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장기풍)

“가난한 사람 눈물 외면하면서 기도하지 말라”

교종, 10월21일 수요 교리교육 ‘시편과 기도’ 마무리

프란치스코 교종은 10월21일 바티칸 바오로 6세 홀에서 진행된 일반 접견 교리교육에서 지난주에 이어 시편을 통한 기도에 대한 성찰을 마무리하면서 시편은 우리 자신뿐 아니라 형제와 세상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하도록 가르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가르침 내용.

시편은 우리에게 1인칭으로 우리 자신만 아니라 형제자매와 세상의 삶을 위해 기도하라고 가르치고 있으며, ‘불완전함’, 즉, 살기 위해, 그리고 어쩌면 기도하기까지의 유혹을 극복하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사람도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시편에서 부정적 인물로 묘사되는 ‘악인’은 ‘초월자’가 아닌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행동에 대한 판단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것들은 참된 기도가 되어서는 안 되는 종류의 예로 사용되며 생명의 근본 실체로 제시됩니다. 금욕주의 대가들이 ‘신성한 두려움’이라고 부르는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것에 대한 언급은 우리를 완전한 인간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자신으로부터 구하고 어떤 식으로든 약탈적이고 탐욕스러운 삶으로 돌진하는 것을 막아주는 방패입니다. 이렇듯 기도는 인간의 구원입니다. 때로는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거짓기도는 예수님께서 반복해서 비난하신 것처럼 다른 사람의 존경을 받기 위해 만들어진 기도입니다. 그것은 앵무새처럼 습관적으로 기도하는 사람들 것입니다. 그러나 진실한 기도의 영이 마음속에 내려오면 하느님의 눈으로 실재를 묵상하게 됩니다.

기도는 삶의 중심입니다. 기도가 있으면 형제자매도 중요해집니다. 초기 기독교 수도자들의 속담은 "하느님을 따라 모든 사람을 하느님으로 여기는 수도자는 복이 있다"고 합니다. 하느님을 흠숭하는 사람은 자녀를 사랑합니다. 하느님을 존경하는 사람은 인간을 존중합니다. 참된 기도는 우리에게 힘을 실어줍니다. 기도는 삶의 걱정거리를 완화시키는 진정제가 아닙니다. 이런 기도는 기독교인의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는 우리에게 힘을 줍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우리 아버지"라는 호칭에서 분명히 봅니다. 

그리고 기도 모음인 시편은 훌륭한 학교입니다. 시편 기자는 항상 정교하고 부드러운 말을 사용하지 않고 종종 ‘존재의 상처’를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가장 친밀하고 개인적인 기도조차 먼저 성전에서 드린 다음 회당에서 사용되었습니다. 교리문답 내용은 이것을 말해줍니다. "시편기도의 여러 형태 표현은 성전의 전례와 사람의 마음에서 동시에 태어납니다." 개인적인 기도는 먼저 이스라엘 백성의 기도를 끌어내고 확대하면서 다음에는 하느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확장됩니다. 그리고 1인칭으로 쓰인 개인의 가장 친밀한 생각과 문제를 다루는 시편은 모두를 위해 기도할 정도의 집단적 유산이 됩니다. 

기독교인의 기도에는 성전과 세상을 하나로 묶는 영적 긴장인 ‘호흡’이 있습니다. 기도는 본당의 희미한 빛에서 시작될지 모르지만 후에는 도시 전체를 관통합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매일의 직업 중에 싹이 트고 전례에서 성취될 수 있습니다. 교회의 문은 장벽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외침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투명한 막’입니다. 약자와 인간의 미래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기도는 계속되고 세상은 항상 존재합니다.

시편에서 "보라, 내가 일어나리라.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경멸받는 자를 구원하리라"라는 음성은 가장 약한 자의 구원에 대한 신성한 약속입니다. 시편은 "번영하는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고 멸망하는 동물과 같다"는 이유로 세상 부(富)의 위험을 경고합니다. 시편은 역사에 대한 하느님 시선에 대한 지평을 엽니다. 주님께서는 때때로 사람들의 계획을 좌절시키십니다. 그러나 주님의 계획은 영원히 남아 있으며 모든 세대를 위한 하느님의 계획입니다.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느님께 기도할 수 없습니다. 성서는 다음과 같이 상기시켜 줍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서로 사랑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입니다. 

