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호에 수달이 산다. 1990년대 중반, 11킬로미터의 방조제가 바닷물을 막았을 때 끔찍한 악취를 풍기던 시화호는 요즘 깨끗해졌다. 조력발전소에서 하루 두 차례 바닷물을 받고 내보내면서 시커먼 물속에서 썩어가던 어선도 말끔히 치워졌고 그 자리에 낚시꾼이 모인다.

원래 갯벌과 바다였던 시화호 자리를 방조제로 막아 담수를 모아 두면 인근 시화공단의 공업용수와 주변 농촌의 농업용수로 활용할 수 있으리라 개발자들은 홍보했다. 아니 그런 기대를 앞세우고 방조제를 막았지만 허사였다. 공장 폐수는 물론이고 농약에 찌든 오염수가 모이면서 불과 2년 만에 저주받은 호수로 전락했다. 시화 방조제를 강행했던 사람들은 그런 결과를 애초 짐작하지 못했을까? 환경단체마다 진작 예견했는데?

정부에서 시화호 수질을 개선하려고 많은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소용없었다. 시화호 일부는 개발되었다. 대부도를 잇는 도로로 활용되는 상황이므로 기왕 완성된 방조제는 돌이킬 수 없다고 합리화한 정부는 공업단지를 조성했다. 한술 더 떴다. 시화호 일부 구간에 조력발전소를 끼워 넣은 것인다. 그러자 수질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방조제 안쪽 물이 나가면서 한동안 바다 생태계가 뒤죽박죽 교란되었지만, 자연의 완충력으로 이내 회복되었고 담수 섞인 호수 안쪽 물 색깔이 바다와 같을 정도로 개선되었다. 그러자 수달이 나타났다.

시화호에서 수달을 볼 수 있다는 소문은 일본의 관광객을 끌어들였다. 우리보다 먼저 강둑 대부분을 콘크리트로 싸 바른 일본의 주요 하천은 자연성을 상실했고, 터전 잃은 수달은 사라지고 말았다. 우리나라처럼 일본도 조끼와 목도리를 위한 사냥으로 수달 수를 크게 잃었어도 명맥은 유지했는데, 콘크리트가 강의 생명력을 거세하자 멸종된 것이리라. 많은 일본인은 수달에 대한 추억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나 보다. 코로나19로 방문을 자제하지만, 시화호를 찾은 일본인들은 우리나라를 무척 부러워했다.

시화호 조력발전소 조감도(왼쪽)와 시화호 모습.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Pixabay)

기네스북에 등재된 새만금 방조제는 시화호보다 3배 넘게 길다. 수많은 축사와 드넓은 농경지에서 배출하는 오염수가 섞이는 동진강과 만경강은 방조제 안에 하구를 열어 놓는다. 바닷물 흐름이 차단된 거대한 호수로 두 하천에서 토해낸 물이 10년 넘게 모이면서 시화호보다 훨씬 막대한 예산을 퍼부어도 새만금의 수질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그 예산은 누가 어떻게 탕진했는지 예서 따지지 말자. 견딜 수 없었는지, 새만금도 결국 방조제를 개방해 살려내자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당연한 일이다.

새만금 이전에 기네스북에 올랐을 네덜란드 압술루트 방조제는 현재 바닷물이 자유롭게 왕래한다. 애초 그렇게 설계한 건 아니었다. 국토의 4분의 1이 해수면 아래에 있는 국가에서 거액의 예산을 들인 방조제 안에 바닷물을 드나들게 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오염과 악취를 버림받던 방조제를 관광용으로 전환한 것인데, 기대 이상의 효과가 나타났다. 낚시와 야영, 먹을거리 관련 산업이 들어섰고 어업이 되살아나면서 관광 명소로 거듭나는 게 아닌가. 예산을 축내며 나락을 헤매는 새만금은 어떤 길을 모색해야 할까?

다행히 전북지역의 시민단체와 종교계가 해수유통을 요구하며 민관협의회 구성을 제안하고 나셨다. 지금까지 퍼부은 예산과 노력이 소용없었다는 걸 30년 만에 인정한 환경부가 해수유통 발상을 꺼낸 이후의 일이다. 시민단체와 종교계는 “경쟁력 있는 새만금을 만들기 위해서 수질이 1-2등급은 돼야 한다”라며 환영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은 모양이다. “스마트 수변도시와 관광레저용지 특성을 고려할 때 현재 3등급인 목표 수질의 상향 조정이 필요”하다 덧붙였다고 언론이 보도했는데, 본질은 개발보다 회복이어야 한다.

이제까지 새만금 개발청에서 화려하게 덧칠해 온 도시개발은 가당치 않다. 인구 300만 대도시인 인천도 유지에 힘겨워 하는 송도신도시보다 훨씬 휘황찬란한 그림들은 유치하기 짝이 없다. 어떤 투자가를 속일 수 있겠나? 지구온난화가 심각해지면서 태풍과 해일이 전에 없이 거세지는 마당에 해수면보다 낮은 지반에 조성하겠다는 비행장도 터무니없다. 핵발전소 3기를 능가할 거라는 태양광발전 계획도 터무니없기는 마찬가지다. 숱한 사례를 돌아보라. 태양광 발전은 가정과 마을 단위가 적절하지 않은가?

34킬로미터가 넘는 방조제 일부를 뜯어내 해수유통이 자유롭게 개조한다면 바깥 바다가 오염되더라도 고통의 시간을 잠시 견디면 회복될 것이다. 방조제 내부에 해수가 하루 두 차례 밀고 썬다면 갯벌이 살아나면서 어패류를 맨손으로 수확하던 문화와 역사를 틀림없이 되살릴 수 있다. 하지만 그를 위한 연구는 조급하면 안 된다. 살아날 새만금 일원에 터 잡을 주민과 후손이 흔쾌히 받아들일 만큼 합리적이어야 한다. 투명하고 독립적이어야 할 뿐 아니라 심층적이어야 한다.

갯벌도 영토다. 철근콘크리트 건물들이 하늘을 찌르고 아스팔트 도로가 종횡으로 달리는 개발은 신기루다. 코로나19를 불러들이며 확산시켰다. 내일을 생각하며 차분해야 한다. 자본의 이윤보다 후손의 지속 가능한 생존을 먼저 생각한다면 콘크리트보다 생태계를 보전해야 한다. 해양생태계를 보듬으며 지구온난화를 예방하고 해양재난을 완충하는 해안은 예나 지금이나 전북의 자산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애써 무시해 왔던 시화호와 네덜란드의 경험을 상기하면서 마땅히 달라져야 한다.

새만금 방조제. (이미지 출처 = ko.wikipedia.org)
 
 

박병상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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