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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의 편지

한진중공업 마지막 해고자 김진숙의 복직을 촉구하는 사회 각계각층의 원로선언이 있었습니다. 병환 중인 백기완 선생과 문정현, 문규현 신부 등 172명이 선언에 참여했습니다. 원로들은 10월 20일 오전 11시 청계천 전태일다리 전태일 동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국사회는 김진숙에게 빚을 졌습니다”라고 말하며 “늘 우리 손을 잡았던 김진숙의 손을 이제 우리가 잡아야 한다”라고 호소합니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과 국회를 향해 “노동존중사회와 김진숙 복직은 별개가 아닙니다. 김진숙 복직을 위해 나서야 합니다”라고 호소합니다.

10월 20일 오전 11시, 청계천 전태일다리의 전태일 동상 앞에서 "한진중공업 해고자 김진숙 복직촉구 사회 각계각층 원로선언"이 있었습니다. ©장영식

이날 김진숙 지도위원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하는 편지’를 발표합니다. 그 전문을 소개합니다.

우린 어디서부터 갈라진 걸까요. 86년 최루탄이 소낙비처럼 퍼붓던 거리 때도 우린 함께 있었고, 91년 박창수 위원장의 죽음의 진실을 규명하라는 투쟁의 대오에도 우린 함께였고,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의 자리에도 같이 있었던 우린, 어디서부터 갈라져 서로 다른 자리에 서게 된 걸까요.

한 사람은 열사라는 낯선 이름을 묘비에 새긴 채 무덤 속에, 또 한 사람은 35년을 해고노동자로, 또 한 사람은 대통령이라는 극과 극의 이름으로 불리게 된 건, 운명이었을까요. 세월이었을까요.

배수진조차 없었던 노동의 자리, 기름기 하나 없는 몸뚱아리가 최후의 보루였던 김주익의 17주기가 며칠 전 지났습니다. 노동 없이 민주주의는 없다는데 죽어서야 존재가 드러나는 노동자들. 최대한 어릴 때 죽어야, 최대한 처참하게 죽어야, 최대한 많이 죽어야 뉴스가 되고, 뉴스가 끝나면 그 자리에서 누군가 또 죽습니다. 실습생이라는 노동자의 이름조차 지니지 못한 아이들이 죽고, 하루 스무 시간의 노동 끝에 '나 너무 힘들어요'라는 카톡을 유언으로 남긴 택배 노동자가 죽고, 코로나 이후 20대 여성들이 가장 많이 죽고, 대우버스 노동자가 짤리고, 아시아나, 케이오, 현중하청 노동자들이 짤리고, 짤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수년째 거리에 있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옛 동지였던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하는 애절한 편지를 낭독했습니다. ©장영식

연애편지 한 통 써보지 못하고 저의 20대는 갔고, 대공분실에서, 경찰서 강력계에서, 감옥의 징벌방에서, 짓이겨진 몸뚱아리를 붙잡고 울어줄 사람 하나 없는 청춘이 가고, 항소이유서와 최후진술서, 어제 저녁을 같이 먹었던 사람의 추모사를 쓰며 세월이 다 갔습니다.

민주주의가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면, 가장 많은 피를 뿌린 건 노동자들인데, 그 나무의 열매는 누가 따 먹고, 그 나무의 그늘에선 누가 쉬고 있는 걸까요. 그저께는 세월호 유족들이 저의 복직을 응원하겠다고 오셨습니다. 우린 언제까지 약자가 약자를 응원하고, 슬픔이 슬픔을 위로해야 합니까.

그 옛날, 저의 해고가 부당하다고 말씀하셨던 문재인 대통령님 저의 해고는 여전히 부당합니다. 옛 동지가 간절하게 묻습니다.

2020.10.20. 한진중공업 마지막 해고자 김진숙

오늘 아침에도 변함없이 김진숙 지도위원은 35년의 꿈을 위해 영도조선소 정문 앞에 서 있습니다. ©장영식

장영식(라파엘로)

사진작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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