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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지옥' 뉴욕에서 벗님들께 보내는 열일곱 번째 편지

벗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곳 뉴욕은 연일 불볕더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도 낮 기온이 화씨 100도를 넘습니다. TV 기상보도 미국지도가 대부분 빨간색으로 칠해졌습니다. 공교롭게 코로나 발생등급 지도도 거의 빨간색입니다. 코로나와 무더위 이중고를 말해 줍니다. 

23일 미국 코로나 확진자는 415만 명, 사망 14만 7000명입니다. 전 세계는 1560만 확진자에 사망 63만 5000명입니다. 이런 숫자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인구 8370만 이란은 23일 통계로 28만 5000명 확진에 사망 1만 5000명입니다. 그러나 로하니 대통령은 국영방송에서 이란 코로나 환자는 실제로 2500만 명에 달했다는 보건부 보고를 받았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란 인구 30퍼센트가 코로나에 감염되었다는 뜻입니다. 하긴 코로나 확진자 중 증상이 없거나 경미할 경우 코로나 PCR 검사를 받지 않았을 때는 통계에 잡히지 않습니다.

얼마 전 뉴욕주가 무작위로 실시한 항체검사 결과 16퍼센트가 양성반응으로 나타났습니다. 인구비례로 보면 뉴욕주민 300만 명 이상이 코로나를 경험했다는 의미입니다. 같은 비율을 미국 전체 인구에 대입하면 무려 5300만 명이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검사하지 않으면 코로나 없앨 수 있다”는 명언의 배경입니다. 어느 전문가는 확진자 대신 사망자 숫자로 발표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합니다. 그렇더라도 15만 명 달하는 미국 사망자는 한국의 500배이고 인구비례로는 83배입니다. 

인구 2000만도 안 되는 플로리다주 하루 확진가가 한국의 누적 확진자보다 많은 1만 6000명인 것을 생각하면 미국 전체가 코로나 지옥에 빠진 것을 실감합니다. 뉴욕주도 미국 전체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타주 간 이동을 차단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뉴욕주는 하루 약 800명 확진자가 증가하고 사망자도 다시 두 자리 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뉴욕 해변도 예년의 30퍼센트 정도로 차량 입장을 통제하지만 갑자기 닥친 폭염으로 수만 명 인파가 몰려 북적거립니다.

주 정부도 언제까지나 상업을 재개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업종별로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두고 단계적으로 리오픈(reopen) 하고 있습니다. 골프장은 진작 열었고 식당은 야외 테이블 있는 곳부터 영업을 재개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여전히 참석인원을 제한해 정상화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비정규직 알바 노동자들과 불법체류 신분인 외국 서류미비자들입니다. 상점마다 많은 인원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은 그야말로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단정한 차림의 여성이 아기를 업고 거리에서 손팻말을 들고 구걸하고 있습니다. 팻말에는 “세 아기 엄마입니다. 너무 힘듭니다. 도와주세요”라고 쓰여 있습니다.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작은 돈이나마 주머니를 털어 드렸더니 스페인어로 “감사합니다. 하느님 축복 받으세요” 하며 눈물을 글썽거립니다. 서류미비자일 것입니다. 이들은 코로나시대 복지 사각지대에서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회활동 현장에서 자주 뵙는 H 씨는 간호사로 코로나 전담병원에서 헌신적으로 일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동포사회에서 홀로 자녀를 키우는 싱글맘 모임 회장으로 봉사합니다. 싱글맘들은 이번 코로나기간 가장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학교와 어린이집들이 문을 닫아 자녀를 돌보느라 일할 수 없는 형편인데다 특히 서류미비자들은 애를 봐 주는 사람이 있다 해도 일자리를 찾을 수 없습니다. 정부 긴급생계 지원도 해당되지 않습니다. 자연히 간호사 직업 가진 H 씨가 평소 사재를 털어 수십 명 싱글맘 대모역할을 해오고 있습니다. 이분들의 딱한 사정이 알음알음으로 전해지자 여기저기서 조금씩 성금이 모아져 적은 돈이지만 이분들에게 보탬을 드리고 있습니다. 뉴욕뿐 아니라 소식을 듣고 워싱턴에서도 김OO 여사가 자신도 싱글맘으로 자녀들을 키워 남의 일처럼 생각되지 않는다면서 어려운 형편에서도 500불을 보내 주어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사실 정부나 복지단체가 맡아야 할 이들의 생계지원을 작은 모임이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그러나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끼리 대환란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깨동무하며 헤쳐 나가는 모습은 6.25 전쟁 당시를 보는 느낌입니다. 위기에 닥치면 서로 도와 극복하는 민족의 저력이기도 합니다.

지난 주일은 무더위를 피해 새벽에 롱비치 해변을 찾았습니다. 이른 아침 제법 많은 사람이 해변에서 물놀이하거나 모래 위에 누워 있습니다. 많은 남녀가 전날부터 야영했는지 해변에 타월을 깔고 새벽잠을 자고 있습니다. 갈매기들도 새벽부터 먹이를 찾아 날아다닙니다. 철썩이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백사장을 걷습니다. 코로나가 모든 사람의 일상을 바꾸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팬데믹이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과거 세계를 휩쓸었던 중세기 페스트나 1918년 스페인 독감은 국제질서는 물론 사회, 경제, 정치, 문화 모든 면에서 큰 변화를 가져 왔습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궁금합니다. 벗님 여러분 또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20년 7월23일

뉴욕에서 장기풍 드림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2006년 은퇴. 현재 뉴욕에 사는 재미동포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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