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어 미사통상문, '모든 이를 위하여' 유지한 채 출판

단 두 단어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 시대의 개혁 방향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해 준다.

이 두 낱말은 이번에 나온 새 이탈리아어 미사통상문에 들어 있는데, 프란치스코 교황이 승인한 것으로, 2021년 부활주일부터 쓰인다.

이 기도문에서 미사 중에 사제는 빵과 포도주를 앞에 두고 하는 감사 기도에서 (언제나 그래왔듯이) “이는....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per tutti) 흘릴 피다”라고 한다. “많은 이를 위하여(per molti)”가 아니고.

사실, 이탈리아 주교들은 이번 판 기도문에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65)에서 승인된 전례 개혁 이후로 폭넓게 쓰여 온 라틴어 구절 “pro multis”(많은 이를 위하여)를 “모든 이를 위하여”로 번역해 써 오던 것을 그대로 지켰을 뿐,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아주 의미가 깊다. “pro multis”를 어떻게 번역하느냐는 지난 수십 년간 격렬한 토론 주제였기 때문이다.

바티칸공의회에 따라, 많은 나라에서는 라틴어 미사경본을 각자의 나라말로 번역하면서 “모든 이를 위하여”에 해당하는 표현을 썼다. 비록 2001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때 교황청 경신성사성이 전례문 번역에 관한 훈령 ‘진정한 전례’에서 전례문을 라틴어에서 번역할 때는 “그 내용을 하나도 빠트리거나 더함이 없이, 가장 정확하게” 해야 한다고 한 뒤로 사정이 변하긴 했기는 말이다. (역자 주- 이때 교황청은 아주 엄격히 “단어 대 단어”로 번역할 것을 고집했다.)

(논란이 일자) 특히, 교황청은 2006년에는 라틴어 “pro multis”는 “많은 이를 위하여”로 번역되어야 한다고 정리했는데,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이 관점을 유지하고 있었다.

현재 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권 미사통상문에서는 “많은 이를 위하여”에 해당하는 말이 쓰이고 있다. 그럼에도, 이탈리아 주교들은 로마의 이러한 주장에 저항하여, 2011년에 “모든 이를 위하여”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압도적인 투표로 결정했다. 그것이 이번에 새로 인쇄되는 이탈리아어판 미사통상문에 “모든 이를 위하여”로 되어 있는 까닭이다.

(역자 주- 한국교회는 ‘진정한 전례’의 지침에 맞춰 2017년에 개정판 ‘로마 미사경본’과 ‘미사통상문’ 등을 발간했다. "모든 이를 위하여"가 "많은 이를 위하여"로 바뀌었다. 개정판 출판 뒤인 9월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전례문 번역의 방향을 전환한 자의교서 ‘대원칙’이 나왔으나, 한국교회는 예정대로 그해 대림절부터 개정판을 쓰기 시작했다.)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미사 집전하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 (사진 출처 = thetablet.co.uk)

이 논쟁의 핵심에는 중요한 신학적 문제가 있다.

“모든 이를 위하여”라고 번역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이를 위하여 죽었다는 진리를 반영한다. 반면에 “많은 이를 위하여”라고 번역하면, 구원에는 각 개인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진리를 반영한다. 마태오 복음 26장 28절과 마르코 복음 14장 24절에는 각기 “많은 이를 위하여” 흘려지는 그리스도의 피에 대해 언급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직무 수행에서 줄기차게 이어지는 주제는 하느님의 자비는 모든 이를 껴안으며, 교회는 모든 죄인을 환영하는 야전병원이라는 것이다. 그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다. “모든 이를 위하여”는 문자적으로만 보자면 라틴어 원문을 완전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의 희생은 인류 전체를 위한 것이라는 가르침을 더 잘 반영하는 것이고, 또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결정과 일치하는 것이다.

교회의 오랜 라틴어 격언이 이 번역 문제가 왜 중요한지 설명해 준다. “lex orandi, lex credendi.” - 기도하는 규범이 믿는 규범이다.

지난 8월 28일, 바티칸의 교황도서실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새 이탈리아어판 미사통상문을 이탈리아 주교회의 의장 괄티에로 바세티 추기경이 이끄는 남녀 전례 전문가들로 이뤄진 대표단에게서 받았다.

이탈리아 교회의 전례 책임자인 클라우디오 마니아고 주교는 교황이 대표단에게 전례서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개혁을 구현해야만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전례에서 각국의 현지어 사용을 허용한 이후로, 전 세계 주교들은 그때까지 쓰던 라틴어 전례문을 각자의 나라말로 번역하는 과제를 받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번역문을 수정 보완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그리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베네딕토 16세 하에서는, 교황청은 (번역상 낱말뿐 아니라) 이 절차 자체를 중앙집권화하려 애썼다.

이 때문에 우리는 프란치스코 교황 하에서 또 다른 큰 전환을 겪고 있는데, 이 전환은 단지 번역상의 낱말 선택뿐 아니라 그 번역을 교황청이 승인하는 절차 자체에 대한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7년에 자의교서 ‘대원칙’을 발표하여 라틴어 전례문을 각국어로 어떻게 번역할지에 대해 각국 주교회의에 더 큰 권한을 줬다.

‘대원칙’에서는 (2001년의 ‘진정한 전례’에서) 각 주교회의 번역문의 모든 측면을 교황청이 일일이 확인해 승인하도록 했던 조항들을 제거했다. 대신에 교황청의 역할은 각 주교회의가 승인한 번역문을 검토(해서 인준)하는 것으로 줄었다. 핵심은, 이로써 교회는 지역 주교들이 더 큰 권한을 갖도록 길을 깔았던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에 더 가깝게 된 것이다. 프란치스코 개혁의 핵심 요소는 건강한 분권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의 개혁 방향을 “선언”한 문서인 ‘복음의 기쁨’에서 “지나친 중앙집권은 교회의 생활과 그 선교 활동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이를 어렵게 만든다”고 한 바 있다. 달리 말해, 이를 기도문의 단어 선택에 적용하자면, 어떻게 번역해야 복음화에 가장 도움이 되느냐를 제일 잘 판단할 수 있는 사람들은 바로 현장의 지역 주교들이지 로마의 교황청 관료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탈리아어 미사통상문의 드라마에서 우리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하나하나 해나가는 개혁들이 결국은 모두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 실천과 연관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지난 60년간 교회사적으로 가장 의미가 깊은 사건으로서, 제3천년기 교회를 위한 주춧돌을 놓았던 것이다.

기사 원문: https://www.thetablet.co.uk/news/13327/how-the-new-italian-missal-points-to-the-francis-refor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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