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사이에 두 개의 큰 태풍이 부산과 동해안을 덮쳤습니다. ‘마이삭’과 ‘하이선’ 태풍으로 잔혹했던 한국 핵발전사에서도 그 유례를 찾기 힘든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지난 9월 3일 태풍 ‘마이삭’으로 고리 핵발전소 3호기와 4호기가 계전기 고장으로 핵반응로(원자로)가 정지되었습니다. 신고리 핵발전소 1, 2호기는 소외전원 상실로 핵반응로가 정지되고, 비상디젤발전기가 가동되었습니다. 영구정지와 계획예방정비로 멈춰 있던 고리 핵발전소 1호기와 2호기도 소외전원 상실로 비상디젤발전기가 가동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9월 4일, 고리 핵발전소 3, 4호기도 소외전원이 상실되어 비상디젤발전기가 가동되었습니다. 그나마 가동이 멈추지 않은 신고리 핵발전소 3, 4호기 역시 터빈실 지붕이 날아가고, 보조변압기에서 정전이 일어나는 등 자연재해에 취약한 핵발전소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핵발전소는 전기를 만들어내는 시설이지만, 전기가 반드시 필요한 시설입니다. 이에 핵발전소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발전소 외부에서 전력을 끌어다 쓰고 있는데, 이것을 ‘소외전원’이라고 부릅니다. ©장영식

태풍 ‘마이삭’에 이어 9월 7일 태풍 ‘하이선’이 ‘마이삭’과 비슷한 방향으로 동해안을 덮쳤습니다. 이 태풍으로 경주 월성 핵발전소 2, 3호기의 터빈이 정지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울진의 한울 핵발전소 1, 2호기의 액체폐기물처리계통에서는 방사선 경보가 발생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핵발전소가 약간의 시간 차이로 동시에 멈춘 사고에 대해서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 대표인 김영희 변호사는 “이번 고리핵발전소 소외전원상실 사고는 국내 핵발전소가 송전망, 전력계통의 안전성이 부족하여 중대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 주는 심각한 사고입니다. 또한 우리나라의 다수호기 핵발전소가 한 지역에 밀집해 있기 때문에 사고 위험성이 훨씬 높다는 것도 보여 줍니다”라며 “6기 핵발전소가 가동이 중단되거나 외부전원이 상실되었다는 점에서 정말 엄청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강력했던 두 태풍이 부산과 동해안을 덮쳤습니다. 이 태풍들로 고리 핵발전소와 월성 핵발전소가 멈췄습니다. 한울 핵발전소에서는 방사능 유출이 의심되기도 했습니다. 잔혹했던 한국 핵발전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사고였음에도 아직도 정확한 사고 원인을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장영식

사상 초유의 핵발전소 6기의 정지 사고에 대해 한국수력원자력은 8일 오후 보도자료를 내고 “원전에 근접한 강력한 태풍에 의해 높은 파도와 강풍의 영향으로 다량의 염분이 발전소 부지 내의 전력설비에 유입돼 고장이 발생했다”고 밝혔습니다. 외부와 전기를 주고받는 송수전 관련 설비에 염분이 유입돼 고장이 나자 발전설비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동작해 발전이 자동 정지됐다는 것이 한국수력원자력 측의 설명입니다. 그러나 이 보도자료를 본 시민들은 냉소적입니다.

한 시민은 “바닷가에 바다 염분 당연한 것 아닌가요. 아니면 한강 옆에 짓던가”라고 말하고, 또 다른 시민은 “바다가 염분이 있는 게 당연한데 바다 앞에 발전소 지어 놓고 무슨 말이랴요”라며 비웃었습니다. 어떤 시민은 “태풍으로 비가 많이 오면 염도는 낮아집니다. 태풍이 올 때 염분이 문제가 되는군요. 첨 듣네요”라며 한국수력원자력의 발표를 믿지 못하겠다“라며 “그러므로 바닷가에 지은 핵발전소는 모두 폐로함이 안전하겠다는 결론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김영희 변호사는 “바닷가는 원래 소금으로 인한 부식 등 소금기가 문제가 되기 때문에 핵발전소는 이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합니다. 태풍으로 송전탑이 무너진 것도 아니고, ‘태풍에 의해 높은 파도와 강풍 영향으로 다량의 염분이 핵발전소 전력설비에 유입되어 고장이 발생했다’는 건 바닷물이 결국 전력설비를 덮쳤다는 것으로 해석이 되네요. 그럼, 왜 바닷물이 전력설비를 덮치지 못하도록 방수문과 방벽을 설치하지 않았는지? 이걸 굳이 '염분' 때문이라고 하고 '침수'사고는 아니라고 하는지? 그보다도 이런 '추정'을 어떻게 믿으라는 건지? 다른 더 중대한 결함이 있는데 숨기고 있는지, 시민들이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외부 조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탈핵부산시민연대는 9월 9일 부산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폭우와 태풍으로 인한 핵발전소 피해상황을 시민들이 직접 확인하고, 원인과 후속조치 상황이 올바로 확인되고 이행될 수 있도록 민관합동 진상조사단 구성을 촉구"했습니다. ©장영식

이번 사고가 염분 때문이라는 한국수력원자력의 발표는 핵발전소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기관으로서는 믿을 수 없는 블랙코미디 같은 발표입니다. 마치 1987년 고 박종철 열사의 사인에 대해 고문 경찰 세력이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라는 발표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다시 한번 핵발전소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고에 대해 투명한 정보공개가 요구됩니다. 한국수력발전의 발표를 신뢰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폭우와 태풍으로 인한 핵발전소 피해 상황을 시민들이 직접 확인하고, 원인과 후속 조치 상황이 올바로 확인되고 이행될 수 있도록 민관합동 진상조사단 구성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핵발전소의 사고는 인류의 재앙이기 때문입니다.

장영식(라파엘로)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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