참여운동을 적극적으로 벌이지 못한 채 '멍하니' 있었고, 또 일부에서는 관권개입선거로 볼 불법 부정행위들이 잇따랐음에도 불구하고 과거 군사독재정권 치하도 아닌 현실에서 거의 대응을 못했다는 점은 선관위의 오점으로 기록될 법한 일이다.

제주도의회 오영훈 도의원은 “제주도민 입장에서 본다면 이번 소환투표를 계기로 갈등을 다소 해결하고 사회적 통합의 모티브를 제공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했어야 했지만 그렇지 못하게 돼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오 의원은 “특히 이 과정에서 제주도정이 투표불참을 주도함으로 인해 민주적 가치가 일부 훼손되고, 향후 갈등을 조정해 나가는 과정에서 혹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 일방통행 제주도정 ‘전면쇄신’ 불가피...아전인수 해석한다면 제2 소환운동도 배제 못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투표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른만큼 이를 계기로 제주사회가 보다 성숙한 사회로 나가는 ‘아픈만큼 성숙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제주대 하승수(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주민소환이 무산되긴 했지만 김태환 지사의 행정 스타일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고, 상당수 도민들이 여기에 동의했다는 점을 김 지사가 겸허히 수용해야 한다”며 “이번 주민투표를 정책갈등을 풀어나가는 유의미한 경험으로 받아들여야지 그렇지 못한다면 새로운 갈등으로 확산될 뿐”이라며 김 지사의 인식전환을 요구했다.

하 교수는 “만약에 그렇지 않고 투표결과를 ‘부결’이라고 생각하거나 관권선거 개입 의혹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며 “결국은 소환정국에서 제기됐던 문제점들을 수용하려는 획기적인 조치만이 도민사회의 갈등을 푸는 유일한 해법”이라고 조언했다.

오영훈 도의원은 “주민투표는 일방적 관주도 행정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지 못한 김 지사 도정에 대한 경고메시지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도정의 책임자들이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주민의 정서나 의견을 구하는 노력을 좀 더 기울여 달라는 바람을 가져본다”고 말했다.

오 의원은 “김 지사가 지사직에 복귀하면 지금까지 벌어진 일에 대해 면밀한 현실진단을 한 후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비전을 직접 도민사회에 제시해야 한다”며 “도민사회가 받을 수 있는 합리적인 대안이 나오고, 소환본부 등 시민사회 진영이 함께 논의할 수 있는 논의의 장이 마련되면 새로운 해빙모드를 가질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양영철 교수도 “제주도정이 주민소환투표 학습효과를 배워 갈등을 줄여나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투표결과를 아전인수로 해석하려 한다면 제2, 제3의 주민소환운동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을 할 수 없다”며 “특히 소환정국 이후 갈등을 봉합하고, 주민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시스템을 다룰 갈등해결조정위원회 설치 방안 등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기사제공/제주의소리>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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