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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종 최신 강론말씀(9월 28일-10월 4일)
이 글의 원문에는 10월 4일 반포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형제애와 사회적 우애에 관한 회칙 '모든 형제들'(FRATELLI TUTTI)"에 대한 요약 내용이 있었습니다. 이 부분을 별도의 글로 편집해 게재합니다. 그 전에 글을 보신 독자들의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 편집자 주

 

(편집 : 장기풍)

“지도자의 권위는 공동선을 위한 봉사입니다”

프란치스코 교종, 10월4일 연중 제27주일 삼종기도 가르침

프란치스코 교종은 10월4일 연중 제27주일이자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을 맞아 성 베드로 광장 발코니에서 행한 삼종기도 가르침에서 이날 복음(마태 21,33-43)에 기록된 사악한 소작인의 비유를 성찰하면서 하느님께서는 오늘날에도 그분 포도원의 열매를 기대하고 계신다고 강조했다. 가르침 내용.

오늘 복음에서는 포도원 주인과 사악한 소작인의 비유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포도밭 주인은 수확기에 열매를 모으기 위해 종들을 보냅니다. 그러나 포도원 소작인들은 종을 구타하고 심지어 그들을 죽입니다. 주인은 더 많은 다른 종들을 보내지만 그들도 똑같은 대우를 받습니다. 결국 주인은 아들을 보내기로 결심하고 보냈습니다. 그러나 소작인들은 아들을 환영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를 제거함으로써 자신들이 포도원을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주인의 아들까지 죽이고 맙니다.

포도원은 하느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을 의미합니다. 종들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입니다. 아들은 예수님입니다. 선지자들이 거절당한 것처럼 예수님도 거절당하고 죽임당하셨습니다. 이 비유의 이야기의 끝에 예수님은 수석사제들과 원로들에게 "그러니 포도밭 주인이 와서 그 소작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40절)고 물으십니다. 그들은 “그렇게 악한 자들은 가차 없이 없애 버리고, 제때에 소출을 바치는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내줄 것입니다”(41절)라고 대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같은 ‘가혹한 비유’를 통해 그들이 자신들의 책임에 대면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훈계는 항상 적용됩니다.

오늘날에도 하느님께서는 계속 포도원에서 일하도록 보내신 일꾼들인 우리들의 열매를 기다리십니다. 어떤 시대에나 하느님 백성 가운데 권위를 가진 사람들은 하느님 일을 하지 않고 자신의 일을 하려는 유혹을 받을 수 있습니다. 포도원은 우리 것이 아니라 주님 것입니다. 지도자들의 권위는 봉사며 모든 사람의 이익과 복음전파를 위해 행사되어야만 합니다.

 

새 회칙 ‘Fratelli tutti’(모든 형제) 소개

프란치스코 교종은 삼종기도 가르침 후 자신의 새로운 회칙 ‘Fratelli tutti’(모든 형제)를 군중들에게 소개하면서 회칙이 수록된 소책자를 배포했다. 교종은 “어제 저는 형제애와 사회적 우정에 관한 새로운 회칙인 'Fratelli tutti'에 서명하기 위해 아시시를 방문했습니다. 저는 먼저 회칙 'Laudato si'(찬미 받으소서)에서 영감을 받은 새 회칙을 성 프란치스코 무덤에서 서명하고 하느님께 바쳤습니다. 시대의 징표는 성 요한 23세, 바오로 6세,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인간 형제애와 창조의 돌봄이 완전한 발전과 평화를 향한 유일한 길을 형성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성 프란치스코께서는 모든 종교의 신자와 모든 사람 사이의 교회에서 형제애의 여정에 동행하기를 바랍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교종은 이날 끝나는 ‘창조의 계절’을 상기시키면서 "오늘은 우리가 다양한 기독교 형제자매들과 함께 인류 공동의 집인 지구를 향한 희년을 기념하면서 지난 9월1일 시작된 창조의 계절을 마칩니다"라면서 세계 가톨릭 기후운동 대표, 다양한 ‘찬미받으소서’ 그룹 및 통합생태 육성을 위해 노력하는 협회를 환영했다. 또한 교종은 이날 스코틀랜드의 ‘스텔라 마리스’ 설립 100주년을 축하하면서 "이 기념일을 맞아 사제들과 자원봉사자들이 항구에서 교회의 존재, 해양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 어부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즐겁게 목격하도록 격려한다.“고 말했다.

 

새 복자 탄생과 스위스 근위대원 환영

프란치스코 교종은 주일 삼종기도 행사를 마무리하면서 전날 이탈리아 키오지아 교구 사제인 오린토 마렐라 신부 시복을 발표하면서 마렐라 신부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따르는 사제였다고 회고했다. 교종은 마렐라 신부는 가난한 자의 아버지이자 약한 자의 수호자로 그분의 놀라운 증언이 하느님 백성의 겸손하고 용감한 종으로 부름받은 많은 사제의 모범이 되기를 바란다며 새로운 복자 탄생 축하 박수를 이끌었다. 이와 함께 교종은 스위스 근위대 신병들 서약식에 참석하러 온 신병들의 가족과 친구들을 환영했다. 교종은 "이 젊은이들은 훌륭합니다! 이들은 2년, 3년, 4년 또는 그 이상 교회에서 봉사합니다. 이들에게 따뜻한 환영의 박수를 요청합니다“라며 박수를 유도했다.

