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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수정!서로 다른 기억에 관하여

사람들은 동일한 장소와 시간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르게 체험하고 서로 다른 기억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래서 지난 일을 이야기할 때 서로 다른 기억을 꺼내 놓으며 당황스러워 하고 오해하기가 일쑤다. 홍상수 감독은 ‘오! 수정’에서 한 여자(수정)와 한 남자(재훈)가 동일한 장소에서 겪은 일을 다르게 기억하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그리하여 오해가 생기고 둘 사이가 소원해진다. 지난 일들에 대한 기억을 고통스럽고 다르게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 울 엄니도 포함된다. 나도 그런 점에서 예외가 아니다.

엄니와 이모(엄니의 언니)는 자매임에도 부모님(나의 외할버지와 외할머니)과 친정집에 대해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다. 삼 년 전 겨울, 우리 부부는 엄니와 친정 언니를 모시고 이모가 계신 전주를 방문했다. 엄니와 세 살 위인 이모는 최근 얼굴을 자주 보지 못했다. 두 분 다 연세가 많으시고 엄니(당시 연세가 86살)는 서울에 살고, 이모(89살)는 전주에 살기 때문에 자식들이 자리를 마련해 주지 않으면 서로 만날 수 없었다. 그날 엄니와 이모는 다정하게 웃으며 손을 맞잡고 노래를 불렀다. 마치 어린아이가 된 듯이 해맑은 미소를 띠며. 노래가 끝나고 자연스럽게 친정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한데 같은 부모님과 친정집에서 겪은 것들에 대한 서로 상반된 기억의 실타래가 풀려나왔다. 

이모는 친정아버지가 일제 강점기 때 딸이 정신대로 끌려갈까 봐 급한 마음에 사윗감에 대해 잘 알아보지도 않고 무조건 결혼을 시켜서 남편과 시집 식구 때문에 평생 고생하셨다. 그럼에도 부모와 친정집에 대해 자부심과 좋은 기억을 간직하며 당신 자식들에게 외갓집을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키웠다. 그 만남의 자리에 있었던 사촌들도 외갓집을 떠올리면 그립고 자부심을 느낀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모는 고된 시집살이에 대해서도 자식들에게 불평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야말로 이모는 긍정의 여신이다.

엄니(오른쪽)와 이모(왼쪽)가 참으로 오랜만에 만나셨다. 엄니가 저렇게 호탕하게 웃으시는 모습을 보니 참 좋다. 두 분은 여자로서 결혼하기 전이나 후나 한평생 가부장적 사회에서 마음 고생, 몸 고생하며 살았다. 엄니는 당시 사회의 수혜자인 남편과 시집 식구들로 인해 한이 맺혀 명치 끝에 돌덩이가 박혀 있다고 나에게 종종 말한다. ©최금자

반면 엄니는 ‘친정집에 뭐 볼 것이 있냐?’고 이모에게 따지듯이 말했다. 어릴 적부터 엄니는 당신 자식들에게, 특히 나에게 명당리 친정에 대한 안 좋은 기억들을 이야기했다. 지적 호기심이 많았던 울 엄니는 단지 딸이라는 이유 때문에 아버지로부터 교육의 기회를 박탈했다. 아버지는 어떤 방법으로든 그것을 성취하려던 엄니를 강력하게 저지해서 좌절하게 만들었다. 어머니는 아버지 몰래 지식을 얻고자 하는 딸에게 종종 폭력을 휘두르던 남편으로부터 어린 딸을 보호하지 못한 너무도 약한 여자였다. 엄니는 이런 체험들과 기억들 때문에 친정집 전체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계셨다. 

두 자매의 친정집에 대한 기억은 서로 상반된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친정에 대한 한 점의 티도 발견하지 않는 이모의 기억은 극단적으로 긍정적 지점에, 친정에서 체험한 사건들로 인해 깊은 상처를 받은 엄니의 기억은 이모와 반대로 또 다른 극단을 가리키는 부정적 지점에 안착했다.

