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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종 최신 강론말씀(11월 2-4일)

(편집 : 장기풍)

 

“기도는 우리 삶의 길을 안내하는 방향타”

교종, 11월 4일 수요 일반 교리교육

프란치스코 교종은 11월 4일 바티칸 도서실에서 생중계로 진행된 수요 일반 교리교육에서 기도를 주제로 한 가르침을 계속했다. 교종은 가르침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삶을 올바로 질서 있게 살기 위해서는 일찍, 자주, 침묵 속에서 기도해야 함을 우리에게 가르치신다고 말했다. 교종은 교육 전 수요일 일반 교리교육을 신자들이 참석하지 않는 가운데 코로나 방역으로 인해 또다시 바티칸 도서실에서 중계방송을 통해 진행하는 것은 ‘불행한 현실’이지만 이는 보건 방역당국의 지침을 따르는 것의 중요함을 일깨워 주는 것이며 코로나에 감염된 환자들과 이들의 치유를 위해 헌신하는 의료진들을 위해 기도하자고 말했다. 가르침 내용.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몸소 기도의 모범을 보여 주십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우리가 무언가를 직감하고 올바른 관점에서 그분의 사명 전체를 해석할 수 있는 신비한 열쇠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영혼이 목말라하는 사랑으로 아버지 하느님과의 친밀함에 자주 몸을 담그셨습니다. 마르코 복음(1,32,34-38절) 구절은 예수님의 이러한 모습을 다음과 같이 전해 줍니다. 예수님은 어느 날 저녁 늦게까지 많은 병자를 고치신 뒤 일찍 일어나 황량한 곳에서 혼자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를 찾아 가버나움 마을 전체가 그를 찾고 있다고 말씀드리자 예수님께서는 다른 마을에도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기도는 예수님의 길을 인도하는 방향타’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다른 사람의 욕망과 칭찬에 의해서가 아닌 하느님이 자신의 길을 인도하게 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엇보다 기도가 ‘오늘의 첫 소원’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기도 없이 하루를 보낸다면 하루가 귀찮거나 지루한 경험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참혹하고 맹목적인 운명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기도는 무엇보다 ‘하느님과의 만남’이기 때문에 순종하고 들어야만 할 필요성을 보여 주십니다. 그러면 일상생활의 문제들은 장애물이 아니라 우리 앞에 있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만나도록 하느님께 호소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께서는 기도가 고집을 가지고 실행되어야 하는 예술이라고 가르치십니다. 누구든지 산발적으로 기도할 수 있지만 예수님은 기도에는 훈련과 실행,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가르쳐 주십니다. 일관된 기도는 점진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환난의 시기에 우리를 강하게 만들고, 우리를 사랑하고 항상 보호하시는 그분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은혜를 줍니다. 셋째, 예수님의 기도는 항상 ‘독방’입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벗어나 황량한 곳을 선호합니다. 침묵 속에서 우리의 가장 깊은 욕망과 진리가 빛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침묵이 하느님이 말씀하시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행동이 의미를 찾는 내면의 삶을 발전시킬 수 있는 자신만을 위한 공간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기도는 모든 것이 하느님께로부터 나오고 하느님께로 돌아오는 곳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모든 피조물과의 관계에서 올바른 차원을 재발견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평화와 기쁨은 예수님 기도의 모범을 따를 때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직 사랑만이 증오를 침묵시킨다”

교종, 오스트리아 테러공격 희생자들 위로

프란치스코 교종은 수요 일반 교리교육 후 최근 유럽에서의 잇단 유혈 테러공격 희생자들을 기억하면서 이러한 테러는 종교간 형제적 협력을 파괴하려는 비참한 행위라고 강조했다. 교종은 오늘날 유럽 일대에 확산되는 잔인한 테러의 무고한 희생자들을 기억하자고 강조했다. 특히 교종은 지난 주 10월 29일 프랑스 남부도시 니스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일어난 심각한 테러 공격과 11월 2일 저녁 오스트리아 비엔나 거리에서 일어난 테러 공격을 언급하면서 이러한 공격이 평화와 대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실망과 분노를 불러일으켰다고 말했다. 교종은 이러한 사건들은 폭력과 증오를 통해 종교 간 형제적 협력을 파괴시키기 위한 것으로 비극적으로 살해 당한 모든 사람을 하느님의 자비에 맡기고 가족과 고통받는 모든 사람과 영적으로 함께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프란치스코 교종은 11월 3일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테러 공격으로 희생된 사람들과 가족, 그리고 오스트리아 국민들에게 깊은 위로의 뜻을 전했다. 월요일 밤에 발생한 비극적인 테러 공격으로 최소 4명이 사망하고 15명이 부상했다. 교종은 바티칸 국무장관 파롤린 추기경이 서명해 비엔나 대교구장 크리스토프 쇤본 추기경에게 보낸 전문에서 무고한 사람들에게 죽음과 고통을 가져다 준 폭력 행위를 개탄하면서 사망자들과 가족들에 대한 애도와 함께 모든 부상자의 신속한 회복을 위해 기도한다고 말했다. 또한 교종은 맹목적인 폭력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은 없다며, 희생자들을 하느님의 자비에 맡기고 폭력과 증오가 멈추고 평화로운 공존이 이루어지는 사회가 촉진되도록 주님께 간청하면서 비극적인 테러의 영향을 받은 모든 사람과 함께한다고 말했다. 