 

"여러분은 봉사정신과 신앙교육의 모범입니다“

교종, 선서식 앞둔 스위스 근위대 신병 환영연설

프란치스코 교종은 10월2일 “베드로 후계자에게 청년시절을 봉사하기로 결정한 바티칸 근위대 신병들을 맞아 신앙 전수에서 가족의 중요한 역할을 강조했다. 교종은 "여러분 가족 구성원의 존재는 베드로 후계자인 교종에 대한 스위스 가톨릭 신자들의 헌신을 표현할 뿐만 아니라 부모가 자녀에게 기독교 신앙과 이웃에 대한 관대한 봉사정신을 물려준 도덕과 신앙교육의 좋은 모범을 표현합니다”라고 말했다. 전통적으로 스위스 근위대 신병 선서식은 5월6일 이루어진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19 비상사태로 10월4일 바티칸 성 다마소 정원에서 엄격하게 비공개 행사로 거행된다. 교종의 이날 연설은 선서식을 이틀 앞두고 신병들의 부임인사를 받는 자리에서 이뤄졌다. 연설 내용.

여러분의 선서식 전통은 ‘로마의 약탈’로 부르는 1527년5월6일의 비극적 사건과 얽혀 있습니다. 이날 신성로마제국 군대에 포위된 로마에서 147명의 스위스 근위대 병사들이 클레멘트 7세 교종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날은 또 다른 형태의 약탈자에 대비하라는 교종에 대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오늘 여러분과의 만남은 저에게 과거 역사를 회상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스위스 근위대가 교종을 용감하게 수호하고 목숨을 바친 ‘로마의 약탈’에 대한 역사입니다. 그 사건에 대한 기억은 ‘영적 약탈자’의 위험에 대한 경고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현재 사회적 맥락에서 많은 젊은이가 물질적 욕망이나 필요에만 반응하는 생활방식을 따를 때 영혼이 박탈당할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젊은 시절을 베드로 후계자에게 봉사하기 위해 바치기로 선택한 여러분들은 또한 신앙을 전하는 데 가족의 중요한 역할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가족의 존재는 가톨릭 신자들의 헌신을 표현합니다. 스위스에서 바티칸에서의 봉사를 자원한 것은 여러분 부모가 자녀에게 기독교 신앙과 타인에 대한 관대한 봉사정신을 물려준 신앙교육의 좋은 본보기입니다. 로마는 역사와 문화 및 신앙이 풍부한 도시입니다. 여러분은 이곳에서 문화적, 언어적, 영적 배경을 성장시키기 위해 제공되는 기회를 포착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이곳에서 보낼 시간은 여러분 인생에서 독특한 순간입니다. 형제애의 정신으로 살아가고, 의미가 풍부하고 즐거운 기독교인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서로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내일모레 하게 될 선서가 여러분의 세례성사 즉 당신을 인간과 기독교인, 당신 존재의 주인이라고 부르시는 그리스도께 대한 충실의 증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분의 도우심과 성령의 능력으로 삶의 장애물과 도전에 침착하게 맞서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항상 여러분 편에 계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저는 여러분이 항상 그분 위로의 임재를 느끼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캘커타의 성녀 데레사는 우리 각자는 인생이 끝날 때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지에 대해 심판을 받지 않을 것이며, 얼마나 많은 사랑을 쏟았는지에 대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하는 많은 일에 대해서뿐 아니라 어떻게 하시는 것에 대해서도 감사드립니다!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 무덤에서 새 회칙 ‘모든 형제’ 서명

프란치스코 교종은 10월3일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선종 794주년 기념일에 맞춰 아시시에 있는 그분의 무덤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새로운 회칙 ‘Fratelli tutti’(모든 형제)에 서명했다. 교종의 아시시 방문은 교종 취임 후 네 번째다. 형제애와 사회적 우정에 관한 가르침을 담은 새 회칙은 5년 전 출판된 ‘우리 공동의 집’을 돌보는 프란치스코 교종의 두 번째 회칙 ‘Laudato si'(찬미받으소서)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자동차 편으로 아시시로 이동한 교종은 도중에 스펠로에 있는 발레 로리아 수도원을 방문했으며 아시시 도착 후 성 클레어 원형 수도원을 잠시 방문해 수녀들과 만났다.

이날 프란치스코 교종의 미사와 회칙 서명식에는 인근 교구 추기경과 주교, 프란치스코 대성당과 천사의 집 신부, 수녀 등 소수 인원들이 함께했다. 미사와 서명식 마친 교종은 대성당에 연결된 수도원, 수녀원과 프란치스코 공동체를 방문하고 오후 귀환했다.

