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사회
의료 개혁안과 진료 거부, "공공의료 관점이 없다"[인터뷰]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공의료위원장

지난 21일 전공의들이 무기한 순차 휴진에 들어간 것을 시작으로 대한의사협회의 총파업까지 진료 거부는 열흘 넘게 계속되고 있다.

전공의, 전임의들의 집단 휴진,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에 불응한 전공의 고발조치, 전공의들의 대량 사직서 제출에 이어 대학병원 교수들까지 이를 지지하고 나서는 등 의료계의 행보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이번 집단휴진 사태로 불거진 의대 정원 확대, 지역의사제 도입 등의 정책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하는 의료 공공성에 대한 논의가 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형준 공공의료위원장(토마스아퀴나스)의 이야기를 통해 짚어 봤다.

정형준 위원장은(재활의학과 전문의) 현재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 천주교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하며 공공의료 현실화를 위한 논의에 힘쓰고 있다.

대안 없이 '정부안 전면 철회' 요구만, "무책임한 의협"
정부 정책 역시 의료 민영화, 사영화 수준

정형준 위원장은 이번 집단휴진을 두고 명분과 대안 없는 총파업이란 여론이 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총파업을 주도하는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정부 정책의 골자인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한방 첩약 급여화, 비대면 진료"를 "4대악"으로 규정하고 이를 전면 철회, 백지화를 요구했다. 그러나 정부의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둔 협의" 안을 거부하면서도 구체적 대안은 내지 않고 있다.

정책 추진을 강행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두 차례 안에 대해서 의협 등이 “원점 재검토, 전면 철회”만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 정형준 위원장은 “정부더러 백기투항하라고 하는 것”이라며, “아무리 잘못된 정책이라고 생각해도 대안 제시 없이 백기투항만 주장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일갈했다.

그렇다면 많은 의사가 생명을 지키는 소임마저 놓아버리고 단체행동에 동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정 위원장은 “첫 번째 이유는 의사 수 증가 자체에 대한 반감”이고 거기에 “정부의 의료 정책과 자신들의 처지가 결합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번 의료파업에 동참하는 의사들 입장에서는 경쟁자가 늘어나는 것에 대한 견제, 즉 “밥그릇 싸움”이란 것이다.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정부 정책에 대한 대안 논의로 이어지지 못하는 상태도 이를 나타낸다.

여기에 정부 정책인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한방첩약 급여화, 비대면 진료 도입도 문제가 많다. 정 위원장은 “포장은 개혁적인 것으로 돼 있지만, 내용물은 완전한 의료 민영화, 사영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정부 정책에 반대하며 일인시위 하는 의사. (사진 제공 = 장영식)

의사 돈벌이 수단 아니야.... 의대 정원 확대 국공립대 중심으로 가야

정부 방안에 따르면 의대 정원은 2022년부터 매년 400명씩 10년간 늘어 의사 4000명이 배출되고, 이 가운데 지역의사로 선발된 3000명은 10년 동안 특정 지역에서 의무복무한다. 500명은 역학조사관, 중증외상 등 특수 분야로, 500명은 기초과학, 제약, 바이오 연구 인력으로 충원된다.

정 위원장은 이 같은 정부의 의대정원 확대 안 가운데 "기초과학, 제약, 바이오 연구 인력 양성"이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기초과학, 제약, 바이오 연구 인력"은 화장품, 의료기, 제약회사 등에서 일할 산업체 의사인데, 사기업의 영리를 추구할 목적의 의사를 의과대학에서부터 양성하는 것 자체가 의사를 돈벌이 방안으로 본다는 것이다. 실제로 제품 개발에 도움이 되려면 임상 경험이 풍부한 의사를 초빙해야 하는데도, 기업이 단지 의사를 쉽게 고용하려는 꼼수로 쓸 수 있어 위험하다는 지적이다.

'지역의사제' 역시 지역의료에 투입될 필수 공공 의료진 양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지역에서 10년 의무복무라고 하지만 수련기간을 빼면 실제 지역에서 근무할 시간은 2-3년 밖에 안 된다”고 지적한다. 의무복무 기간에 7-8년의 수련기간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더 문제는 의대 정원 증원 대상이 되는 학교가 수도권에 대형병원을 가진 사립대란 점이다.

이에 대해 정 위원장은 “지역의사제가 실제로 지역에서 필수인력으로 일할 의사를 양성하는 것인지 아니면 주간 80시간씩 일해야만 하는 사립대 병원에게 인턴, 레지던트들을 채워 주는 “땔감” 구실로 그칠 것인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그는 “정부의 정책이 제대로 가려면 국공립대 중심으로 계획이 마련돼야 한다”면서 “이를 통해 적정 진료 패턴으로 의료진의 노동 강도를 줄여 줘야 하고 이를 위해서라도 의사를 더 늘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부 정책이 재검토 돼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2007년에는 인구 10만 명당 의대 졸업자 수가 OECD 평균과 큰 차이가 없었지만, 2017년에는 58퍼센트에 불과, OECD 최저 수준이다. (자료 출처 =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언론, 선배의사, 교수들이 돌아와 같이 이야기하자고 말해야

