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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동건설 산재사망 유족의 끝나지 않은 싸움고 정순규 미카엘 씨 아들 인터뷰, “피해자 과실로 책임 떠넘기는 기업”

구약성경에는 온몸을 무장한 거인 병사 골리앗이 맨몸의 양치기 소년 다윗의 돌팔매 한방에 쓰러지는 이야기가 있다.

경동건설 하청 노동자였던 정순규 씨(57, 미카엘)가 산재 사고로 숨진 뒤부터 아들 정석채 씨(35, 비오)는 경동건설이란 골리앗과 싸우고 있다. 중대재해 피해 가족이 기업과 싸워야 하는 일이 현실에서는 다반사다. 피해 가족은 다윗처럼 맨몸이지만 ‘한방에’ 골리앗과 같은 기업을 쓰러뜨리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 다윗들의 무수한 희생과 고통, 지난한 싸움 끝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국회에 올랐다.

“아직도 정확한 사고 원인 알지 못해”

평범했던 한 가족, 1남 2녀에 막둥이 중학생 딸을 둔 정순규 씨가 지난해 10월 부산 문현동 경동 리인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일하다 떨어져 숨졌지만 지난 1년간 가족들은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아직도 정확한 사고 원인과 경위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그 무렵 정순규 씨가 남긴 사진과 사고 직후 가족이 찍은 사진 속에 당시 현장의 안전장치가 부실했다는 점이다.

사고 당시 최초 신고자는 물론 경동건설은 목격자, CCTV, 차량블랙박스 등이 전혀 없다면서도 정 씨가 2미터에서 떨어졌다고 단정했다. 정석채 씨는 “뭔가 잘못돼 가고 있다”고 느꼈고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부산지방고용노동청은 경동건설이 작성한 산업재해조사표대로,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과 부산지방경찰청은 제각각 조사 결과를 내놨다.

어느 결과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형사재판은 진행되고 있다. 지난 10월 16일 결심 공판에서 검사는 경동건설 현장소장과 하청업체 현장소장에 각 징역 1년 6개월, 경동건설 안전관리자에 금고 1년, 경동건설과 하청업체에는 각각 벌금 1000만 원을 구형했다. 12월 9일 선고 공판을 앞두고 정석채 씨는 “기적이 일어나길” 빌고 있다.

“구형보다 형량이 더 나오지 않고 오히려 낮아질 가능성이 커요. 중대재해 사건에서 검사가 항소하는 경우도 별로 없고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만 됐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11월 안에 제정되는 기적이 일어나길 빌어요.”

1973년 설립된 경동건설은 부산 향토기업으로 공동주택 및 대형 건물과 도로, 다리 등을 짓는 중견 건설사다. (이미지 출처 = 경동건설 홈페이지)

경동건설 서류, “아버지 필체 전혀 아니야.... 모든 책임 떠넘기는 것”

정순규 씨 기일 하루 전날인 지난 10월 30일 부산지방법원은 유족이 낸 재판 기록 및 속기록 열람 신청은 불허했지만, 경동건설 변호인 의견서는 볼 수 있게 해 줬다. 그날 가족들은 또 충격에 빠졌다. 경동건설이 제출한 ‘관리감독자 지정서’라는 서류 때문이었다.

그 서류는 작업장의 안전, 보건 및 산업재해에 관한 제반 관리자를 현장반장인 정순규 씨로 지정한다는 내용으로 정순규 씨 본인 서명이 들어 있다. 그러나 서류를 들여다본 순간 가족들은 정순규 씨 필체가 전혀 아님을 단박에 알아봤다. 정석채 씨는 “경동건설이 아버지에게 안전관리에 관한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본인이 직접 서명하지 않은 서류를 제출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아버지 과실로 몰아갈 것이란 정석채 씨의 예상은 어긋나지 않았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경동건설 산재 문제가 다뤄진 직후 나간 기사들에 누군가 정순규 씨가 술을 먹고 작업대에 올라갔다는 댓글을 연이어 달 때도 그랬다.