 

교종의 새 회칙 ‘모든 형제’ 내용 요약

바티칸은 프란치스코 교종의 새 회칙 ‘Fratelli tutti’(모든 형제) 전문을 발표하고 몇몇 중요 외국어 번역에 착수했다. 회칙은 총 8장과 결론으로 되어 있으며 일상적 관계, 사회, 정치제도에서 보다 공정하고 우애적인 세계를 건설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위대한 이상뿐 아니라 구체적으로 실행 가능한 방법은 무엇인가에 대해 모든 형제가 질문하고자 하는 내용들이다. 교종은 이를 ‘사회적 회칙’으로 정의하면서 제목은 모든 형제자매에게 복음의 풍미가 있는 삶의 형태를 제공하기 위한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의 ‘경고’에서 따온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회칙발표 동기와 내용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아시시의 성자 ‘포베렐로’는 ‘가난’의 교리를 강요함으로써 변증법적 논쟁을 하지 않았지만 하느님의 사랑을 전했다. 그는 ‘형제사회’의 꿈을 일으킨 열매 맺은 아버지였다. 회칙은 형제애와 사회적 우정에 대한 세계적 열망을 촉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인류 가족에 속한 공통된 것에서 시작하여 한 창조주의 자녀로서 모두를 형제로 인식하는 것부터 모두 같은 배에 있고 세계화되고 상호 연결된 세계에서 우리는 함께로만 구원받을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여러 차례 인용된 영감을 준 동기는 2019년2월 교종과 알 아즈할 대이맘이 서명한 인간 형제애에 관한 문서다.

형제애는 말로만 아니라 행동으로 장려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의 존엄성을 중심에 두고 모두를 위한 일을 보장하여 모든 사람이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금융이익에 종속되지 않고 공동선을 위한 ‘최선의 정책’이 구체화 되어야 한다. 자신의 능력, 포퓰리즘과 거리가 먼 근본적으로 인권을 공격하는 것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방법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기아와 인신매매를 확실히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정책을 수립하고 평화를 증진함으로써 보다 공정한 세계를 달성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는 전쟁의 부재일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참여하는 진정한 ‘장인’ 작업이다.

진실과 연결된 평화와 화해는 상호발전이란 이름으로 대화를 통한 정의를 목표로 ‘선제적’이어야 한다. 따라서 전쟁은 더 이상 가상의 ‘권리’ 형태로도 상상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핵, 화학 및 생물무기는 무고한 민간인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허용불가’로 정의되는 사형에 대한 거부도 강력하며, 용서에 대한 요구가 핵심으로 기억과 정의의 개념에 연결되어 있다. 존엄성, 하느님의 선물인 회칙의 배경에는 코로나19 전염병이 있다. 전염병은 이 회칙을 작성한 것처럼 예기치 않게 침입했다. 글로벌 보건 비상사태는 ‘아무도 홀로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과 우리가 모두 형제인 한 인간으로서 꿈꾸는 때가 실제로 왔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글로벌 문제는 ‘벽의 문화’가 아니라 글로벌 조치를 필요로 한다.

간단한 소개와 8개장으로 나뉘어진 회칙은 형제애와 사회적 우정에 대한 많은 성찰을 수집해 더 넓은 맥락에서 배치되었다. 또한 수많은 문서와 전 세계 많은 사람과 그룹이 보내온 편지와 문서에 나타난 폐쇄된 세계의 그림자에서 이 문서는 현 시대의 많은 왜곡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민주주의, 자유, 정의와 같은 개념의 조작과 변형, 사회와 역사에 대한 감각의 상실, 공동선에 대한 이기심과 무관심. 이익과 일회용 문화에 기반한 시장논리, 실업, 인종차별, 빈곤, 노예제, 인신매매, 낙태당하는 여성, 장기매매와 같은 권리의 불균형과 일탈. 이것들이 세계적인 행동을 필요로 하는 문제들이다. 또한 공포와 외로움으로 마피아 확산을 촉진하는 ‘벽의 문화’에 대한 경고다. 더욱 오늘날 대중매체가 어떤 방식으로 기여하는 윤리의 악화가 있다. 이는 타인에 대한 존중을 파괴하고 모든 겸손을 제거하여 고립되고 자기 참조적인 가상서클을 생성한다. 환상과 대화는 건설적이지 않다. 그러나 회칙은 희망의 선구자인 선한 사마리아인의 빛나는 모범으로 수많은 그림자에 반응한다.

두 번째 장은 ‘길의 이방인’이라는 인물에 바쳐진다. 고통에 등을 돌리고 약자와 연약한 사람들을 돌보는 데 ‘문맹’하는 병든 사회에 회칙은 이를 강조한다. 우리 모두는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서로 가까이 다가가도록 편견과 개인적 이익을 극복하고, 역사적 또는 문화적 장벽을 넘어 우리 모두는 쓰러지거나 고통받는 사람들을 포함하고 통합하고 구제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회를 만드는 공동책임이 있다. 사랑은 다리를 만들고 우리는 사랑을 위해 만들어졌다. 특히 기독교인들이 배제된 모든 사람 앞에서 그리스도를 인정하도록 촉구한다. ‘보편적인 차원’에 따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의 원리는 ‘열린 세상을 생각하고 생성’ 항목에서 다루어진다. 그 안에서 다른 사람들에게서 우리를 보편적인 친교로 향하게 만드는 사랑의 역동성에 따라 이웃에게 우리 자신을 개방하는 성장을 회상한다. 인간 삶의 영적 위상은 항상 처음에 사랑으로 정의되며 이기심과는 거리가 먼 다른 사람의 삶을 위해 최선을 찾도록 이끈다.