한편 교종은 3일 트위터에도 “저는 비엔나에서 테러 공격에 슬픔과 실망을 느끼며 피해자와 그들 가족을 위해 기도합니다. 폭력을 멈추고 평화와 형제애를 강화합시다. 오직 사랑만이 증오를 침묵시킬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희망은 주님께서 주시는 무료 선물입니다”

프란치스코 교종, 바티칸 묘지 위령의 날 미사 강론

프란치스코 교종은 11월 2일 위령의 날을 맞아 튜턴 바티칸 묘지에서 죽은 모든 영혼을 위한 위령미사를 봉헌하고 역대 교종의 무덤이 안치된 바티칸 동굴에서 기도했다. 교종은 공동묘지 경당에서 행한 위령미사 강론에서 위령의 날 첫째 미사 제1독서(욥기 19,1.23-27a) 말씀을 설명하면서 신자들의 희망은 우리가 항구하게 구해야 하는 주님의 무료 선물이라고 강조했다. 강론 내용.

우리는 기쁨의 순간이나 안 좋은 시기, 시련의 순간, 심지어 죽음이 다가올 때, 욥이 외친 것처럼 “나는 알고 있다네, 나의 구원자께서 살아 계심을. 그분께서는 마침내 먼지 위에서 일어서시리라. 내 살갗이 이토록 벗겨진 뒤에라도 이 내 몸으로 나는 하느님을 보리라. 내가 기어이 뵙고자 하는 분, 내 눈은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그분을 보리라”(25-27절)를 반복해 생각하고 외쳐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소망이며, 우리가 구할 때 주님만이 주실 수 있는 선물인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죽은 많은 형제자매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선지자 욥은 하느님이 주신 온갖 고통으로 패배한 것처럼 보였지만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더 추락하고 끝까지 낮아지는 가운데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결국 그를 안심시키는 빛과 따뜻함의 포옹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삶이 거의 끝나는 순간에 맞는 확신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희망’입니다. 또 이것은 무료로 주시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그냥 가질 수 없습니다. 주님께 “저에게 희망을 주십시오” 하고 요청해야 합니다. 우리를 절망으로 이끄는 추악한 것들은 많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패배로 끝날 것이라고 믿고 죽음 후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욥의 목소리는 지금도 들려옵니다.

바오로 사도는 오늘 제2독서(로마 5,3-11)에서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3절)라고 말합니다. 희망은 우리를 이끌고 삶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희망은 우리를 생명과 영원한 기쁨으로 이끄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희망은 우리의 반대편에 있는 닻입니다. 우리는 이 밧줄에 매달려 스스로를 지탱합니다. 나는 나의 구속주가 살아 계시고 그를 볼 것임을 알고 있으며, 이것은 기쁨의 순간과 시련의 순간, 죽음의 순간에 반복되어야 합니다. 희망은 결코 받을 가치가 없는 우리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무료 선물입니다. 그것은 주어지고, 또 주어지는 하느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하느님께로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닻이 있는 그곳에서 우리를 영접하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희망의 삶은 우리가 주님의 손에 있는 밧줄에 매달리고 있으며 닻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오늘 먼저 세상을 떠난 수많은 형제자매를 생각하면서 묘지를 보고 욥이 했던 것처럼 “나는 알고 있다네, 나의 구원자께서 살아 계심을. 그분께서는 마침내 먼지 위에서 일어서시리라. 내 살갗이 이토록 벗겨진 뒤에라도 이 내 몸으로 나는 하느님을 보리라. 내가 기어이 뵙고자 하는 분, 내 눈은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그분을 보리라”를 반복하는 것이 유익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힘이며, 희망의 미덕인 무료 선물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이 선물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2006년 은퇴. 현재 뉴욕에 사는 재미동포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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