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성장 논의에 종교와 시민사회가 답하다; 제2차 오이코스 포럼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탄소배출을 줄이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성장과 효율 패러다임을 성찰해 ‘탈성장’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우리 사회에서 아직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삶의 습관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하는 탓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과연 탈성장이 가능하냐는 회의적 시각도 만만찮다. 그러나 코로나19 위기에서 많은 이가 성찰하듯이, 더는 발전과 성장을 향해 갈 수만은 없다. 끝이 있다는 것, 멈춰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지난해에 이어 탈성장 사회로 전환하기 위한 종교와 시민사회의 역할을 모색하는 2차 오이코스 포럼이 열렸다. 포럼은 24일 국제기후종교시민(ICE) 네트워크가 온라인으로 진행했으며, 주제는 ‘우리가 그리는 탈성장 사회’로 삼았다. 1차 포럼은 2019년에 있었다.

'오이코스'는 '사는 곳'이라는 뜻의 그리스어로 공동의 집인 지구에서 함께 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탈성장에 관한 2차 오이코스 포럼 포스터. (이미지 제공 = 국제기후종교시민 네트워크)

기조 강연을 맡은 국제기후종교시민(ICE)네트워크 이정배 상임대표는 코로나19가 (자본주의적 성장을) 멈추지 않으면 안 되는 구체적 이유와 당위성을 말해 주고 있다며, 탈성장은 인류의 미래를 가능하게 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시점에서 종교의 할 일은 각 종교의 언어로 탈성장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인간 중심에서 벗어나 자연과 공존하는 '탈인간', 서구의 잣대에 맞춰 우리를 이해하는 것에서 벗어나는 '탈서구', 제도종교와 결별하자는 의미의 '탈종교'를 탈성장을 위한 전제로 들었다. 특히 그는 “제도로서 종교, 성직자를 위한 종교를 이제 그칠 때”라며, “예배와 일상을, 하느님과 인간을, 인간과 자연을 분리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독일 뮌헨공대 박사과정을 마친 강이현 씨가 “The Case of Degrowth”의 내용을 중심으로 탈성장 운동의 동향과 과제를 설명했다. “The Case of Degrowth”는 강 씨가 번역한 “탈성장개념어 사전”의 저자들이 지난 9월 말에 낸 책이다.(아직 한국에는 출간되지 않았다.)

그는 탈성장은 하나의 운동이 아니라 다양한 운동을 포괄한다며, 그 가운데 석탄 투자 철회 운동, 탈성장이 젠더 정의를 위해 어떻게 이행될 수 있는지를 논의하는 페미니스트와 탈성장 연맹(FADA), 돌봄 노동에 임금을 주자는 국제 돌봄 임금 운동(Global Woman’s strike) 등을 소개했다.

이어 탈성장 이론의 한 축인 “도넛 경제학”을 소개했다. 도넛 경제 모델은 케이트 레이워스가 제시한 것으로 성장 위주가 아닌 다른 경제학을 추구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도넛 안쪽의 첫 번째 원은 인간의 존엄을 지켜 주는 물, 식량, 보건, 교육, 에너지, 주거, 성 평등 등이 자리한다. 밖의 두 번째 원에는 오존층 파괴, 기후 변화, 해양 산성화, 대기 오염 등 환경 위기가 있다. 이 원이 안쪽으로 줄면 사회적 기초가 부족해 위험하고, 바깥으로 커지면 생태적 한계의 위기가 온다. 그러므로 원 안에서 안전하고 정의롭게 살려면 균형을 찾아야 한다. 

도넛 경제 모델. (이미지 출처 = wikimedia.org)

또한 탈성장을 위한 5가지 과제로 ‘성장 없는 그린 뉴딜’, ‘기본소득과 기본 서비스’, 물, 에너지, 폐기물 처리, 교통, 교육, 보건, 보육 등은 사기업이 아닌 공기업 혹은 협동조합으로 운영하는 등 자원을 공유하는 유기적 시스템을 위한 ‘공유물 확보 정책’, ‘노동시간 단축’, ‘탄소세, 오염세, 보조금 지원 등으로 탈성장 공공 재정 마련’을 들었다.

강이현 씨는 기본소득에 대한 반론으로 늘 재정 확보 문제를 든다며, “영국 GDP의 2.3퍼센트를 투자하면, 교통, 식품, 인터넷 연결, 주거가 보장 가능하다”는 영국 세계번영연구소의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끝으로 그는 한국의 탈성장 과제로, “많은 세계가 공존하는 세계”로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며, “다양한 삶의 형태가 창출되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탈성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종교계와 시민사회가 보는 탈성장 논의가 계속됐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사랑교회 안성영 목사는 교회의 탈성장, 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코로나의 영향으로 교회의 본래 역할에 다가간 사례를 설명했다.

그는 교회가 과거의 방식과 태도를 버려야 하고, 그러려면 성장주의에 대한 죄를 고백하고, 교회 중심주의를 탈피하며, 물질 중심에서 영혼 중심으로 옮겨 가고, 배타성에서 포용으로 자세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이어 그는 코로나로 양극화가 심화되고 차별과 혐오가 만연하면서 교회의 역할(본모습)이 더 요구된다며, 코로나의 영향으로 교회가 시민 속으로 혹은 지역 속에 들어가는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안 목사의 교회는 어린이 도서관과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는데, 코로나로 공공도서관이 문을 닫자, ‘하루 한 가족 도서관’, ‘그림책 읽는 벤치’(도서관 안은 이용할 수 없으니 밖의 벤치에서 책 읽기), ‘어르신을 위한 그림책 향기’, ‘온라인 절기 프로그램’ 등을 이어 나갔다고 소개했다. 