요컨대 하느님이 있는 곳에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 모든 인간에게 각인된 하느님의 신성한 형상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실용적 무신론자’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진심으로 하느님을 찾고 있지만 결코 만날 수는 없습니다. 이는 신성모독에 해당하는 가증한 일이며 성전과 제단에 가져갈 수 없는 최악의 범죄입니다. 최대의 불경은 가난한 사람의 눈물을 외면하고 하느님과 가난한 사람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시편의 기도는 우리의 기도에 도움이 되며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가난한 사람들이 없는 것처럼 살면서 기도하려는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합니다.

 

“기도는 모든 기독교인의 첫 번째 사명”

프란치스코 교종은 수요 일반 교리교육을 마치면서 10월 전교의 달에 특히 인류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줄 것을 요청했다. 또한 교종은 이날 폴란드를 포함한 독일어 신자들에게 1978년10월16일 제264대 교종으로 취임한 성 요한 바오로 2세를 기억하면서 올해는 탄생 100주년으로 "그분은 심오한 영성을 가진 사람으로 매일 전례기도와 시편 묵상에서 하느님의 빛나는 얼굴을 묵상했다"고 회고했다. 또한 교종은 모든 신자가 그분 모범을 따라 하루를 시작하기 전 주님을 찬양하고 생활하라고 권고했다. 이와 함께 교종은 모든 신자에게 "전교의 달 10월에 모든 환경에서 말과 모범으로 복음을 선포하는 데 용기를 내십시오. 기독교인들은 하느님 왕국을 긴급하게 전파할 책임을 느끼는 초청을 의미합니다. 기도는 복음에 대한 헌신을 유익하게 만듭니다. 우리의 첫 번째 사명은 기도이며, 우리와 주님과의 관계는 '복음에 대한 헌신과 인간, 특히 가난한 사람들의 구원'에 동참하는 것입니다"라고 강조했다.

 

“평화는 모든 정치의 최우선 순위”

교종, ‘평화를 위한 제 종교 국제기도회 연설

프란치스코 교종은 10월20일 성 에지디오 프란치스코 형제회 주최로 로마 카피톨리노 광장에서 열린 “아무도 홀로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주제의 세계 종교지도자들의 ‘평화를 위한 국제기도회’에서 연설했다. 교종은 이 자리에서 세계의 모든 갈등을 종식시키기 위해 우리 모두 부드러운 믿음의 힘으로 함께 일하자고 호소했다. 연설 내용.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종께서는 1986년10월27일 개최된 ‘아시시 회의’에서 교회역사상 처음 다른 종교 지도자들을 인류가족을 위한 평화를 간구하는 기도에 동참하도록 초대했습니다. 그 모임에는 하느님의 은혜로 전례 없는 만남과 평화를 이루는 행위, 형제애의 새로운 이니셔티브를 통해 점차 성숙해지는 예언적인 씨앗이 뿌려졌습니다. 아시시 회의 이후에도 많은 고통스러운 사건이 종교의 이름으로 발생했지만, 종교 간 대화는 꾸준히 진행되고 많은 결실을 맺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형제자매로서 계속 협력하도록 격려받는 희망의 표시입니다. 

제가 지난해 2월 아부다비에서 알 아즈라의 아마드 알 대이맘과 서명한 ‘세계평화와 함께 사는 인간 형제애’에 관한 문서도 중요한 결실입니다. 또한 며칠 전 발표한 회칙 ‘모든 형제들’(Fratelli tutti)에서도 "평화의 계명은 종교적 전통의 깊이에 새겨져 있다"고 강조합니다. 신자들도 종교적 차이가 무관심이나 적대감을 정당화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종교적 신앙을 바탕으로 전쟁과 증오의 악 앞에 수동적으로 서기보다는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이 모임은 종교지도자와 모든 신자에게 평화를 위해 열렬히 기도하고 전쟁에 맞서 갈등을 종식시키기 위해 온순한 믿음의 힘으로 일하도록 격려합니다. 우리는 평화가 필요합니다! 더 많은 평화! 우리는 무관심할 수 없습니다. 세계는 평화에 대한 깊은 갈망을 갖고 있습니다. 무관심과 전염병이 전쟁의 악을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많은 국가에서 사람들이 전쟁으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권력과 무책임한 매스컴들이 전쟁의 악을 단순히 인류역사의 일부인 것처럼 세상을 오도할 위험이 있습니다.