권리에는 국경이 없으며 국제관계의 윤리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형제적 사회는 ‘급진적 개인주의 바이러스’를 물리치고 모든 사람이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대화와 교육을 장려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가족의 보호와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교육사명’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되는 이러한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도구는 타인의 이익을 구체적으로 바라는 자비와 약점을 돌보는 연대가 아닌 사람에 대한 봉사로 표현되는 연대다. 이데올로기, 빈곤과 불평등과의 싸움, 존엄성을 가지고 살 권리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으며 권리는 국경이 없기 때문에 출생지와 상관없이 아무도 배제될 수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회칙은 ‘국제관계의 윤리’에 대한 생각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영토의 재화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거부되어 다른 곳에서 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유재산에 대한 자연적 권리는 창조된 재화의 보편적 목적원칙에 부차적일 것이다. 회칙은 또한 외채문제를 구체적으로 강조한다. 지불해야 한다는 원칙을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이것이 최빈국의 성장과 생존을 타협하지 않기를 바란다.

두 번째와 네 번째 장인 ‘전 세계에 열린 마음’은 부분적으로 이주라는 주제에 전념한다. ‘찢어진 삶’, 전쟁에서의 피난, 박해, 자연재해, 비양심적인 인신매매, 출신지역에서 벗어난 이주민은 환영, 보호, 성장으로 통합되어야 한다. 우리는 출신국가에서 존엄하게 살 수 있는 구체적 가능성을 만들어 불필요한 이주를 피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다른 곳에서 더 나은 삶을 추구할 권리도 존중되어야 한다. 수혜국에서 올바른 균형은 시민권 보호와 이주민 수용과 지원 보장 사이에 있을 것이다. 특히 심각한 인도주의적 위기에서 피난하는 사람들에게 ‘필수적인 답변’을 제시해야 한다. 비자발급을 늘리고 단순화해야 한다. 인도주의적 피난처 개방, 주택, 보안 및 필수 서비스를 보장해야 한다. 직업의 훈련기회 제공과 가족 재결합을 장려해야 한다. 미성년자 보호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사회적 통합을 촉진해야 한다. 또한 ‘소수자’라는 용어의 차별적 사용을 포기하고 ‘완전한 시민권’이란 개념을 확립하도록 초청했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모든 민족의 연대기반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장기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이주를 위한 국제협력이다. 이런 식으로 국가는 ‘인간가족’으로 생각할 수 있다. 우리와 다른 것은 모두를 위한 선물이자 풍요로움이다. 차이점은 성장가능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건강한 문화는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진정성을 제공하는 방법을 알고 환영하는 문화다. 다면체처럼 이미지 전체는 개별부분 이상이지만 각각의 가치는 존중된다.

다섯 번째 장 주제는 ‘최고의 정책’이다. 그것은 공동선을 위해 봉사하고 사람들의 중요성을 알고 있으며, 비교할 수 있는 개방된 범주로 이해되기 때문에 가장 소중한 형태의 자선 중 하나다. 그리고 대화는 어떤 의미에서 ‘대중주의’다. 이는 '사람'이라는 개념의 정당성을 무시하여 공감대를 형성하고 서비스를 이용해 이기심을 조장하여 인기를 높이는 '포퓰리즘'과 대조된다. 그러나 최선의 정책은 ‘사회생활의 필수 불가결한 차원’인 노동을 보호하고 모든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개발할 기회를 갖도록 하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최선의 도움은 돈이나 일시적 치료법뿐 아니라 일을 통해 그에게 품위 있는 삶을 제공하는 것이다. 진정한 빈곤퇴치 전략은 단순히 빈곤층을 억제하거나 무해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연대와 보조를 위해 그들을 성장시키는 것이다. 더욱 정치의 임무는 사회적 배제와 같은 기본적 인권을 공격하는 모든 것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장기매매 조직, 무기 및 마약 밀매, 성적착취, 노예노동, 테러리즘과 조직범죄 등은 인류에 대한 수치다. 또한 식량은 ‘양도할 수없는 권리’이기 때문에 굶주림을 완전히 제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부패, 비효율성, 권력 남용, 법에 대한 존중 부족을 개혁하는 유엔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인간의 존엄성에 중점을 둔 정책은 시장만으로는 모든 것을 해결하지 못한다. 금융 투기로 인한 ‘대량 실직’이 이를 입증한다. 그러므로 시민운동은 특별한 중요성을 갖는다. 그들은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참여에 관여해야 하지만 더 큰 조정을 받아야한다. 가난한 사람들을 ‘향한’ 정책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함께’ 및 ‘함께하는’ 정책으로 이동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회칙에 제시된 또 다른 희망은 유엔개혁에 관한 것이다. 단일국가의 권력을 취소하는 경제적 차원의 우위에 직면하여 실제로 유엔의 임무는 일을 통해 ‘국가의 가족’이라는 개념에 실체를 부여하는 것이다. 공동선을 위해 분노의 근절과 인권보호를 위해. 지칠 줄 모르고 협상과 중재에 나서야 한다. UN은 힘의 법칙보다 법의 강점을 장려하고 가장 약한 국가도 더 잘 보호할 수 있는 다자간 협정을 지지해야 한다.

