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모니터링 자료는 8월 23일자 2661호 <가톨릭신문>과 1032호 <평화신문>

흘러간 이야기가 아니라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청산하지 못한 역사 중의 하나가 일본의 한국지배시절 이야기다. 이른바 우리민족이 남의 민족에게 식민지로 살았던 치욕의 기간이 있었다. 36년간 있었던 역사의 뒤안길을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있을까 만은 그 중에서도 식민기간동안 민족을 배반한 친일행위자들에 대한 규명은 정부수립 60여년이 지나도록 요원한 실정이다.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작년에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할 대상자를 발표하자 천주교회는 물론이고 이해당사자들의 날카로운 반응을 보면서 필자는 졸서 <깨물지 못한 혀>(우리신학연구소)를 발행한 적도 있다. 그러나 아직도 이런저런 이유로 친일인명사전의 발간은 늦추어지고 있으며 일반인의 관심도 멀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민족의 광복절을 즈음한 교계신문의 8월 16일자에서는 이와 관련한 유의미한 기사는 없었지만 이번 주 8월 23일자 <평화신문>은 좋은 기사를 발굴하여 보도하였다. <평화신문>은 국가보훈처가 제64주년 광복절을 계기로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에 소장된 만주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에 대한 거주제한 처분 보고서인 「만주지역 본방인 재류금지 관계 잡건」을 수집·번역하여 발간한 자료집을 보도하였다.

자료집에 의하면 ‘대한의민단’ 활동 등을 비롯한 1920년대 만주 간도의 천주교인들이 무장 항일활동을 전개한 사실을 알 수 있다. <평화신문>은 이 내용을 바탕으로 3면 ‘간도 천주교, 항일 무장투쟁’ · 5면 ‘독립군 군자금 모금에 깊숙이 관여’ 각 4단의 기사를 실었으며, 2면 사설에서 ‘천주교 항일운동 역사 재평가해야’로 의미를 부여했다.

문서정보적인 측면에서 귀한 사료가 발굴되었음을 기뻐한다. 아울러 그것을 바탕으로 관련 학자들의 연구가 병행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뻐할 일이다. 그러나 <평화신문> 스스로가 지적했듯이 대한의민단 독립운동은 윤선자(전남대)교수의 연구와 논문-조금 더 친절하게 윤교수 논문의 출전을 소개해주었다면 아쉬움이 있지만-을 통해 이미 밝혀 놓은 사실이라고 했다. <평화신문>은 사설을 통해 “관련 연구논문이 사장되어 있으며, 지금이라도 항일운동의 사료를 발굴, 재평가해서 후손에게 떳떳한 역사를 물려줘야 한다.”고 했다. 백번 천번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일제 식민지 시절 한국천주교회 앞에 놓여 있는 걸림돌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다.


올해 들어 교회의 두 어른이 우리 곁을 떠났다. 한 분은 김수환 추기경이고, 또 한 분은 최석우 몬시뇰이다. 고 김수환 추기경이 지난 2004년 안중근의사 추모미사에서 했던 말을 상기한다.

“일제치하 당시 한국교회를 대표하던 어른들이 안중근 의사의 의거에 대해 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그릇된 판단을 내림으로써 여러 가지 과오를 범한데 대해 저를 비롯한 우리 모두가 연대적인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또한 일제 당시의 제도교회가 올바르게 하느님의 백성을 인도했다고 보기 힘든, 한국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친일적인 행위가 있었음을 한국가톨릭교회를 대표하는 한 사람으로서 마음 아파합니다. …

그리스도 신비체 안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과거에나 현재에나 한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분의 지체인 지역교회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역사를 통해 그 과오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싫던 좋던 지고 온 과거의 짐을 청산하는 자리가 앞으로도 더 많이 주어져 우리 모두가 흔쾌히 참회할 수 있는 시간이 있기를 기대하며 저의 오늘 강론으로써 참회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그런가하면 한국교회사연구소는 지난 1994년 ‘일제하 한국천주교회의 민족운동’이란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하였고 여기서 발표된 논문을 「교회사 연구」제11집(1996년)에 수록하였다. 이때 고 최석우 몬시뇰은 ‘일제하 한국천주교회의 독립운동’이란 논문에서 이번에 보도한 ‘방우룡, 김인군 등을 비롯한 단원 전체가 천주교도로 구성된 의민단도 있었다.’는 것을 이미 밝힌 바 있다.(위 책 52쪽) 그는 이어 맺음말에서 “그러나 평신도들의 항일운동에 대해 교회 당국은 ‘안악사건’의 안명근을 일제 당국에 고발하고, ‘105인사건’의 이기당을 파문시켜 교회에서 제적시키는 등의 강경한 조치를 취하였다.…상해 임시정부의 수립과 함께 천주교회 내에서 독립운동이 다시 활기를 띠었다. 특히 윤예원 신부는 임시 정부와 연락을 취하며 신자들이 독립운동에 참여하도록 권고하고 지도하였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윤예원 신부는 교회 당국으로부터 독립운동을 하려면 사제직을 버리라는 강요를 받음으로써 결국 독립운동을 중단하고 말았다.… 비록 (교회의 판단이) 교회를 정치적 혼란에서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 할지라도 적어도 사목적인 견지에서는 신자들의 독립의 염원을 이해하고 그들의 민족적인 아픔을 외면하지 말아야 했다.”고 말했다.(위 책 57-58쪽)

바로 내년이 경술국치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민족의 치욕 앞에서 교회가 했던 일, 교인이 했던 일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한 목소리로 하느님 앞에 드러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예전부터 있었던 항일운동 자료하나에 갑자기 천주교회가 항일운동의 거점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예전부터 있었던 수많은 친일자료 앞에 교회는 거듭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해마다 맞이하는 민족의 광복절 앞에 교회 구성원 모두는 역사와 항일운동 선열들에게 사죄해야 한다. 길을 재촉해 우리 곁을 떠난 교회의 두 어른이 했던 말은 “역사 앞에 미안해하라”는 말이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경술국치일은 8월 29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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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철(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위원, 경남민언련 이사,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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