(왼쪽)정순규 씨의 평소 필체와 (오른쪽)경동건설이 재판에 제출한 '관리감독자 지정서'의 서명의 필체가 다르다. (사진 제공 = 정석채)

몇몇 기자들이 정순균 씨가 술 먹었다는 기사를 쓰라는 경동건설의 전화를 받았다고 전해 줬어요. 기자들이 증거를 주면 쓰겠다고 했다는데 2-3주 지나도록 소식이 없대요. 경동건설이 재해자 과실로 주장할 것이란 걸 국회, 언론 모두가 알고 있었어요. 119 구급대 일지나 당시 이송됐던 병원에서도 아버지가 술을 드시지 않은 것이 확인돼요. 경동건설은 당시 목격자 한 명 없다고 했으면서 이제 와서 왜 억지를 쓸까요?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한편으로는 여러 언론사에 자사 아파트 광고 기사를 내보내며 비판 기사를 밀어내는 행태도 벌이고 있어요.”

정순규 씨가 술을 마시고 일을 했다는 허위 댓글. (이미지 출처 = 비욘드 포스트)

“경동건설 산재 국감 올라도 지역 언론은 외면”

정작 산재 피해가 났던 부산 지역의 언론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장례식 당시 몇몇 지역 언론이 정 씨가 숨진 사실을 보도한 것에 그쳤다. 산재 발생 원인과 책임 등 구조적 문제에 대한 보도는 없었다.

정석채 씨에 따르면, 부산, 경남 지역 민영방송사인 <KNN>이 경동건설 산재를 3회 분량으로 방송할 예정이었지만 불방됐다. 그가 지인을 통해 알아본 바로는 “위에서 막았다”는 것. 장례식 당시 그에게 명함을 건넸던 지역 신문 기자들도 반응이 없었다.

지난 10월 국감에서 정의당 강은미 의원이 경동건설 산재사망 사고 조사의 문제점을 제기하며 부산고용노동청에 재조사를 촉구하고 산재 다발 사업장인데도 경동건설이 산재 보험료를 대량 감면받은 사실을 지적하고 나서야 <KBS부산>이 관련 사실을 보도한 정도다. 지역 언론이 부산 향토기업인 경동건설의 산재 보도에 침묵하는 동안 경동건설 아파트 홍보 기사는 계속됐다.

경동건설 쪽, 장례식장서 “우리가 죽였느냐”며 따져
“유가족에 대한 고소 취하 조건으로 합의 종용”

“그들도 사람이라면 먼저 유가족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우리가 안전조치를 못해 죄송하다, 다시는 정순규 씨 같은 일을 만들지 않겠다, 앞으로 안전조치를 잘하겠다’고 하는 것이 기본 도리입니다. 어쩌면 이렇게도 선례를 남기지 않으려고 발악할까요?”

작업반장인 정순규 씨에게 작업장의 안전, 보건, 산재에 대한 제반 관리를 맡긴다는 서류로 가족들은 필체가 전혀 달라 본인이 직접 쓰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사진 제공 = 정석채)

안전하지 않은 일터에서 목숨을 잃은 것이 분명한데도 가족들은 따뜻한 한 마디 사과조차 받지 못했다. 정순규 씨가 119 구급차로 병원에 옮겨진 뒤에도 경동건설과 하청업체인 제이엠건설 책임자는 병원에 오지 않았고, 병원 이송 하루 뒤 정 씨가 숨졌지만 소속업체 대표는 개인사정이 있다며 조문하지 않았다. 평소 직원을 가족처럼 여긴다는 회사라면 그럴 수는 없었다.

조문 온 회사 관계자들마저 유가족의 울분을 향해 도리어 “우리가 죽였느냐”며 핏대를 올렸다. 이에 정순규 씨 아내는 충격으로 쓰러져 전신마비까지 왔다. 장례식에 모인 지인과 친인척도 모두 분개했다. 이 과정에서 정순규 씨 처남이 회사 관계자의 뒤통수를 한 번 쳤고, 정석채 씨 친구는 휴지곽을 바닥에 내던졌다. 이 모든 장면은 장례식장 CCTV에 담겼다.