회칙 ‘모든 형제들’에서 언급한 것처럼 인류는 이론적인 토론에 빠져들지 말고 피해자들의 상처 입은 살점을 어루만지고 느껴야 합니다. 수많은 난민과 피난민들, 방사능이나 화학공격의 영향으로 탈출한 난민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자녀를 잃은 어머니들과 어린 시절을 잃어버리거나 박탈당한 소년소녀들. 이 모든 고통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고통과 겹쳐 많은 국가에서 필요한 치료를 받을 수 없다는 점으로 더욱 심해졌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평화는 모든 정치의 우선순위입니다. 정치적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들은 전쟁을 종식시킬 엄숙한 의무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라. 칼을 잡는 자는 모두 칼로 망한다.”(마태 26,52)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폭력이 어려운 상황을 빨리 해결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어떠한 형태의 폭력에 대해서도 예수님의 그 한 마디 말씀은 모호하지 않고 ‘충분히!’ 수세기에 걸쳐 울려 퍼지고 우리 시대에도 강력한 외침으로 도달합니다. 인류는 오늘날 충분한 칼과 무기로 폭력과 전쟁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함께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 선의의 모든 남녀의 꿈은 전쟁이 없는 세계를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떤 사람이나 집단도 혼자 평화, 번영, 안전, 행복을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 인류가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전염병에서 배운 교훈은 우리 모두 같은 배에 타고 있는 글로벌 커뮤니티라는 인식입니다. 한 사람의 문제가 모두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한 번 더 아무도 혼자서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함께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 개개인과 공동체, 정부지도자와 국제기구 모두 우리가 단일 인류가족이라는 것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만남과 협상을 통해서만 함께 구할 수 있으며 갈등을 제쳐 두고 화해를 추구하고 정치와 선전의 언어를 뛰어넘어 진정한 평화의 길을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언덕에 모인 각기 다른 종교적 전통을 가진 모든 사람이 평화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종교가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주었으며, 실제로 폭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부인합니다. 우리 모두 화해를 위해 기도하면서 새로운 희망의 길을 열 수 있도록 노력해 주시기를 당부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도움으로 평화의 세계를 건설하여 함께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다시 한번 다짐합니다.

 

“인간과 세상의 구원을 위한 종교의 기도”

교종과 세계종교지도자들 ‘2020 평화호소문’ 서명

프란치스코 교종과 세계 주요 종교지도자들은 10월20일 로마 카피톨리노 언덕에서 성 에지디오 프란치스코 형제회가 주최한 평화를 위한 국제기도회가 채택한 ‘2020 평화를 위한 호소문’에 서명했다. 이날 "아무도 홀로 구원받지 못합니다"를 주제로 한 국제기도회에는 프란치스코 교종을 비롯해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과 바르톨로메오 1세 정교회 총대주교와 이슬람과 불교 대표자들이 함께했다. 호소문 내용.

우리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정신으로 로마에 모여 전 세계 기독교 신자와 선의의 모든 남녀와 영적으로 연합해 평화의 선물을 세상에 간구하기 위해 함께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인류의 상처를 염두에 두고 고통받는 수많은 형제자매의 침묵하는 기도와 연합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우리 자신을 만들고 국가 지도자들과 세계 시민들에게 평화를 위한 제안을 엄숙히 호소합니다. 과거 역사상 가장 큰 분쟁의 여파로 이 카피톨리노 언덕에서 전쟁 중이던 국가들은 나중에 실현된 통일의 꿈, 즉 통일 유럽의 꿈을 바탕으로 협정을 맺었습니다. 