여섯 번째 장인 ‘대화와 사회적 우정’에서 삶의 개념은 세계의 주변과 원주민들과도 모든 사람과의 ‘만남의 예술’로 등장한다. 사실 진정한 대화는 우리가 상대방의 관점, 그의 정당한 이익,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 존엄성의 진실을 존중할 수 있게 한다. 내재적 악을 금지하는 보편인 원칙과 도덕적 규범이 없으면 법은 단지 형식적인 부과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특정 역할은 인간의 약점을 악용하거나 우리의 최악을 이끌어내지 않고 최소한의 관대한 만남과 친밀함을 지향하여 인간가족에 대한 근접성과 감각을 촉진해야 하는 미디어에 속한다. ‘친절의 기적’은 현대에 널리 퍼져있는 ‘어둠 속의 별’과 잔인함, 불안, 산만한 긴박성으로부터의 해방이기 때문에 회복되어야 할 태도다. 친절한 사람은 건전한 공존을 만들고 분노는 다리를 파괴하는 길을 열어 준다.

일곱 번째 장인 ‘새로운 만남의 길’은 평화의 가치와 증진을 반영하며, 평화가 진리, 정의 및 자비와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복수에 대한 욕구와는 거리가 먼 선제적이며 타인에 대한 봉사와 화해와 상호발전을 추구하는 사회 형성을 목표로 하는 사회의 모든 사람은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평화는 모든 사람을 포함하는 ‘예술’이며 모든 사람이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평화의 임무는 휴식 없이 끝나지 않고 계속된다. 그러므로 인간과 그의 존엄성과 공동선을 모든 행동의 중심에 두는 것이 필요하다. 평화와 관련된 것은 용서다. 우리는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억압자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의 변화를 돕고 이웃을 계속 억압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불의를 겪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선물인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권리를 강력히 수호해야 한다.

용서는 무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와 기억을 의미한다. 용서는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다. 악의 파괴적인 힘과 복수에 대한 열망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자폭탄, 박해와 민족학살 등은 우리를 마취시키지 않고 집단적 양심의 불꽃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항상 기억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용서와 형제애를 선택한 사람들의 선을 기억하는 것이다. 7장의 일부는 전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것은 ‘과거의 유령’이 아니라 ‘지속적 위협’이며 모든 권리의 거부와 정치의 실패를 나타낸다. 악의 세력에 대한 수치스러운 항복과 심연, 특히 많은 무고한 민간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핵, 화학과 생물무기로 인해 오늘날 우리는 과거와 같이 더 이상 ‘정당한 전쟁’ 가능성을 생각할 수 없다. "더 이상 전쟁은 없다!"를 강력하게 재확인해야 한다. 모든 갈등이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제3차 세계대전’을 경험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핵무기의 완전제거는 ‘도덕적이고 인도주의적 명령’이다. 군비에 투자된 돈으로 기아를 없애기 위해 세계기금이 설립되어야 한다.

이와 함께 회칙은 사형제도에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표명했다. 그것은 용납될 수 없으며 전 세계적으로 폐지되어야 한다. 살인자도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는다. 하느님이 그의 보증인이다. 따라서 처벌을 복수로 보는 것이 아니라 치유와 사회적 재통합 과정의 일부로 보고 수감자의 인간 존엄성을 존중하면서 감옥의 상태를 개선하라는 두 가지 권고는 종신형을 고려하는 것이다. 생명의 신성함을 존중할 필요가 있음이 재확인되었으며, 오늘날 인류의 특정부분은 소모성인 것에 있다. 예를 들어 태어나지 않은 사람, 가난한 사람, 장애인, 노인 등이 있다.