아동센터에서도 확진자 가정, 격리 가정, 실직 가정에 밑반찬을 나누고, 유기농 식자재, 학업 격려비, 퇴소 청소년 기본소득을 지원했다. 안 목사는 그 결과 유례없이 동네 회원이 늘었고, 더 긴밀한 연결감이 생겼다고 했다.

한국교원대 윤리학과 박병기 교수는 불교 윤리 관점에서 탈성장을 이야기했다. 그는 탈성장이 “경제적 과제이면서 동시에 윤리적 과제”라고 했다. 자본주의 경제의 본질인 성장에서 벗어나고 형용모순처럼 보여 경제적 차원보다는 윤리적 차원이 부각된다는 것이다. 

그는 탈성장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냐는 절망과 좌절의 반응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봐야 한다며, "탈성장이 필요한지 알면서도 실제로는 하지 못하는 원인을 분석하는 과정에 과장하거나 축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처한 위기의 핵심은 그 위기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면서도 마치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거나 말하는 것”이라며, "자본주의적 성장의 종말은 미세먼지와 기후위기, 세계적 감염병 사태 등으로 이미 우리 몸과 마음에 다가왔지만 여전히 그것이 우리 일상과 소비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거나 믿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천주교에서는 예수회 조현철 신부가 나섰다. 그는 탈성장을 말하면 대안이 없다는 무력감에 자주 빠진다며, 현재 상황이 나쁘지만, 그 대안인 탈성장이 더 나쁘리라고 생각하는 딜레마 상황에서, "상상력과 자율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수회 조현철 신부는 탈성장의 가능성을 따지기보다는 탈성장을 상상할 자유가 있는지 먼저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조 신부는 우리가 무한한 팽창, 끝없는 편리 등에 빠져 다른 것을 상상할 능력을 잃었다며, 탈성장을 위해서는 실현 가능성이 아니라 상상할 자유가 있는지 먼저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탈성장의 가능성부터 따지면 시작도 못 하고 대안이 없다는 주술에 걸린다고 했다. 그러니 새로움을 상상하고 분명하게 제시할 만큼 자유로운지 물어야 하고, 탈성장은 다양한 모습을 가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원불교 사직교당 박명은 교무는 “덜 개발하고 덜 만들고 덜 쓰자”는 '3덜 운동'을 제안하며, 너무 많이 개발하니 생태계에 문제가 생기고, 너무 많이 만드니 공산품이 넘쳐나 낭비가 심해지고, 인류는 자연의 재앙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기후위기비상행동 김현우 집행위원은 기후위기 대응에서 탈성장을 현실화하기 위한 방안을 설명했다. 그는 코로나 사태에서 일시적으로 온실가스 배출이 줄었지만, 구조적이고 지속적인 배출 감소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코로나 위기가 에너지와 경제 전환이 아닌 ‘재난 자본주의’로 귀결될 수 있다는 캐나다의 사회운동가 나오미 클라인의 지적을 인용했다. 그는 코로나19의 위기가 전환의 힌트를 주기는 하지만, 변화로 연결되지 않는다며, "탈성장 의제를 전면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탈성장을 위해 실제로 무엇이 필요하고, 만들 것인지 전면적으로 이야기해야 한다면서, "온실가스 감축 계획, 국가 에너지 기본계획, 산업발전 전략, 중기 재정계획, 국가 복지계획 등을 통합한 ‘참여적 계획경제’, 개인과 집단이 시장에 의존하는 것에서 벗어나 ‘자립과 살림 및 돌봄의 영역 확대와 일상화’, 이를 담보하는 관계와 과정으로서 ‘연대와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후위기 상황에서 “논리적 타협이나 정치적 거래로 위기를 탈출할 수 없으며”, “탈성장과 전환이 시민 사이 그리고 공식적 담론 공간에서도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토론자로 나선 한국YWCA연합회 이윤숙 부장은 탈성장에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조현철 신부의 말에 동감하며, 이런 상상력은 이론이나 담론이 아닌 고난의 자리에서 나온다고 했다. 그는 택배 노동자의 과로, 20대 여성의 자살 증가, 자본시장에서 가치 절하되는 여성의 노동, 특히 사회적으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돌봄 노동 등을 말하며 탈성장에 성 평등의 가치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했다.

ICE네트워크 최선형 정책기획위원은 탈성장을 이야기할 때 가장 피하고 싶은 문제가 실업이라며, 노동시간 단축을 탈성장의 과제로 들지만, 노동시간이 줄면 대다수의 노동자는 수입이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특히 최저 생계비를 받는 청년과 사회 초년생에게는 타격이 클 것이므로,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서는 반드시 기본소득 논의가 같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원생이기도 한 최 위원은 요즘 한국 청년에게 비거니즘 같은 가치를 소비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고 지적하고, "환경을 위한다고 해도 제품을 구입하는 것은 석유로 만든 또 다른 제품을 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녹색연합 황인철 기후에너지 팀장은 어떻게 하면 대중이 탈성장을 공감할지에 관한 고민이 있다며, 윤리적 당위성 때문이 아니라 탈성장이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한다는 것을 부각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또 탈성장이 자본이나 기업이 이용하기 편한 담론이 되지 않도록 불평등 문제와 함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오이코스 포럼은 ICE 네트워크가 주관하고,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예수회 JPIC, 우리신학연구소, 원불교환경연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 JPIC, 한국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JPIC 분과위원회, 현장아카데미가 주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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