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 신부] 11월 29일(대림 제1주일) 이사 63,16ㄹ-17.19ㄷㄹ; 64,2ㄴ-7; 1코린 1,3-9; 마르 13,33-37

오늘부터 격주 목요일마다 서울대교구 이주형 신부의 강론을 연재합니다. 강론을 맡아 주신 이주형 신부에게 감사드립니다. -편집자 

 

“우리는 이러한 희망을 가지고 있기에 아주 담대히 행동합니다.”(2코린 3,12)

 

여러분에게 소중한 것은 무엇입니까?

* 나 : “가끔 하늘나라로 먼저 간 그 친구가 생각이 나. 참 좋은 친구였는데.”

* 그 : “새삼 죽음이 멀리 있는 거 같지 않네. 잘 살아야지.... 떠난 사람 몫까지도....”

 

전례력으로 새해 첫날인 대림 첫 주부터 죽음에 대한 이야길 꺼내 멋쩍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은 알 수 없는 날에 닥쳐 올 종말에 대비해 깨어 있으라는 예수님 말씀입니다.(마르 13,33-37) 예로부터 ‘종말’(τά ἔσχατα, 타 에스카타, 마지막 때)의 대표적 상징은 죽음과 심판이었습니다. 종말은 분명 무섭고 난해하며 받아들이기 어려운 표현입니다. 옛날에는 종말을 죽음과 심판, 상선벌악을 중심으로 해석했습니다. 하지만 종말에 녹아 있는 근본 바탕은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이가 참으로 평화롭게 살고 회심하기를 바라는 간절함’입니다. 그런데 그가 순간 잠들고, 도둑이 들어 소중한 것을 훔쳐 가고 후회하는 것을 하느님께서 바라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 소중한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겪는 아픔들이 평화로 가는 길이 될 수 있을까?”

낙엽과 함께 걷다 보니 한 해도 다 저물었구나 싶습니다. 채 끝나지 않은 팬데믹 사태로 삶의 고단함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낯설었던 한 해였지만 흘러가는 세월이 익숙합니다. 그러나 깨어서 잘 살고 있는지 저 스스로 부끄럽습니다. (저에게는 회개와 반성이 필요합니다. ㅠㅠ) 한 해의 끝에서 약함과 잘못을 고백할 따름입니다.

점점 더 각박해지는 사회 현실도 녹록치 않습니다. 어렵고 힘든 처지에 계신 이웃들을 마주할 때 더 부끄럽습니다.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잔잔하고 감동적인 경구입니다. 이사야서에 나오는 새끼 양과 늑대가 함께 어울리는 목가적 풍경이 생각납니다.(이사 11,1-10) 하지만 외로움, 슬픔과 아픔, 눈물, 억울함, 두려움, 미움과 분노가 세상 곳곳에 있습니다. 어떻게 어려움을 이겨내야 할지 또 희망을 나누어야 할지 고민입니다. 그러나 힘들고 어렵더라도 함께 길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그걸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길, 그것은 인생을 잘 표현한다.

우리가 걷고자 할 때
그 의지와 뜻을 통해
없던 길이 만들어지고
길이 시작되며
걷는 이의 길이 된다.

삶도 그러하지 않을까.
그래서 길은 희망인가 보다.

다만 함께 걷는 이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2018.7. ⓒ이주형

 

낯선 길 위에서 하느님과 친구를 찾아

“낯선 아침 언제나 새로운 길이 펼쳐졌습니다.

들숨이 막히고 날숨은 술술 샜습니다....

끝이 어디인지 모르는 길이지만 문득 당신을 떠올렸습니다.

길을 잃어도 당신이 있음을 압니다.”

- 백상현, "길을 잃어도 당신이었다" 중

 

길과 삶은 참 닮았습니다. 힘들 때 함께 가는 벗이 있다면 참으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길은 걸어야 하고, 우리를 어딘가로 인도할 것입니다. 그 도상에서 종말, 죽음, 삶의 고단함은 여전히 두렵게 느껴집니다. 우리는 약합니다. 또 삶의 어려움은 더 많은 수고와 희생을 요구할지도 모릅니다. 나뿐만이 아니라 이웃과 형제들, 세상의 아픔을 위해서 말입니다. 우리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행과 자선, 형제적 사랑과 관심이 우리 삶이 되면 하느님께서 얼마나 좋아하실까요? 어쨌든 길을 걷듯 삶을 살아야 하고 서로 손을 잡아야 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더불어 핵심은 이것입니다.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우리 여정 중에 함께하시는 그분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그분은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위해 온 산을 찾아 헤매는 분이십니다.(루카 15,4) 우리 깨어 있음의 대상은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참으로 소중한 것은 친구, 사람, 사랑과 희망, 믿음, 하느님입니다. 깨어서 하느님을 찾고, 친구의 손을 잡을 때 우리가 겪는 아픔도 평화와 희망을 위한 디딤돌이 됩니다. 이제 비로소 종말은 기쁨의 잔치가 됩니다.(마태 22,2-14) 서로 기도해 주고 축복해 줍시다. 도우심을 청하고 그렇게 되길 희망합시다.

 

*나 : “지금의 이 어려움들을 어떻게 이겨내야 할까.... 참 막막해.”

*그 : “포기하지 말자. 희망을 갖고 서로 도우면서, 의지하면서. 함께 기도하면서.”

 

이주형 신부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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