8장과 마지막 장에서 교종은 ‘세상에서 형제애를 섬기는 종교’에 대해 언급하고 폭력은 종교적 신념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변형에 있다고 반복했다. 따라서 테러리스트와 같은 행위는 종교 때문이 아니라 종교적 텍스트에 대한 잘못된 해석과 굶주림, 빈곤, 불의, 억압 정책 때문이다. 테러리즘은 세계 안보와 평화에 반대하는 국제범죄이므로 비난받아야 한다. 돈이나 무기, 언론보도로 지지해서는 안 된다. 동시에 교종은 종교 간 평화의 길은 가능하며 따라서 모든 사람의 기본적 인권인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회칙은 교회의 역할을 지적했다. 교회의 사명을 민간 부문에 맡겨서는 안 된다. 즉 종교는 사회의 경계에 있지 않으며 정치에 관여하지 않지만 정치적 존재의 차원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공동선에 대한 관심과 완전한 인간개발에 대한 관심은 복음주의 원칙에 따라 인류와 인간이 교회에 관심을 갖는 모든 것에 관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회칙은 종교 지도자들이 평화를 구축하는 데 ‘진정한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강조하고 교종이 2019년 2월4일 아부다비에서 서명한 ‘세계평화와 공존을 위한 인간 형제애에 관한 문서’를 인용했다. 교종은 알 아즈할 대이맘과 종교 간 대화 이정표에서 인간 형제애 이름으로 대화가 하나의 방법으로 채택되고 공동협력이 행동으로 실천돼야 한다는 호소를 전 세계에 외쳤다. 회칙은 마틴 루터 킹, 데스몬드 투투, 마하트마 간디 그리고 무엇보다 ‘보편적 형제’가 되기 위해 최소한의 사람과 동일시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모델인 복자 샤를 드 푸코 기억으로 마무리된다. 문서의 마지막 줄은 두 개의 기도에 맡겨 있다. 하나는 창조주에게, 다른 하나는 ‘에큐메니칼 기독교인’이다. 그래서 ‘형제의 영’이 사람들 마음속에 머물 수 있다.

 

“사회적 경제적 바이러스 치료법도 필요”

프란치스코 교종, 9월30일 수요 일반접견 교리교육

프란치스코 교종은 9월30일 오전 바티칸 성 다마소 정원에서 열린 수요 일반 접견 교리교육에서 코로나뿐 아니라 오늘날 사회구조를 공격하는 여러 바이러스에 대해 언급하면서 ‘연대’와 ‘참여’의 사회를 구축하여 부드러움을 가지고 바이러스를 물리치기 위해 함께 전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교종은 오늘이 교회의 아버지(교부 敎父)이신 성 예로니모 축일임을 상기시켰다. 가르침 내용.

오늘날 코로나 전염병은 인간이 만들어 낸 심오한 불의를 더욱 명확하게 드러냄으로써 세계의 불평등을 분명히 보여 주었습니다. 대유행 이전의 ‘정상’이란 결국 ‘병들어 아픈 것’들이였습니다. 우리는 그 ‘정상’이라는 상태로 결코 되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작은 바이러스는 계속해서 깊은 상처를 일으키고 우리의 신체적, 사회적, 영적 취약성을 드러냅니다. 그것은 기회, 상품, 건강, 기술, 교육에 대한 접근의 불평등과 같은 세계를 지배하는 큰 불평등을 드러냈습니다. 수백만! 수백만! 아이들이 학교에 갈 수 없습니다. 이러한 불의는 자연스럽거나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현상은 인간이 만든 결과이며, 가장 깊은 가치관에서 분리된 성장모델에서 나왔습니다. 식사의 낭비, 남은 식사의 낭비, 그 낭비로 모든 사람을 먹일 수 있습니다. 낭비로 인해 많은 사람이 희망을 잃고 불확실성과 고통이 증가했습니다. 우리는 소유의 염려와 이기심에 스스로 사로 잡혀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결코 기계적으로 전염병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인공지능은 중요하지만 어떠한 가장 정교한 수단도 한 가지는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님 임재의​​ 신호’인 부드러움을 공급하는 것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뿐 아니라 인간 탐욕의 결과로 인해 발생한 세계를 괴롭히는 여러 가지 악을 효과적으로 근절할 수 있는 완전한 치료가 필요합니다. 특히 불공정한 성장을 바탕으로 한 현재의 경제모델은 사람들이 사회적, 경제적 전염병에서 벗어나도록 도울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전염병에서 벗어나려면 코로나 바이러스뿐 아니라 인간 및 사회, 경제적 바이러스에 대해서도 확실한 치료법을 찾아야 합니다! 결코 감추지 말고 표시 나지 않도록 페인트하지 마십시오. 불공정하고 지속 불가능한 개발의 기초가 되는 경제모델로는 결코 우리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어떤 거짓 예언자들이 결코 오지 않을 ‘연쇄효과’를 계속 약속하더라도 절대 그렇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사회, 경제적 바이러스에 저항한다는 것은 최소한 다양성을 존중하고 모든 사람을 고려하여 친교를 강화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무관심과 착취와 특정한 이익보다는 참여, 보살핌과 관대함이 보상되는 사회조직 시스템을 설계하고 좋은 정책을 생성하기 위해 긴급히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부드러워야 합니다. 지원적이고 공정한 사회는 훨씬 건강한 사회입니다. ‘마지막’이 ‘첫 번째’로 간주되는 참여형 사회는 친교를 강화합니다.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는 모든 유형의 바이러스에 훨씬 더 저항력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가 예수님이 제시하신 ‘공동성’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세상을 구원하고 치유하시는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계속 함께 걸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 제자로서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을 선택하고, 재화의 사용을 재고하며, 공동가정을 돌봄으로써 그분의 발자취를 따를 수 있습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전염병 한가운데서 우리는 교회의 사회교리 원칙에 닻을 내리고 신앙, 소망, 사랑의 인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큰 꿈을 꾸고 분열과 상처를 주는 비열함을 물리치고 새롭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도록 격려하는 변혁의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위대한 학자이자 ‘교회의 아버지’(교부)이신 성 예로니모 축일입니다. 예로니모 성인의 모범은 모든 사람에게 성경에 대한 새로운 사랑과 하느님의 말씀과 개인적인 대화를 나누며 살고자 하는 열망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사랑에 깊이 빠져 성경을 공부하시오”

