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우 신부] 11월 1일(모든 성인 대축일), 묵시 7,2-4.9-14; 1요한 3,1-3; 마태 5,1-12ㄴ

1독서 - 나는 인장을 받은 이들의 수가 십사만 사천 명이라고 들었습니다.(묵시 7,4)

모든 성인 대축일에 듣는 요한 묵시록의 말씀은 ‘나도 구원 받을 수 있을까’에 대한 물음에 희망을 던져 줍니다. 묵시록에서 언급되는 십사만 사천 명은 모든 민족을 의미합니다.(12지파를 상징하는 12를 곱해서 거기에 1000을 다시 곱한 숫자) 신천지가 말하는 선착순 게임이 아니라 구원은 모든 민족에게 열려 있다는 메시지는 모든 성인 대축일에 그 의미가 각별합니다. 우리 역시 그들의 뒤를 따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모든 성인들의 통공을 믿습니다. 오늘 전해 듣는 묵시록의 말씀은 종말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희망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2독서 -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1요한 3,2)

요한 1서를 읽으면서 야곱의 고백을 떠올려 봅니다. ‘내가 서로 얼굴을 맞대고 하느님을 뵈었는데도 내 목숨을 건졌구나’(창세 32,31) 강론을 기고하면서 여러 번 언급을 했습니다만, 구약의 전통은 하느님을 직접 만나면 그 사람은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만큼 절대자인 신은 우리와 항상 거리가 있는 분으로만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성자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아버지를 직접 만나게 되리라는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 인들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입니다.’(1코린 13,12)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랑의 찬가의 마지막은 하느님의 얼굴을 마주하리라는 희망으로 마무리됩니다.

오늘 독서에서 요한은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있는 그대로의 그분을 알아가기 위한 노력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기에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시간인 것입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만나고 있는 성인들의 간구를 청하며 우리 역시 하느님을 있는 그대로 만날 수 있는 그날을 희망해야겠습니다.

모든 성인들. (이미지 출처 = Needpix)

복음 -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

복음과 교회의 가르침은 끊임없이 가난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공교롭게도 이번 주일 맞이하는 모든 성인 대축일에도 마태오 복음 5장이 등장하고 다음 날 맞는 위령의 날 첫째 미사에도 같은 구절이 등장합니다. 세 번째 묵상의 주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가난하면 구원받을까? 가난과 구원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교회는 끊임없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배려를 강조합니다. 그리고 그 선행을 통해 신앙을 실천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행동을 실천하는 주체인 ‘나’가 중요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선행의 대상 즉, 가난해서 도움을 받는 이들에 대한 구원만을 강조하면 안 됩니다.

물리적인 가난이 구원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내가 그냥 가난하다고 해서, 살기 힘들다고 해서 구원이 가까이 있지 않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냥 가난하기 때문에 죽어서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헛된 희망은 말 그대로 종교를 아편으로 만들게끔 합니다. 그러기에 의식이 결여된 가난은 사람을 더욱 구원과 멀어지게끔 합니다.

저항 없는 가난은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고 의식 없는 가난에 젖어든 사람은 자기만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모든 핑계를 가난에 돌립니다. 그렇게 맹목적인 가난은 하느님나라와 가까이 있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태오 복음사가는 마음이 가난한 이들이 하느님나라를 차지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가난하건 가난하지 않건 마음에 있는 것을 비워낼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마음의 부유함 즉 고집과 이기적인 마음들을 떨쳐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마음이 가난해집니다. 그리고 가난이 하느님의 나라로, 구원의 길로 마음으로 이끌 것입니다. 나는 제대로 가난한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유상우 신부(광헌아우구스티노)

부산교구 감물생태학습관 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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