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부활. (이미지 출처 = Pxhere)

사도신경에 나오는 "육신의 부활과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라는 신앙고백을 하면서 '나의 육신을 부활 때가 되면 진짜 되찾을 수 있는지'가 궁금하신 분들이 적잖은 듯합니다. 

저는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나 좋건 싫건 어릴 때부터 교회에 머물러 있었기에 그랬는지, 이 "육신의 부활"에 대해 그때가 되면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지내 왔습니다. 

하지만, 신앙고백문에 드러나 있는 여러 조목을 그냥 당연시하지 않는 분들은 우리의 신앙에 대해 별 궁금함 없이 머물러 있는 이들에게 자극을 줍니다. 오늘처럼 "육신의 부활"에 대해 궁금해 하는 분들이 그런 자극을 주는 셈입니다.  

과연 마지막 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할 때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부활하는 걸까요? 내가 가장 보기 좋았을 때의 모습으로 부활하는 걸까요? 아니면 죽음을 맞았던 순간의 모습, 어쩌면 내가 가장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늙거나 앓고 있던 때의 모습으로 부활하는 걸까요? 

이도 저도 아닐 듯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부활을 기술하고 있는 복음서를 통해 보면 유령의 모습으로 부활하는 것은 아닌데, 친하게 곁을 지켰던 이들도 한눈에 알아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토마스 사도가 예수님의 상처에 손가락을 넣어 봐야 믿겠다고 했었는데, 예수님이 닫혀 있는 방 안에 소리도 없이 나타나셔서 당신 상처를 보여 주십니다. 이걸로 봐서는 육신을 가지고 계신 분인 것은 분명한데 벽을 통과하고 계시다니....!

따라서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육신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걸 알겠습니다. 이런 힌트를 통해 본다면, 우리가 가질 부활의 모습도 그렇게 상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의 언어로는 육신이라고 하지만 부활 때의 육신은 우리가 흔히 이해하는 육신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 초월적인 모습이면서도 그가 누구인지 알아맞힐 수 있는 몸이 있다는 것을 알아들어야 하겠습니다. 

어떤 분들은 그 육신을 "부활체"라는 말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부활을 통해 새로이 얻게 되는 육신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부활을 경험한 이들은 그런 모습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을 알아보기 위해 필요한 정보는 그가 특징적으로 가지고 있던 상처, 음성, 몸짓 등이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의 기억만으로 그 사람들을 찾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 기억을 넘어서는 감각이 주어질 것이고, 부활을 통해 외형이 변화되었다고 해도 마리아 막달레나와 사도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았듯이 우리 각자도 만나야 할 사람들을 그렇게 찾게 되리라 믿습니다. 

과연 부활 이후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요? 아마도 그때는 과거의 내 상처가 더 이상 아픔이나 두려움을 일깨우지 않고 그것 자체가 부활의 징표가 될 것입니다. 더불어 나는 내 모습에 상관없이 만족할 줄 아는 내적인 모습의 변화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센터장, 인성교육원장,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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