교종, 성 예로니모 선종 1600주년 기념 사도서한 발표

프란치스코 교종은 교회의 위대한 학자이자 아버지인 성 예로니모 선종 1600주년을 기념하는 사도서한을 발표했다. 교종은 사도서한에서 예로니모 성인은 교회에 “성경에 대한 헌신, 하느님의 기록된 말씀에 대한 '살아 있고 부드러운 사랑'을 물려주었다”고 강조했다. 사도서한 내용.

성경에 대한 심오한 지식과 가르침을 세상에 알리고자 하는 성 예로니모의 열성은 텍스트 해석자로서의 전문지식과 기독교 진리에 대한 열렬하고 때로는 성급한 방어, 그분의 금욕주의와 가혹한 규율, 관대하고 민감한 영성으로서의 성서에 대한 헌신의 모든 것은 그분이 선종한 지 16세기가 지난 21세기 기독교인들인 우리에게 영속적인 인물로 남게 하였습니다. 4세기 성인인 예로니모의 삶은 전적으로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에 헌신하신 삶입니다. 그분은 거룩하고 신성한 글을 다른 사람들이 배우고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특히 그분의 하느님께 대한 절대적이고 엄격한 헌신과 순전히 기독교 신비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목표로 하는 부지런한 연구에 대한 열정입니다. 성 예로니모는 성경의 서사와 시적인 천재성보다는 하느님 계시의 겸손한 성품에 초점을 맞춘 성경 사랑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예로니모 성인은 다른 초기 기독교 교부들보다 훨씬 더 체계적이고 독특한 방식으로 성경에 접근하여 그리스도를 알기 위해 성경을 알아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분의 성서연구는 하느님 자신과 계시된 메시지를 해석하는 살아 있는 전통을 대표하는 교회 사람들 모두에 대한 순종에 흠뻑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순종'은 이미 알려진 것을 단순히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말한 내용을 이해하려면 적극적인 개인적 노력이 필요합니다. 순종에 깊이 빠져 성경을 공부하십시오. 많은 사람은 성경을 읽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글을 몰라서가 아니라 성스러운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해설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성 예로니모가 우리의 해설자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모든 독자를 예수님의 신비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성 예로니모가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한 것은 서양문화를 형성하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분의 번역 작업은 모든 문화의 가치와 긍정적인 형태가 교회 전체를 풍요롭게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또한 성경은 각 문화와 세대에 걸쳐 지속적으로 언어적, 정신적 범주로 번역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그분은 ‘환대’의 한 형태로서 번역의 중요성을 설명합니다. 그분은 “번역자는 다리 건설자”라고 했습니다. 즉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의 의사소통뿐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도록 돕습니다. 성 예로니모는 로마와 교종에 대한 깊은 헌신으로도 유명했습니다. 교회의 이음새가 없는 옷이 기독교인들 사이의 분열로 인해 종종 찢어지는 격동의 시대 그분은 베드로의 위상을 확실한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은 신앙을 위해 종종 격렬한 논쟁에 연루되었습니다. 그분은 종종 큰 열정으로 이를 수행했습니다. 그분은 신앙을 위해 기꺼이 싸우려고 했지만 평화를 사랑하고 원했습니다.

오늘날도 어느 때보다 자비와 평화의 약이 필요합니다. 저는 모든 사람에게 성서에 대한 사랑과 공부에 대한 헌신의 모범으로 성 예로니모를 기준으로 삼으라고 호소합니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도전을 권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유산을 탐구하기 시작하십시오. 기독교는 당신이 소유권을 가져야 하는 탁월한 문화유산의 상속인이 됩니다. 역사에 대한 열정을 가지십시오. 예수님 비유말씀에 나오는 상인처럼 값진 진주를 사기 위해 가진 모든 것을 팔았던 젊은 예로니모에게 시선을 고정하십시오. 우리가 그분이 사랑한 것을 사랑하고 그의 저작을 재발견하고, 그의 견고한 영성에 감동을 받도록 희망합니다. 성 예로니모는 복되신 성모 마리아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는 모델입니다. 누구보다 하느님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시는 성모님께 자신을 맡기십시오. 성모님은 지칠 줄 모르고 우리 삶에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시는 분입니다.

한편 성 예로니모는 서기 420년 9월30일 80세로 베들레헴 수도원에서 선종했다. 그의 유해는 현재 로마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에 안장되어 있다.