오늘날 불확실한 시대에 우리는 불평등과 두려움을 악화시켜 평화를 위협하는 코로나 대유행의 영향을 느끼면서 아무도 홀로 구원받을 수 없다고 단호하게 선언합니다. 전쟁과 평화, 전염병과 건강관리, 기아와 식량접근성, 지구 온난화와 지속 가능한 개발, 인구이동, 핵위협 제거 및 불평등 감소 이러한 문제들은 개별국가에만 관련된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충분히 연결되어 있지만 종종 형제애가 부족한 세상에서 이것을 더 잘 느끼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형제자매입니다! 이 시련의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타인’이 없고 오히려 다양성이 풍부한 위대한 ‘우리’가 되도록 지극히 높으신 분께 기도합시다. 평화가 가능하고, 전쟁이 없는 세상이 유토피아 적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담대하게 꿈꿀 때가 왔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다시 한번 “전쟁은 안 된다”고 외치는 이유입니다! 

불행하게 많은 사람은 전쟁을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하나의 가능한 수단으로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너무 늦기 전에 우리는 전쟁이 항상 세상을 예전보다 더 악화시킨다는 사실을 모든 사람에게 상기시킬 것입니다. 전쟁은 정치와 인류의 실패입니다. 우리는 정부 지도자들에게 종종 두려움과 불신에 근거한 분열의 언어를 거부하고 돌아올 수 없는 길에 들어서지 않도록 호소합니다. 우리 모두 희생자들을 바라봅시다. 현재 너무 많은 갈등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국가 지도자들에게 우리는 다음과 같이 제안합니다. 평화의 새로운 건축을 위해 함께 노력합시다. 생명, 건강, 교육과 평화를 증진하기 위해 힘을 모읍시다. 점점 더 파괴적이고 치명적인 무기를 생산하는 데 사용되는 자원을 생명을 선택하고 인류와 공동의 집을 돌보는 일에 전환할 때가 되었습니다.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달성 가능한 목표부터 시작합시다. 모든 사람에게 적합하고 이용 가능한 백신이 나올 때까지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한 노력을 즉시 통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코로나 전염병은 우리 모두가 한 형제자매임을 상기시켜 줍니다. 

모든 신자와 선의를 가진 남녀들에게 우리는 평화의 창조적 장인이 되고, 사회적 우정을 쌓고, 우리 자신의 ‘대화 문화’를 만들자고 호소합니다. 정직하고 끈질기고 용감한 대화는 불신, 분열, 폭력에 대한 해결책입니다. 대화는 우리 인간 가족이 부르는 형제애를 파괴하는 전쟁에 대한 주장을 처음부터 해체합니다. 아무도 이것에서 면제되었다고 느낄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 공동 책임입니다. 우리 모두는 용서하고 용서 받아야 합니다. 세계와 역사의 불의는 증오와 복수로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대화와 용서로 치유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이상과 우리가 함께 만들고 있는 여정에 대한 헌신을 고무시키기를 기도드립니다. 우리의 호소가 모든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우리에게 평화의 전령이 되기를 바랍니다.

로마, 카피톨리노 언덕.

2020년 10월 20일

 

“세상에 포용의 다리를 건설하는 가치 공유”

교종, 국제 적십자위원회 총재와 만남에서 확인

프란치스코 교종은 10월19일 국제 적십자위원회 피터 마우러 총재의 예방을 받고 전쟁과 폭력의 희생자들을 지원하는 적십자위원회와 바티칸 사이의 견해와 가치를 공유하고 특히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적십자의 활동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이날 만남 후 마우러 총재는 피에트로 파롤린 바티칸 국무장관과도 회담했다. 마우러 총재는 기자들에게 국제 적십자사위원회와 가톨릭교회는 세상에 포용적인 다리를 건설하는 국제사회의 비전을 개발하는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국제사회의 분열로 야기되는 취약계층과 이주민, 빈곤층과 전쟁과 폭력의 피난민들의 결과가 매우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2006년 은퇴. 현재 뉴욕에 사는 재미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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