회사 관계자들은 유가족을 곧바로 감금, 폭행, 협박으로 검찰에 고소했지만, 법원은 올해 7월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그들이 주장하는 “감금, 폭행, 협박”은 없었다. 유가족을 애도하고 기업의 안전관리 소홀을 사죄해도 모자랄 판에 그들은 장례식장조차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아버지 장례 얼마 뒤 경동건설에서 합의 자리를 마련했어요. 저는 아버지 목숨값을 흥정하는 자리로 생각돼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하지만 큰 외삼촌과 아버지 친구 한 분이 어머니와 중학생 동생을 생각해서라도 합의하는 것이 좋다고 하셨고, 저 대신 합의 자리에 나가 주셨어요. 저는 당시도 지금도 아버지 목숨값으로 얼마를 내라고 하는 건 도저히 못해요. 얼마가 아니라 아버지를 다시 살려내라는 것이 제 심정입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경동건설 쪽이 합의 조건으로 내민 카드는 “유가족에 대한 고소를 취하해 줄 테니 5000만 원을 받고 사건을 종결하자”는 것이었다. 있지도 않았던 사실을 없던 것으로 해 줄 테니 “목숨값”을 받고 끝내라는 것. 합의 자리에 나갔던 큰 외삼촌과 아버지 친구분은 그들의 뻔뻔한 태도에 할 말을 잃었다. 아내와 어린 딸을 위해서라도 합의해야 한다 생각했던 그들도 “나쁜 사람들이다. 네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가라. 합의도 필요 없고 저들은 처벌 받아야 한다”고 정석채 씨에게 당부했다.

“수많은 제2의 경동건설에서 지금도 노동자 희생.... 제발 다치지 않길”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과 산재 피해자에 연대할 것”

경동건설 하청 노동자로 일하다 숨진 정순규 씨(57, 미카엘) 아들 정석채 씨(35, 비오). ⓒ김수나 기자

정석채 씨는 기업의 중대재해가 더 많이 공론화돼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가해 기업의 회유와 합의 종용, 입막음이 관행처럼 계속되고 언론의 무관심, 피해자들의 연대가 쉽지 않아서다. 충분히 애도할 새도 없이 합의해야 하거나, 법적 대응을 하려 해도 개인으로서는 힘들다. 거기에 사고 원인마저 명확하지 않으면 가족이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싸움까지 감당해야 하지만, 원인규명에 필요한 여러 공문서나 정보에 접근하기도 어렵다.

“노동자의 생명을 경시하고 죽음에 공분하지 못하는 사회이다 보니 아무리 산재가 많이 일어나도 몇 천만 원에 합의를 종용하는 일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납니다. 기업은 그 사실을 드러내는 것을 당연히 꺼리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공론화입니다. 드러내서 문제의 실체가 무엇인지 논의하고 함께 분노해야 합니다.”

그는 갈수록 아버지 사건에 대한 관심이 줄까 봐 걱정이다. 그동안 수없이 언론사에 제보하면서 어느 정도 기사로 알려졌지만, 유족으로서는 턱없이 아쉽고 부족하다. 사고 뒤 피해 가족의 일상은 멈췄지만 중대 과실을 일으킨 기업들은 버젓이 영업활동을 계속하며 이익을 낸다. 그래서 정석채 씨는 하루아침에 남편을 잃은 어머니를 볼 때마다 더 화가 난다.

“아버지 사고 뒤로 어머니는 길을 가다가도 공사 현장을 보면 제발 다치지 않으면 좋겠다고 빌어요. 저도 아버지 사건을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지금도 제 아버지 같은 분들이 제2의 경동건설에서 희생되고 있어요. 산재 피해 가족들에게 절대 지지 마시라고 전하고 싶어요. 실상을 끝까지 알려야 하고요. 노동자의 죽음에 모두가 공분하는 사회가 될 것이라 믿고, 힘이 닿는 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돕고 싶습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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