 

"사람이 있는 곳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

2021년 세계 홍보주일 주제 ‘와서 보라’ 선정

프란치스코 교종은 2021년 5월16일 ‘세계 홍보주일’ 주제로 요한복음 1장46절에 나오는 사도 필립보의 말을 인용해 ‘와서 보시오’로 선정하고 부제로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의사를 소통하고 만남“을 강조했다. 메시지 내용.

“와서 보시오”(요한 1,46)라는 말씀은 복음의 중심입니다. 복음이 선포되기 전에 말보다 먼저 외모, 간증, 경험, 만남, 친밀감. 한마디로 인간의 ’삶’이 있습니다. 여기 완전한 복음구절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갈릴리로 떠나기로 결정하신 다음 날 필립보를 만나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필립보는 안드레와 베드로와 같은 마을인 벳사이다에서 왔습니다. 필립보는 나타나엘을 찾아 그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선지자들이 기록한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를 찾았습니다.” 나다나엘이 반문합니다. “나사렛에서? 그곳에서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이에 필립보는 “와서 보시오”라고 대답했습니다.

코로나 대유행으로 인해 사회적 거리를 두어야 하는 시대에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획기적인 변화에서 의사소통은 필수사항임을 인식하고 사물의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데 필요한 친밀함을 가능하게 할 수 있습니다. 진실을 경험하지 않으면, 만나지 않으면,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에 동참하지 않으면 우리는 진리를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당신이 있는 곳에서 당신을 만나신다"는 옛말이 우리에게 지침이 될 수 있습니다. 교회 미디어나 커뮤니케이션 작업에서 첫 번째 제자들이 그들을 만나고 그들을 따르도록 초대하신 예수님과 함께 우리는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모든 형태의 모든 미디어를 사용하라는 초대를 받았습니다. 있는 그대로 그리고 어디에 살고 있든지 말입니다.

 

“바티칸 근무 이탈리아 공안경찰 격려”

교종, ‘성 베드로 공안특별실’ 창립 75주년 기념

프란치스코 교종은 9월28일 바티칸에서 근무하는 이탈리아 공안경찰 75주년을 맞아 이들을 격려하고 감사를 표했다. 이날 바오로 6세 홀에서 열린 행사에는 이탈리아 내무장관 루시아나와 경찰서장 가브엘리를 비롯한 2500여 경찰과 가족이 참석했다. 교종은 이들의 임무는 1929년 바티칸과 이탈리아 사이에 맺어진 라테란 조약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1945년3월 순례자와 관광객을 위한 ‘성 베드로 공안특별실’이 창설되었다고 회고했다. 특히 교종은 1943년 9월부터 1944년 6월4일까지 독일군이 로마를 점령한 9개월의 힘겨웠던 기억도 언급했다.

교종은 “당시 독일 측에서는 교종과 바티칸 시국의 주권과 중립성을 존중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으며, 점령기간 내내 성 베드로 광장에 그어진 이탈리아와 바티칸 시국 간의 경계선은 긴장과 두려움의 장소가 되어 신자들은 기도하러 성 베드로 대성전에 쉽게 들어갈 수 없었고, 많은 경우 단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로마 탈환 후 ‘전쟁은 양심에는 깊은 상처를, 거리에는 잔해를, 가정에는 가난과 고통을’ 남겼지만 로마인들과 로마에 올 수 있었던 순례자들은 ‘시민들의 수호자’로 선포된 비오 12세 교종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성 베드로 대성당에 갈수록 많이 몰려왔습니다.”라고 회고했다.

이와 함께 교종은 그 후 국가비상사태와 불안정한 시절이었던 1945년 3월 바티칸 보안경찰대가 창설돼 수많은 순례자의 안전을 보장하고 돌보게 됐으며, 이들은 교종의 안전과 공공질서를 담당하는 바티칸 기관인 스위스 근위대와 바티칸 국가헌병대와 협력, 이탈리아와 바티칸을 위한 중요한 봉사업무를 수행했다고 치하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이들이 자신을 비롯해 이탈리아 내 사도적 순방에 함께하는 동행자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이들의 ‘힘겨운 업무’에 감사하면서 성실, 전문성, 희생정신으로 봉사하는 데 깊이 감사했다. 또한 교종은 이들이 다른 문화와 다른 지역 출신 사람뿐 아니라 성직자들도 대하는 의무를 실천하는 인내를 칭찬하면서 이 같은 특별한 봉사에 종사하는 바티칸 보안경찰 요원들과 책임자 및 가족들에게 감사했다. 교종은 “여러분의 업무는 가장 인간적이고 영적인 드높은 가치를 지속적으로 상기하는 일입니다. 그 가치들은 여러분이 매일 받아들이고 증거해야합니다. 희생과 위험을 무릅쓰며 완수한 여러분의 노고가 활기찬 그리스도 신앙으로 고무되기를 바랍니다.”라고 치하하면서 이들의 수호성인 성 미카엘 대천사에게 바치는 기도와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을 지켜주시도록’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전구를 청하자며 연설을 마무리했다.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2006년 은퇴. 현재 뉴욕에 사는 재미동포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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