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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인일기[변영국의 세상만사 인생사]

나는 담배를 피운다.

뭐 골초까지는 아니더라도 담배 한 갑이 이틀을 못가는 것을 보면 나름대로 애연가의 범주에 드는 것이 맞는 듯 하다. 게다가 컴퓨터 앞에서 머리를 쥐어짜며 뭔가를 써야 할 때 특히 끽연의 분량이 꽤 늘어나는 것이 사실이고 보면 중독이 분명하기도 하다.

헌데 문제는 담배에 중독 되기는 했지만 반사회성 인격 장애 환자도 아니고 금치산자도 아닌데, 경우에 따라서는 그보다 더 혹독한 취급을 받는다는 것이다.

물론 담배를 피우는 것이야말로 ‘반사회적’인 것이며 ‘치산은커녕 수신조차 못하는’ 하등한 인간의 특징이라고 얘기하려는 분에게는 삼가 고개를 숙이고 절절히 사과하는 바이다. 그러니 그런 분들도 그저 ‘광인일기’를 읽는다 생각하시고 너그럽게 읽어주시기 바란다.


‘중년’에 접어들어 한 가정의 가장이 된 바, 나 역시 이런저런 크고 작은 부부 모임에 참석하곤 한다. 그리고 그 모임은 보통 돌아가면서 각 부부의 집에서 갖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가장 곤혹스러운 것이 바로 담배 피우는 문제이다. 다른 모임이라면 모르겠지만 술이라도 한 잔 하는 모임에서 몇 순배 술잔이 돌고 나면 당연히 담배를 하나 피우고 이 얘기 저 애기하면서 ‘쉬는’ 법인데, 담배 어쩌고 했다간 야만인이라는 둥, 가족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둥 별별 얘기를 다 듣기 마련이어서, 술 마시는 템포가 유난히 빠른 나는 ‘쉴 틈 없이’ 입에 술을 들이 붓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내가 왜 술을 마시고 있는지 의아스러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경우를 당하여 여 보란 듯이 담배를 꼬나물고 끽연의 즐거움을 온 몸으로 만끽하며 기꺼운 릴랙스의 짜릿함으로 전율하는 경우가 더러 있으니 바로 ‘담배피우는 신부님과의 동석’이 그것이다. 아 신부님... 사랑하는 신부님...

(이 자리를 빌어 우리 교구의 J신부님, H신부님, L신부님 등등 수많은 신부님께 감사하는 바이다. 이건 절대로 진심이다)

평상시에 내가 담배를 꺼내려는 눈치가 보이면 주저 없이 ‘베란다도 안돼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일층으로 내려가 피우고 와요. 도대체 뭐하는 거예요’ 어쩌고 하면서 그 예쁘고도 사랑스러운 눈빛을 버리고, 아프칸 반군의 적개심 가득 찬 눈빛으로 중무장하던 나의 아내도, 손가락만 들지 않았지 거의 행려병자 바라보는 시선으로 혀를 끌끌 차며 연민의 시선을 보내던 수다한 자매님들도 위에 열거한 나의 사랑하는 신부님께서 담배를 꺼내자마자 재떨이를 찾느라 분주한 것을 보면 이것은 기적이 분명하다. 그리고 나는 그 기적에 편승해 유유히 신부님의 재떨이에 담배를 털고, 그런 나를 신부님은 유난히 예뻐하신다. (사실 그럴 때 나를 바라보는 신부님의 눈길이 공범의식인지 아니면 동지적 전우애인지 모를 친밀감으로 빛나시는 것을 보면 간혹 신부님도 담배 피우는 사람이 당할 법한 곤혹스러움을 이미 당하셨는지 모를 일이다)


아... 돌 맞을 진저.... 시대를 역행하여 끽연자의 분수를 격상하려는 자여....

담배가 건강에 매우 좋지 않다는 것은 이미 수많은 의사들이 귀에 더께가 앉도록 얘기 했으니 나도 알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내 아내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믿어줬으면 좋겠다.

2002년 월드컵에서 우리가 스페인에게 승부차기로 짜릿한 승리를 거두었을 때 시청 앞을 비롯해 이 곳 저곳에서 거리응원을 한 사람들이 1000만을 넘었다 한다. 나 역시 테레비전 앞에서 응원을 했었다. 그러나 1000만이 넘었다는 얘기를 듣고 잠시 생각했다. 어떻게 1000만명이 한 날 한 시에 같은 생각을 할 수 있고 한 날 한 시에 같이 거리로 나올 수 있을까? 수많은 굵직한 질곡을 헤쳐 온 우리 역사에 과연 그런 적이 있긴 있었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조국 광복이 이루어지던 그 때 외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제 축구에서 이기는 기쁨은 조국 광복의 기쁨이 되었나?


제발 그 ‘다수’의 생각이 너무 끽연자들을 몰아세우지 말았으면 한다. 나는 아니지만 대다수의 끽연자들은 담배를 끊으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지 않은가?


/변영국 2007-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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