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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언으로 그칠 수 없는 탄소 중립

겨울 추위는 멀었는데 ‘삼한사먼’이 찾아왔다. 3일 쌀쌀하더니 나흘 이상 먼지가 가득하다. 베란다에서 선명하게 보이던 송도신도시의 초고층 건물들이 희뿌연 대기에 숨었다. 전혀 춥지 않은 작년이 그랬다. 북극권 냉기가 쨍하게 내려오면 하늘은 깨끗했는데, 눈 한 차례 쌓이지 않고 지나가자 난데없는 매미 나방 유충이 폭발적으로 늘었고, 관측 이래 가장 긴 장마가 휩쓸었다. 다가올 겨울이 또 걱정이다.

취임하면 ‘파리 기후협정’부터 다시 가입하겠다고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다짐해서 그랬을까? 우리 대통령도 2050년 ‘탄소 중립 선언’ 대열에 동참했다. 지난달 28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만큼 제거해서 2050년까지 탄소 순 배출량이 ‘0’이 되도록 하겠다는 대통령의 선언이 나오자 여당 의원들은 기립박수를 보냈다고 언론은 전했다. 그 소식에 고무된 유엔 사무총장은 솔선수범하는 주요 국가 그룹에 합류한 걸 반가워했다는데, 우리 환경단체는 시큰둥했다.

선언은 쉽다. 70여 국가가 탄소중립을 선언했지만, 이행계획을 밝힌 국가는 17개국에 불과하고 실현 가능성은 분명하지 않다. 탄소 감축목표를 유엔기후변화협약 제26차 당사국총회에 제출하길 당부한 사무총장은 우리 정부를 얼마나 신뢰할까? 탄소 중립을 추진하면 기업부담이 증가한다고 난감해 한 경영자들의 볼멘소리를 들었을까? 알 수 없는데, 대통령의 선언을 반기면서 구체적 이행계획을 요구한 환경단체는 여당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의 최근 발언으로 맥이 빠졌을 거 같다.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은 불가능하다고 못 박은 수석부의장은 탄소가 배출되지 않는 핵발전은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언론 앞에 주장한 모양이다. 풍력발전 비중이 30퍼센트 넘는 유럽 국가와 처지가 다르므로 핵발전을 유지하면서 화력 비중을 줄여야겠지만 2050년 탄소 중립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한 건데, 부동산 투자회사 대표 경력을 가진 그 국회의원은 후손의 생존이 달린 탄소중립보다 경영자의 이해에 관심이 클 게 분명하다. 한데 핵발전이 탄소 배출과 무관할까? 그는 시작이나 과정보다 관 끝의 말초현상만 보는 게 틀림없겠다.

2035년까지 건물에서 배출하는 탄소를 절반으로 줄이고 100퍼센트 청정에너지와 무공해 차량으로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성취하겠다고 밝힌 미 대통령 당선인은 소형 원자로로 얻는 전기를 청정에너지로 인식하는 한계를 보였다. 일부 국회의원과 감사원에서 현 정부의 탈핵 기조를 흔드는 상황에서 우리 대통령은 핵을 청정에너지로 인식하지 않아 다행인데, 대신 수소를 청정에너지의 반열에 올리려 한다. 핵반응로에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듯 수소연료발전 역시 이산화탄소를 관 끝으로 배출하지 않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과정은 왜 생략하는가!

(이미지 출처 = Pixabay)

사고 가능성은 여기에서 살피지 않더라도, 순수한 수소를 에너지원으로 확보하는 과정에 들어가는 에너지의 총량은 무시할 수준이 아니다. 물을 전기분해하면 배보다 배꼽이 훨씬 크니 제외해야 한다. 천연가스? 석유처럼 온실가스를 내놓는 천연가스를 수소로 전환하면 에너지 크기가 줄어들고 전환과정에 온실가스와 오염물질을 배출한다. 핵연료를 채굴, 정제, 가공, 사용 후 폐기하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 총량은 핵발전으로 얻는 양보다 충분히 적지 않을 뿐더러 과정마다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막대하다. 탄소중립에 거의 이바지하지 못한다.

“석탄발전을 재생에너지로 대체해 새로운 시장과 산업을 창출하고 일자리를 만들겠다.” 천명한 대통령은 전기와 수소차 확대 보급과 지역 재생에너지 사업 지원을 약속했는데, 아쉽게 환경단체는 “무늬만 그린뉴딜”로 평가절하했다. 아직 대통령의 선언일 뿐, 이행계획은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았다. 낡은 석탄화력발전소의 폐쇄를 약속했지만, 거대 규모의 석탄화력발전소 신설은 돌이키지 않았다. 게다가 해외 환경단체가 “기후악당 국가”로 지목하는 해외 석탄화력발전소 투자도 중단할 의지가 없다. 심화하는 기상이변은 상상을 초월하는데, 절박함이 부족하다. 기후위기를 완화하지 못하는 일자리는 그린뉴딜과 거리가 멀다.

누적되는 대기권 이산화탄소 농도는 어느새 415피피엠을 넘나든다. 전문가들은 450피피엠을 넘으면 파국을 돌이킬 수 없다고 확신한다. 돌이킬 시간은 이미 지났다는 전문가는 지금의 추세를 막지 못하면 30년 이내 450피피엠을 돌파할 것으로 추산한다. 석탄과 핵은 물론이고 수소 역시 탄소중립과 거리가 멀다. 막대한 탄소를 내뿜으며 전에 없던 편의를 거침없이 누려 온 현세대는 다음 세대의 생존을 생각해야 한다. 내연기관은 물론이고 수소와 핵에너지도 과감히 포기해야 마땅하다.

지난 11일 제25회 ‘농업인의 날’을 맞은 대통령은 “농촌이 한국판 뉴딜의 핵심 공간이 되도록 하겠다” 약속하면서 현 정부의 정책이 계속된다면 “농업과 농촌은 지속 가능한 미래의 주역이 될 것이고 식량 안보 체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런데 농촌에 남아 농사짓는 농민 대부분은 솔깃하지 않았다. 17년 만에 농업인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대통령은 최첨단 스마트팜에 몸담은 청년 농업인 앞에서 “새로운 시대의 농정”을 약속하며 농업 수출의 실적과 일자리 증가를 언급했지만, 의지와 관계없이 핵심을 빠뜨렸다.

먹을거리 산업은 생존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모름지기 농업은 농촌과 농민을 동시에 아우르는 ‘삼농’이어야 지속 가능하다. 에너지 과소비로 온난화를 촉발하는 스마트팜은 오히려 위험하다. 농촌의 초고령화를 주목하지 않은 대통령은 젊은이들이 땅으로 흔쾌히 돌아오는 농업을 적극 지원해야 했다. 에너지를 과소비하는 도시보다 땅에 삶의 뿌리가 닿은 농촌에 고마워해야 했다. 에너지를 소비해 생산한 농작물을 수출하기보다 자급에 몸을 바친 농민에게 미안해 해야 했다.

선언으로 탄소는 줄어들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충분히 번영된 생활을 누린다. 탄소중립은 에너지를 과소비하는 사람부터 반성하며 솔선수범해야 한다. 파국을 면하려면 번지르르한 말보다 행동이 우선해야 한다. 탄소중립은 후손의 생존을 생각하는 선물, 다시 말해 희생을 전제로 가능하다. 탄소중립 이행계획의 방향은 에너지 소비 없어도 행복한 삶이어야 한다.

 
 

박병상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이사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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