"현재 진료 거부 주도하거나 의협 내 강경 발언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의사들 사이에서도 보는 시각과 생각이 모두 다릅니다. 그들이 요구하는 합의점이라는 것이 '의사 수만 늘리지 않으면 된다'는 무책임한 선에 그친다는 것이죠. 그들은 대안에 대해 어떤 상을 갖고 진료거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최저 동의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대안을 논의하지 않다 보니, 반정부적이고 정치적 강경파가 득세하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최고 80퍼센트를 웃도는 전공의 집단휴진과 집단 사직서 제출, 90퍼센트에 육박하는 의사 국가고시 응시 취소.... 최근 며칠 간 의료계의 대응은 점점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태다. 과연 합의의 돌파구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정형준 위원장은 “의료계 내에 소통 구조가 제대로 안 돼 있어 지금 여러 난관에 부딪힌 상태”라면서 “방법이 있다면 무엇이든 해야 하고, 더 중요한 것은 언론, 선배 의사, 교수들이 부추기거나 방관자적으로 있지 말고, 이들에게 돌아오라고 말해야 한다. 돌아와서 우리랑 같이 이야기하자라는 최소한의 포지션이라도 보여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환자에 대한 최소한의 기본적 예의와 직업윤리를 가지고 복귀하라고 요청함과 동시에 집단휴진을 벌이는 대다수가 아직 교육을 받는 젊은 수련의들인 만큼 유화적 태도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정부가 그간 공공의료 확대 계획을 내실 있게 수립하지 않았고, 이번 4대 정책도 근본적으로 공공성을 담보한 개혁적 단행이 아니라는 점도 다시 인식하고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2017년 인구 1000명당 공공의료기관 병상 수에서 한국이 최하위권이다. (자료 출처 =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공병원 증설 시급, 의료 공공성 확대 논의로 나아가야....

정형준 위원장은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한 공적 인프라 구축과 의사 양성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 중요하다고 제안했다.

10년 전 시작된 의학전문대학원 등 정부가 그간 민간 주도의 의사 양성 시스템에 일임하고 방치한 동안 “공부 잘하고 집 잘 살면 무조건 의대 가는 분위기, 이런 과정을 감당할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의사가 되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는 지적이다.

공공의대, 공공병원에서 공부하고 수련하고 일해야만이 정부가 말하는 정책에도 일관성이 있는 것인데, 실제 정책은 미흡한 채 정부가 의료의 공공성을 주장만 하기 때문에 비판에 취약할 수밖에 없고, 실제로 그렇게 이용될 가능성도 높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지금 의료계의 대 혼란이 의료 공공성 확대 방안 논의로 전환되려면 어떤 장치들이 필요할까?

이에 대해 정 위원장은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이 워낙 민간공급 주도가 심하기 때문에 공공의료를 공급하는 인프라를 확대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인프라는 공공병원”이라면서 “경쟁력 있고, 시설 좋고, 지역사회의 접근성도 좋은 곳에 공공병원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서는 인력, 컨트롤타워도 필요한데, 이번 정부의 인력 강화 방안은 너무나 미흡하고, 공공병원 설립 대책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공병원 증원 계획을 빨리 수립해 병원이 없거나 의료진이 기피하는 지역, 필수 인력과 지원이 안 되는 곳들을 빨리 찾아내 작은 클리닉이라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 간 치료가능 사망률 격차(보건복지부). 치료가능 사망률은 2015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서울 강남구 29.6명, 경북 영양군 107.8명으로 그 차이가 3.6배에 이른다. (자료 출처 =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가톨릭 병원들 끝까지 진료해 달라, 우리 사회의 최저선 지켜주길

가톨릭 교회가 운영하는 대형 병원들이 이번 사태에 직면해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

인터뷰가 진행된 8월 31일, 서울성모병원을 비롯한 가톨릭중앙의료원(CMC) 8개 병원은 "전공의와 전임의 진료거부를 지지한다"고 성명을 냈다. 특히 서울성모병원 외과 교수진은 9월 7일 하루 동안 외래 진료와 수술을 중단할 것을 결정했으며, 소아과 교수들도 전공의들이 불이익을 받는다면 사직 등 단체 활동을 불사할 것이라는 입장을 냈다.

이에 대해 정형준 위원장은 “코로나19시기에 성모병원들은 끝까지 진료하겠다, 전공의들을 붙잡고 ‘그래도 우리는 생명 존중의 기본적 원칙이 더 강하게 있는 곳인데, 아무리 너희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해도 지금 너희들이 나가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하는 교수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유럽의 가톨릭 교단이 운영하는 병원은 매우 오래된 구휼병원들인데, 공공병원보다 더 공공성이 있다. 이들은 기본 컨셉이 생명 존중과 호스피스, 즉 돈 안 되는 것들을 하는 병원”이라면서 “지금 이 상황에서 가톨릭의 성모병원들이 그런 역할을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형준 위원장은 “교회 병원들이 마치 교회 첨탑 올라가듯 병원 크기를 키우며 병상 경쟁에 참여하지 말고 더 가난한 사람들, 갈 곳 없는 사람들을 받아야 하는 곳이 돼야 한다”면서 수익성에 집중하지 말고, 우리 사회의 최저 기본선을 지키는 버팀목이 돼 달라고 요청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김수나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