나와 다섯 살 손위 언니는 엄니와 이모와는 다르게 부모와 친정에 대한 공통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다만 기억들을 간직하는 방식에서는 차이가 있다. 우리는 20대까지의 일들, 특별히 엄니와 관계에서 겪은 가슴 아픈 사연들을 같이 기억하고 있다. 엄니로부터 잘하는 것에 대한 격려와 칭찬은커녕 부족한 점에 대한 지적을 수시로 받고 자란 탓에 내가 진행하던 일들이 잘 안 풀릴 때 내 자존감은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나는 나도 모르게 고통스럽고 부정적인 체험들을 내 몸과 마음에 차곡차곡 세세하게 쌓아 두고 오랫동안 살았다. 어느 날 망가진 내 모습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면서 내 삶의 역사가 내 얼굴과 몸에 각인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힘겨웠지만 나는 아토피적 심리 반응을 걷어내는 작업을 했다. 손아귀에 움켜진 것이 많아 손을 펼 수 없는 부자처럼, 나 또한 지난 상처들을 움켜쥐고 손을 펴지 못한 채로 괴로워하고 있었던 거였다. 

나는(오른쪽) 언니(왼쪽)를 ‘작은 엄마’로 부른다. 아버지와 함께 장사하셨던 엄니 대신 어린 나를 키웠기에. 언니는 미혼이었을 때는 집안일로 노동을 엄청 많이 했고, 결혼 뒤에는 남편 건사하고 자식 키우느라 몸과 마음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지인들은 이런 언니 속도 모르고 ‘평생 고생 안 하고 곱게 산 사람 같다’고 말한다. 내가 “동생인 나보다 언니가 더 젊어 보인다”고 하자, 언니는 “넌 몸이 많이 아파서 그런 거야” 하며 나를 위로한다. ©최금자

반면, 언니는 그 일들의 세부 내용을 종종 기억하지 못한다. 어린 나이에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는데도 엄니에게서 지적만 당해 상처를 많이 받았다. 엄니로부터 받았던 상처들, 아버지와 관계에서 겪었던 좋은 추억들에 대해 언니와 이야기하다 보면, 나는 자세히 기억하는데, 언니는 상처받은 기억은 있지만 뭣 때문인지 잘 모를 때가 있다. 언니는 기질상 겁이 많고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고통스러운 일들은 잊어버리거나 뭉뚱그려 기억한다. 일명 ‘선택적 기억상실증’을 통해 살아남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두 쌍의 자매간 관계에서 돌아볼 점들이 있다. 엄니는 자신의 지적 호기심을 채울 수 있는 학교교육을 받았더라면, 자신이 스스로 삶을 선택할 수 있었더라면 울 아버지를 남편으로 만나지 않았을 거고 사회적으로 성공하여 장관을 하고도 남았을 것이라며 지금도 안타까워하신다. 나도 한때 엄니가 나를 긍정적으로 키웠더라면 ‘지금보다 더 잘 나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언니의 ‘선택적 기억상실증’이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일들을 원점으로 되돌릴 수 없기에 나는 그것을 재해석하여 부정적인 것은 그대로 인정하고, 부정 속에서도 긍정성을 이끌어 내려고 노력한다. 

젊어서는 남편이 어려워 마주보고는 눈 한 번 흘기지 못했을 엄니. 엄니는 나이 들어서는, ‘니 애비와 친가 식구 때문에 내 몸과 마음이 다 부서졌다’ 하면서, 아버지 뒤통수에 대고 험한 말을 하셨다. 엄니와 아버지가 다정하게 손 잡고 포즈를 취하는 경우가 드문데, 외손녀 가족을 따라 여행을 갔다가 찍은 사진은 그래서 참 귀하다. ©최금자

엄니와 이모의 지난 기억들 중에서 누구의 기억이 사실에 더 가까운 가를 따질 수 없다. 홍상수 감독은 나에게 인간의 기억에 대한 진실성을 따지고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는 자체가 어리석다고 말한다. 다만 극단의 기억들은 사실에 다가가는 데 장애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사건이나, 사실을 온전하게 전면적으로 다 체험할 수 없기에 한계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에게도 너에게도 사실의 부분들이 있음을, 사건의 다른 면을 보고 체험함을 인정해야 한다.

최금자(엘리사벳) 
주일학교 교리교사를 시작으로 40년 동안 청소년들과 희로애락을 나누고 있다. 2016년에 귀촌하여 본죽리에 살고 있다. 인생의 동반자 베드로와 함께 2010년부터 6년 동안 인천에서 무료 붙박이 ‘어린이 카페 까사미아’를 열었다. 70대 이전에 ‘무빙 까사미아’를 열어 청소년들과 함께 길 위(한반도-아시아-유럽)에서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며 삶을 나누고자 한다. 현재 (아)줌마들과 수다로 각자의 일상을 나누며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모색 중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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