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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뒤'를 따르는 길[유상우 신부] 9월 20일(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지혜 3,1-9; 로마 8,31ㄴ-39; 루카 9,23-26
성 김대건 안드레아(왼쪽)와 성 정하상 바오로(오른쪽 위)와 동료 순교자들 성화.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우리나라의 순교 성인들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순교라는 정말 숭고한 말이 우스갯소리가 되어 버렸습니다. 작년 10월에 한 저명한 목사님이 자신에게 기름 부음이 임했다며 ‘하나님 꼼짝 마,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라고 한 사실이 다시 한번 부각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 그 발언이 있기 전 ‘대한민국은 10년간 자기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고 이미 서두를 꺼내기도 했습니다. 지난 강론 때 이미 언급해서 다시 이야기하기가 머뭇거려졌지만 순교라는 신비를 다시 생각해 보는 이번 주일, 이 목사님이 떠오르는 건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꼼짝할 수 없게 만들 능력이 있는 이 목사님은 얼마 전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치료를 받은적이 있지요. 완치 판정을 받고 퇴원한 이 목사님은 이번 달 초 퇴원하자마자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그리고 기자회견에서 지금 정권의 사과를 요구하며 모든 언론의 주목을 받을 한마디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모든 언론은 일제히 이걸 보도했습니다. “순교할 각오도 돼 있다.” 현재 이 목사님은 보석이 취소되어 다시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자신이 순교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순교라는 말이 전면적으로 대두되는 이번 주일 전례에 우리는 순교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순교는 죽음을 전제로 합니다. 생명을 주시는 주님을 위하여 생명을 포기한다는 것이 얼마나 역설적인 현상일까요? 가장 중요한 생명을 포기한다는 것이기에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가 바로 순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이 던지신 첫마디는 바로 ‘내 뒤를 따라오려면’(마태 9,23)입니다. 순교는 영웅심리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주님의 뒤를 따르는 길입니다. ‘자신을 버리고’라는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순교는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진정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지만 자신을 비우시어 사람이 되신 주님처럼, 자신의 본성을 포기하고 하느님의 길을 따르는 것이 바로 순교입니다.

나누고 싶은 글이 많지만 오늘은 이만 줄이려고 합니다. 우리나라 순교성인들의 축일을 맞아 순교라는 신비로운 가치가 더 이상 더렵혀지지 않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리 2,6-8)

 

유상우 신부(광헌아우구스티노)

부산교구 감물생태학습관 부관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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