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웹진 <인연>에 실린 글입니다.

 

#나는_낙태했다

지난 7일 형법상 낙태죄를 유지하며 기간에 따라 낙태 허용 여부를 달리하겠다는 한국 정부의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이 입법 예고되었다. 동시에 나의 타임라인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입장은 선명하게 나뉜다. 그러나 모두가 깊은 우려와 실망을 느꼈다는 점에서는 같다. 정부 개정안이 이렇게 엉성한 형태로 나올 것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개정안에 대한 반응은 대체로 예상대로 이어졌다. 나는 새삼 내 페이스북 친구의 폭이 아주 넓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어지는 우려와 실망, 의문과 비판의 목소리 속에 내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은 "나는 낙태했다"는 여성들의 고백이다. 많은 여성이 ‘#나는_낙태했다’라는 해쉬태그를 달고 자신의 낙태 경험을 고백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는 나와 같은 학교에 다니고, 같은 수업을 들으며 청춘의 한 시절을 같은 시기, 같은 공간에서 보낸 친구들의 이름도 있다. 스치는 인연이었지만 대학 시절이 지난 후에도 젊은 창작자로 용기 있게 걷는 그들을 응원했고, 그들의 작업을 줄곧 좋아했다.

"나는 낙태했다"는 지인의 고백 앞에 나는 어떤 위로도 건넬 수 없는 막막함을 느낀다. 그러나 어김없이 이 소식을 다룬 기사에는, 심지어는 당사자의 SNS에도 이들을 비난하는 댓글이 달린다. 요지는 “낙태가 자랑이냐?”는 것이다. 그러나 낙태가 자랑인 여성은 아무도 없다. 낙태를 하고 싶어서 하는 여성 또한 어디에도 없다. 나는 낙태죄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특히 우리 교회의 논의가 이 당연한 전제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했으면 좋겠다.

어떤 세상을 원하는가?

낙태죄 폐지에 찬성하는 것과 낙태에 찬성하는 것은 다르다. “여성들이 낙태를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길 바라지만, 낙태하는 여성을 처벌하는 세상을 원하지 않습니다.” 지난 10월 14일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이 발표한 낙태죄에 대한 천주교 여성 신자들의 목소리에서 인용한 것이다. 위 지지선언에 참여한 천주교 여성 신자들은 생명은 소중하다는 가톨릭교회의 입장이 아니라 낙태한 여성을 형법으로 처벌하는 것에 반대한다.

그러나 가톨릭교회는 완고하게 낙태한 여성은 죄인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형법으로도 처벌받아야 하는 죄인이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이 가능한 것은 ‘낙태는 살인이며, 낙태한 여성은 살인자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낙태죄 폐지에 반대하지 않는 것은 곧 낙태에 찬성하는 것처럼 몰아붙이기도 한다. 천주교 주교회의는 몇 년 전 ‘낙태죄 폐지 반대 100만인 서명 운동’을 펼친 결과 결국 100만 9577명의 서명지와 탄원서를 실제로 헌법재판소에 전달했다. 목표 달성을 위해 전국 각 본당에서는 서명 참여 독려가 이어졌다.

남성 성직자가 일말의 의심도 없는 목소리로 “낙태는 살인”이라고 말하는 동안 그 앞을 지키고 있는 수많은 여성 신자가 낙태를 경험했다. 첫째인데 딸이어서, 또 딸이어서, 더는 아이를 양육할 수 없기에, 아이를 온전히 키울 수 있는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여러 이유로 여성들은 임신을 중지했다. 평생 죄책감을 갖고 끊임없이 고해성사를 보며 살아가는 이들은 수십 년간 레지오마리애를 하고, 구역장을 지내고, 자모회 봉사에 참여하며, 주일에는 남들이 교중미사에 참례하는 동안 조리실에서 국수를 삶는 여성들이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낙태죄는 정말 생명을 살리는가?

가톨릭교회가 낙태의 형법상 처벌을 주장하는 이유는 낙태 처벌로 태아의 생명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러한지 짚어 볼 필요가 있다. 2017년 11월 29일 한국여성민우회 김진선 여성건강팀장은 <MBC> 라디오 ‘변창립의 시선집중’에서 “2016년과 2017년 WHO 연구 결과 임신중절을 금지한 지역이 합법화한 지역보다 중절률이 더 높았다”고 밝혔다. 또한 지난 11일 대구지방법원 류영재 판사는 <한겨레>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임신과 출산, 양육을 홀로 책임지도록 내몰린 여성들이 낙태죄 때문에 인공 임신중단 결정을 포기하는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처벌을 받을지언정 인공 임신중단을 한다. 부담해야 할 책임이 가혹할 만큼 크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낙태를 범죄화하는 것은 낙태를 감소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여성을 불법적이고 안전하지 않은 의료절차에 노출시켜 여성의 생명권과 건강권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 낙태죄가 두려워서 낙태하지 않는 여성은 없다. 그러나 불법화된 낙태로 생명을 잃는 여성은 있다. 낙태를 감소하는 결정적인 요인은 낙태의 처벌이 아닌 피임 접근성과 양육 인프라다. 출산과 양육은 여성의 삶과 깊게 결부된 일로 저소득층과 정보소외계층 여성은 더욱 쉽게 위험하고 힘든 상황에 내몰린다.

교회 안에도 이미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기보다는 출산과 양육을 위한 제도적 보완을 통해 생명을 살리자는 목소리는 존재한다. 여성이 안전하게 출산과 양육을 선택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라는 주장이다. 2019년 6월 16일자 <가톨릭평화신문>에 기고한 프로라이프여성회 배정순 대표 역시 “낙태율이 낮은 국가들은 임신과 출산, 양육에 대한 남성의 책임과 국가적 지원을 제도화함으로써 낙태를 예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가톨릭교회는 이미 미혼모, 미혼부 지원과 남성의 책임을 강화하는 ‘양육책임법’ 제정에 앞장서고 있고 이런 활동은 분명 의미 있고 소중하다. 태아를 보호하고, 생명을 살리는 더욱 실효성 있는 방법은 낙태 처벌에 있지 않고, 가톨릭교회 공동체는 충분히 출산과 양육에 관한 남성의 동등한 책임과 국가적 지원을 촉구할 역량과 의지를 갖추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모든 생명을 위해 교회의 접근법을 전격적으로 달리할 때라고 믿는다.

‘생명’ 담론의 공허함

지난해 헌법재판소의 결정 이후 ‘낙태가 형법상 죄가 아니어도, 교회법적으로는 죄’라는 카드뉴스를 읽었다. 당연히 어느 교회 조직에서 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 문구는 역설적으로 교회법적으로 죄라고, 형법상 죄가 되는 것이 아님을 인정하고 있다. 교회공동체에 바라건대 더는 교회법적 단죄를 넘어 대한민국 형법을 빌려서까지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겠다는 단호한 움직임을 멈췄으면 좋겠다.

낙태로 가장 괴로운 것은 낙태한 여성이다. 낙태 경험으로 평생을 죄책감 속에 살아가는 존재가 교회공동체 안의 낙태한 여성이다. 교회의 역할은 이들을 어떻게 처벌할 수 있을까 궁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평생에 걸쳐 상처받고 고통받는 이들을 품고 함께 갈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이 아닐까? 아무런 책임을 나누지 않으면서 낙태는 살인이라고 말하기는 얼마나 쉬운가? 이미 살아 숨쉬는 자들의 고통을 헤아리지 않으면서 생명의 소중함을 외치는 말은 얼마나 공허한가?

정다빈(멜라니아)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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